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기도로 왕이 인조의 흔적이 머문 진주 성전암

새해 다짐이 무디어 간다. 처음 먹었던 마음을 그대로 실천하기 힘들다. 찌든 마음을 헹구고 안일해지는 내 마음을 벼리기 위해 떠났다. 백일기도로 왕이 된 인조의 흔적이 머문 성전암을 향해 2월 21일 오후 햇살을 길라잡이 삼아 집을 나섰다.

경남 진주에서 옛 마산으로 가는 국도에서 경남수목원 교차로를 지나 이반성 교차로에서 빠져나왔다. 길을 따라 앞으로 가면 저수지 하나 지나 이내 면 소재지가 나온다.

▲ 진주시 이반성면 소재지가 끝날 무렵 태극기가 바람이 펄럭이는데 노란 바탕에 붉게 쓴 밀면이라는 간판이 한눈에 들어오는 식당이 아쉽게도 매주 일요일은 쉰다는 손글씨가 걸음을 돌아서게 한다.

면 소재지가 끝날 무렵 태극기가 바람이 펄럭이는데 노란 바탕에 붉게 쓴 밀면이라는 간판이 한눈에 들어오는 식당이 보인다. 수더분한 인상의 털보아저씨의 넉넉한 웃음이 가게에 사진으로 붙어 있다. 아쉽게도 매주 일요일은 쉰다는 손글씨가 걸음을 돌아서게 한다.

▲ 불과 수년 전에는 기적을 내며 들어서 기차를 맞았던 경전선 진주 평촌역.

이반성초등학교를 지나자 정수예술촌이 곧 나온다. 폐교를 예술인들이 모여 창착촌을 만들었다. 입구에 분홍색 기린과 노란 얼룩무늬의 코끼리가 지나가는 나를 바라본다. 정수예술촌을 지나자 업그레이드되지 않은 내비게이션이 기차 건널목이 나온다며 조심 운전하라고 길 안내한다. 그러나 기차길은 없다. 아니 불과 수년 전에는 있었다. 경전선이 복선화되면서 철길은 사라졌다. 옛 철도건널목을 지나자 바로 왼편으로 차를 몰았다.

평촌역 간판이 선명한 사라진 간이역이 나온다. 기적을 내며 들어설 기차를 반기듯 양옆으로 향나무가 들어서 있다. 올해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큰애가 아장아장 걸음을 배울 때 진주역에서 일부러 기차를 타고 여기까지 왔었다. 근처 정수예술촌에서 열린 축제를 핑계 삼아 아이에게 기차 타는 재미를 안겨주려고 왔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 장안마을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3km 산속으로 더 가면 성전암이다.

추억을 더듬는 사이로 까마귀들이 내 인기척에 놀랐는지 간이역 주위를 맴돈다. 이미 까마귀들의 놀이터요 보금자리로 변한 듯하다. 다시 목적지를 향해 차를 몰았다. 시내버스 회차지 옆으로 성전암까지 3km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잠시 차를 세워 시내버스 정류장 건너 정자나무에서 숨을 골랐다.

▲ 진주 성전암으로 가는 길은 차로 올라가기 두려운 벌떡 일어선 가파르다.

길을 따라 5분 정도 더 가자 벌떡 일어선 길을 올라가기 두려웠다. 승용차 이외 진입 금지라는 표지판을 그냥 지나쳤다. 이내 후회가 밀려왔다. 2단 기어를 놓고 올라가기에는 차가 힘겨워한다. 1단 기어로 올라가는 가파른 길이라 근처 주차공간에 차를 세우고 뒤 바퀴에 돌로 밀리지 않도록 끼워넣었다. 걸어가는 길은 숨이 더 가빴다. 굽이치듯 돌아가는 길을 걸으면 들숨은 없고 날숨만 거칠게 나온다. 다행히 산속 새들의 응원가와 좁다란 계곡을 따라 흐르는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힘을 얻어 한 걸음, 두 걸음 올랐다.

날숨 내뺃기도 지쳐갈 무렵 드디어 ‘성전암’을 알리는 선간판이 나온다. 입간판에는 ‘1100 전 통일신라 헌강왕 때 도선국사가 백두산 정기는 동해를 끼고 남북으로 뻗은 지맥이 한수(漢水) 이북엔 삼각산에 머물다가 한수 이남에서 굳어진 곳이 남강물을 먹이 할 수 있는 여기 여항산(餘航山)에 맺혔다고 하고 성인이 계시는 대궐로써 성전암(聖殿庵)이라 이름하여 창건’ 했다는 절의 역사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문헌 등에는 창건 기록이 전해 내려오지 않는다. 오히려 큰 절로 고려말까지 존속했던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는 용암사에 딸린 암자가 아니었을까.

▲ 성전암 무량수전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수령 600년이 넘은 느티나무에 걸린 햇살이 곱다.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무성하던 잎 떨군 나무들의 민낯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풍광이 예쁘다. 절로 가는 길 왼편으로 부도와 비 두 개가 옆으로 나란히 있다. 송덕비다. 송덕비 아래에 가부좌를 한 작은 불상이 햇살을 온몸으로 받는다.

숨 한번 크게 들이쉬고 마지막 힘을 내어 절로 가자 가족건강과 사업번창을 기원하는 신자들의 기와 불사가 한곳에 놓여 있다. 기와 뒤편으로 축대 위에 절이 들어 앉아 있다. 축대를 돌아가는 좁다랗게 돌아가는 길 중간에 600여 년의 세월을 함께한 느티나무가 서 있다.

▲ 진주 성전암 무량수전 앞 목련은 촛대 모양으로 봉오리를 밀어올려 햇살을 품고 햇볕을 담았다.

느티나무에 걸친 햇살이 곱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발아래 내려다보고 고개 들어 푸른 하늘에 내걸린 태양 한 줌 담는다. 느티나무 아래에는 작은 불상들이 옹기종기 햇살에 샤워한다. 점심 공양이 끝난 시각인데도 나무 타는 냄새가 구수하고 좋다.

▲ 두 번의 화마를 이겨낸 목조여래좌상이 있는 진주 성전암 무량수전.

구수한 냄새에 취할 무렵 느티나무를 돌아올라 서면 성전암의 중심건물인 아미타여래를 모신 법당이라는 뜻인 무량수전(無量壽殿)에 이른다. 무량수전 앞에는 병아리 솜털같이 부드러운 꽃눈이 한가득 맺힌 목련이 있다. 목련은 촛대 모양으로 봉오리를 밀어올려 햇살을 품고 햇볕을 담았다. 생명을 잉태한 목련의 경이로움에 빠져 뒤로 물러나 하늘을 올려다본다.

뒷걸음 치다 12그루의 느티나무가 나무 모양 그대로 세워진 무량수전을 만났다. 천 년 사찰이라는 이름에 비해 무량수전을 불과 몇 년 전에 세워졌다. 2010년 한 개신교 신자의 방화로 당시 대웅전과 전각이 불타 새로 세웠다. 방화 이전에는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모든 건물이 파괴되는 비운이 있었다. 그러나 목조여래좌상은 두 번의 위기를 이겨내고 현재도 법당에 모셔져 있다.

▲ 진주 성전암 전경.

무량수전을 지나 통유리 드리운 기와 옆으로 난 좁다란 길을 올랐다. 산신각에는 산신뿐 아니라 인조의 위패도 모셔져 있다. 산신각이면서도 인조각인 셈이다. 그래서 건물 가운데 편액은 인조각이라 적고 옆에는 산신각이라 적었다.

인조각이 성전암에 있는 까닭은 인조가 왕에 오르기 전에 근처 외가에 왔다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한 뒤 왕에 올랐다는 전설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인조를 기리기 위해 인조각을 세웠으며, 오늘날까지도 제향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인조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사람이다. 조선 시대에는 쿠데타로 쫓겨난 왕은 노산군(단종), 연산군, 광해군 3명이다. 그중에서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반정(反正)’의 명분으로 왕이 바뀐 것은 중종반정과 인조반정이다. 정변을 일으킨 공신들의 추대에 갑자기 왕위에 오른 중종에 반해 인조는 왕이 되고자 정변을 준비하고 앞장선 사람이다. 그는 광해군에게 원한이 많았다.

▲ 진주 성전암 산신각에는 산신뿐 아니라 인조의 위패도 모셔져 있다.

인조는 선조의 14명 아들 중 다섯째인 정원군의 큰아들로 임금이 되기 전에는 능양군으로 불렸다. 능양군의 친동생인 능창군은 서인 일부가 왕으로 추대하려다 발각된 사건으로 강화도 교동(喬桐)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된 후 스스로 목매 죽었다. 17살의 아들인 능창군이 죽자 아버지인 정원군은 화병으로 40세에 숨졌다. 능양군은 이를 갈며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5년 뒤 드디어 반정에 성공, 왕위에 올랐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살이었다.

▲ 깎아지른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자연의 속살을 파고 들어간 곳에 16개의 나한상이 있다.

인조각을 나와 그대로 내리 꽂은 벼랑 아래 나한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한각 옆에는 깎아지른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자연의 속살을 파고 들어간 곳에 16개의 나한상이 있다. 일체의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은 불교의 성자인 나한(羅漢)은 인간의 소원을 이뤄준다고 여겨지고 있다. 엄숙한 표정으로 수행하는 나한부터 배를 드러내고 넉넉하게 웃는 나한까지 다양한 모습의 나한을 보면서 소원을 빌었다.

▲ 진주 성전암에서 내려다본 풍광.

나한상 앞 기다란 의자에 앉았다. 여항산 줄기인 오봉산 8부 능선에 자리 잡은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미쳐 캔커피를 준비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충분했다. 지금 현재 성전암을 내리쬐는 해는 가운데에서 약간 옆으로 비켜 있다. 해 넘어갈 무렵이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든 저 아래의 풍경이 두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

▲ 진주 성전암에는 누구든지 3번 씩 종을 울릴 수 있는 ‘소원의 종’이 있다.

파란 하늘에 맞닿은 무량수전 너머로 숨 고르고 올라온 아래가 보인다. 겹겹이 둘러싼 끝없는 능선이 부드럽다. 무량수전 왼편 아래에는 누구나 3번씩 종을 울릴 수 있는 ‘소원의 종’이 걸린 종각이 있다. 종이 울리면 마치 능선은 파도 치둣 일렁일 것이다. 일렁이는 능선이 파도 되어 몇 번이나 찌든 마음을 헹궈내듯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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