[TV속으로] JTBC 〈욱씨남정기〉 속 판타지…대기업 횡포 휘둘리는 중소기업 부당한 갑질에 맞서는 '욱다정' 현실은 더 차갑고 더 잔혹할 뿐

판타지가 만들어 낸 그럴싸한 세상에 속수무책 빠져든 때가 있었다.

인간이라면 한 번쯤 상상했을 법한 초능력을 동원해 자신의 여자도 지키고 악을 통쾌하게 응징했던 별에서 온 남자주인공에게 열광했었다.

잘못된 현재를 '타임슬립'을 통해서라도 바로 잡으려 했던 '시간이탈자'들의 고군분투에 간절한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현실 속에선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는 고된 현실을 그렇게라도 위로받았다.

이후 부조리한 현실을 꼬집는 드라마와 영화가 쏟아졌다.

판타지가 채우지 못한 현실을 제대로 응시하며 시청자 혹은 관객의 공분과 호응을 이끌어 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정의'를 생각했고, 부패한 거대 권력과 갑들의 부당한 횡포에 '함께' 분노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면 늘 제자리다. 아니다. 더욱 잔혹한 현실이 차갑고도 거세게 밀려든다.

한 대기업에서 명예퇴직을 거부한 직원을 두 달 동안 사물함만 볼 수 있는 자리에 배치하고서 온종일 대기하도록 하는 면벽 근무를 시켰다. 오전 8시 30분 출근한 그는 대기와 휴식으로 짜인 하루 일과표를 견뎌야 했다. 10분 이상 자리 이탈 시 팀장에게 보고해야 했고, 승인을 받아야 했다. 전화는 금지됐다. 그 어떤 개인 서적을 읽는 것도 금지됐고, 어학 공부도 금지됐다. 그에게 허용된 것은 그저 벽을 바라보는 것밖에 없었다.

현실의 부조리와 잔혹함은 상식을 넘고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가운데 좀 더 거칠고 날 선 풍자와 함께 현실을 담아낸 드라마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JTBC <욱씨 남정기>(금·토 오후 8시 30분)가 '갑질의 시대를 살아가는 을들의 고군분투기'라는 타이틀을 달고 지난 18일 첫 방송 됐다.

중소기업 러블리코스메틱의 소심한 '을' 남정기(윤상현) 과장은 연이은 실수로 대기업 황금화학과의 납품 계약에 실패한다.

우여곡절 끝에 러블리코스메틱은 다시 황금화학과 손을 잡았다. 하지만 황금화학 김상무(손종학)는 러블리코스메틱의 개발 로열티를 빼앗아 제품을 자신들이 개발한 것으로 만들 계획을 드러냈다. 이는 '대기업이 이런 식으로 나온다 해도 하청업체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꿰뚫은 대기업의 완벽한 '갑질'이었다.

대기업의 횡포가 뻔히 보이는데도 을은 장단을 맞출 수밖에 없다. 결국 어떤 계약이든 성사시키기 위해 김상무에게 룸살롱 접대까지 할 수밖에 없는 '을'이다.

"저희 같은 을은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에도 황금화학이 계약을 해줘야 살아남으니까요. 지금 저희 심정이 어떤 줄이나 아세요? 자식 넘기는 부모처럼 가슴이 너덜너덜하니까, 너희가 선택한 거라고 후벼 파지 마시라고요"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에 또 다른 갑인 '욱다정'이라 불리는 다정(이요원)은 "자식이면 지켜야 부모 아냐? 이런 개 같은 계약을 요구하면 당연히 던질 줄 알았지. 협상할 생각도 못하고 호구 노릇 계속 해주니까 매번 당한다는 생각은 못합니까?"라고 남정기에게 호통친다.

그리고 다정은 러블리코스메틱으로 합류한다.

이제 <욱씨남정기>는 갑의 횡포에 익숙한 나머지 착취당하는지도 모르고 충성하는 '절대 을' 러블리코스메틱 식구들이 다정과 함께 거대한 갑에 맞서 온갖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릴 예정이다.

tvN <피리부는 사나이>(월·화 오후 11시)에는 매회 억울한 사연을 지닌 인물들이 테러범으로 등장한다.

첫 회 동남아시아 인질협상 과정에서 형을 잃은 동생, 2회 경제적으로 벼랑 끝에 몰린 나머지 은행에 들어가 인질극을 벌이는 남자, 그리고 가스통을 싣고 카지노로 돌진한 남자 등 <피리부는 사나이>에는 사회에서 소외된, 하지만 그들의 사연에 그 누구도 귀 기울여주는 이 없는 사람들이 이른바 사건을 일으키는 '위기자'로 등장한다.

극한에 몰린 '위기자'들과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위기협상팀'의 팽팽한 대립은 매회 긴장감을 유발한다.

그리고 지난 5회에서 화염병을 잔뜩 만들어 방송국에 찾아간 해직 기자의 이야기로 그 범위를 좀 더 확대했다. 그는 해직된 억울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현실에 대한 반성을 일깨운다.

그는 국장이 지시하는 대로 세상에 알려져야 할 소식들을 묻어버렸다. 그는 그가 해왔던 대로 한 부실 건설사의 비리 기사를 덮었다. 하지만 그 건설사가 지은 터널이 부실 공사 탓에 붕괴하고, 그 때문에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그 붕괴현장을 본 해직기자는 자신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함으로써 사람들을 죽음에 몰아넣고 말았다는 사실을 통감한다.

여전히 '을'들은 서럽다. 언론마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그 누구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힘없는 사람들은 외롭다.

판타지로도 위로할 수 없는, 통쾌한 반전은 꿈도 꿀 수 없는 현실로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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