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 시니어정보센터 컴퓨터 강사 강정순 씨, "못 할 이유 하나도 없어요"

3일 오전 진주시 주약동 한 아파트 체력단련실 한편 컴퓨터실에서 아래아 한글 워드프로세서 수업이 한창이었다. 이날 강사는 75세 강정순(경남 진주시 가좌동) 씨. 배우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이나 다들 나이가 많았다.

컴퓨터를 다루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수강생들 덕분에 강사는 바빴다. 한 말을 두어 번씩 반복하고 수시로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일일이 도왔다. 느릿느릿 가르쳐도 금방 딴 곳에서 헤매는 수강생들은 강사보다 큰 소리로 “아이고!” “난 안 뜨는데.” “이건 왜 이래.” ….

강정순 씨는 현재 진주시 시니어정보센터 1교육장 소속으로, 예전에 한 것까지 벌써 10년을 훌쩍 넘게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다. 그에게서 옛날 얘기부터 들어봤다. 컴퓨터를 접하기 전, 그는 요리를 했다. 경양식을 만드는 양식조리사 자격증 보유자다. 무려 30년이나 요리를 해왔으니 흔히들 말하는 식으로 생각하면 지금은 인생 2막에서 3막으로 넘어온 상황이다.

▲ 강의 중간 쉬는 시간에 대화를 나누고 있는 강정순 씨.

이렇게 넘어오기까지 그에게는 한 번의 실패가 있었다. 피자집을 차렸던 일인데, 당시 IMF의 여파로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 결국 1억 원이라는 큰돈을 날렸다.

“정말 기운도 없고 죽을 거같이 축 처져 있었죠. 그때 작은딸이 여행을 권해 여기저기 놀러 가봤는데 아무 것도 눈에 안 들어오죠. 자식들은 ‘그동안 저희 키우느라 고생하셨으니 이젠 어머니 하고 싶은 거 하세요’라고 말하던데, 제가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몰랐으니 어쩌지를 못 했죠.”

기운을 북돋아주려는 딸을 따라 춤을 배우기도 했는데, 어느 날 춤을 배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진주시에서 월 6만 원에 컴퓨터를 가르쳐준다고 하는 홍보물을 본 게 큰 전환점이 됐다.

“딸은 컴퓨터 배우자 그러던데, 이걸 무슨 돈까지 주면서 하냐고 툴툴거리면서 갔어요.”

▲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틈틈이 일어나서 직접 지도를 하고 있다.

당시 강정순 씨는 학원에서 위탁교육으로 컴퓨터를 배웠다. 1주일에 한 번, 30명이나 되는 컴퓨터 초짜를 강사 3명은 감당하지 못했다. 그는 실망했지만 일단 흥미를 찾았고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산업대, 국제대, 거창대… 컴퓨터 무료로 강의한다는 데는 다 돌아서 2년 가까이 고생했죠.”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처음 마우스를 잡은 게 어색하지만은 않았다. 지금은 다 커서 멀리 유학을 떠난 손주가 아직은 어릴 적, 비디오게임으로 어울려 놀아줬던 덕분에 기계들이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걔는 지가 이길 때까지 안 놔주더라고요. (웃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 따라한 게 컴퓨터 배우는 데 도움이 된 거 같기도 하네요.”

배우는 사람들이 노년층이라고 해서 대충 가르쳐도 만족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산이다. 가르치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확실하다. 그러니 강정순 씨도 잘 가르쳐야 한다는 긴장감을 늘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매일 4시간씩 컴퓨터 공부시간을 정해두고 있다.

“요즘에는 다들 IT를 잘 알아서 배우러 온 사람들 수준도 올랐어요. 강사도 계속 배워야죠.”

▲ 인터뷰를 마치고 환하게 웃는 강정순 씨.

시니어정보센터에서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처음 컴퓨터를 가르친 것은 2002년이다. 당시 자의반타의반으로 시작한 강의 때문에 동사무소를 찾았다.

“동사무소 직원은 젊은 사람이 올 줄 알았나 보더라고. 제가 나타나니까 깜짝 놀라던데, 세상에 그렇게 놀라는 사람은 처음 봤다니깐.”

‘박수칠 때 떠나고 싶다’는 강정순 씨는 이만큼 해오면서도 사실 자신보다는 자식 생각이 먼저다. 그는 인터뷰 도중 눈시울이 살짝 붉어지기도 했다.

“제가 무슨 큰 욕심이 있어서 이 일을 이렇게 하겠어요. 그래도 자식들한테 어머니 당당하게 알아서 잘 사는 거 보여주려고 내 일 열심히 하는 거지. 괜히 귀찮게 안 하고 그러려고.”

웃음으로 넘기려고 했지만 눈가에 눈물이 비쳤다.

▲ 이번 교육 일정을 마쳐 앞으로 판문동으로 교육을 나갈 예정이다. 시니어정보센터에서 3개월 주기로 교육장을 새로 지정해준다.

앞으로 강사 생활을 더 해나갈 텐데, 그는 앞으로 어떤 강의를 하고 싶을까?

“재밌어하는 것에 유익한 부분까지 더해서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하고 싶어요.”

컴퓨터를 배우고 싶지만 새로운 도전에 주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한마디 부탁했다.

“무서워하지 말고 도전하세요. 하면 됩니다. ABC 하나도 몰라도 돼요. 가나다만 알아도 합니다. 전신마비 때문에 손가락 2개만 움직이는 사람한테도 웹서핑 가르쳐 봤어요. 팔다리 멀쩡한 사람들이 못 할 이유는 하나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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