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자리 뜰 수 없는 영화 <동주>

영화가 끝난 후에도 쉬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고작 스물일곱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윤동주(강하늘)와 송몽규(박정민). 그 짧은 생애에도 이들에게는 이름도, 언어도, 시를 노래하고 산문을 쓰고 싶었던 꿈도 허락되지 않았다.

몽규는 말했다. "주권 없이 이상을 노래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니? 고민해야 하지 않겠어?"

동주는 말했다. "시도 자기 생각을 펼치기에 부족하지 않아."

암흑과도 같은 시대를 지나면서도 이들은 끊임없이 고뇌했다.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으며 감옥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의 청춘을 윤동주 서거 71주기가 되어서야 마주했다.

이준익 감독의 신작 <동주>는 부끄러움을 노래했던 윤동주와 행동하고자 했던 송몽규에 관한 영화다.

▲ 영화 〈동주〉의 한 장면.

같은 곳에서 태어나고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시기에 생을 마감한 윤동주와 송몽규는 서로 삶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각기 다른 방법으로 독립을 염원하고 저항한다. "너는 시를 써라. 총은 내가 들꺼이니까."

감독은 이들의 청년 시절에 집중한다. 언어를 박탈당한 시대에 시인으로 살고 싶었던 윤동주. 끝내 시를 놓지 못해 힘겨워했던 여린 청춘은 자꾸 자신 안으로 몸을 숨긴다.

조국을 되찾고 싶었던, 주권이 사라진 조국의 젊은이는 모진 매질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화려하지도 역동적이지도 않지만 총 13편의 시로 풀어나가는 각각의 장면들로 그의 시는 영화가 되고 다시 노래가 된다.

문학과 청춘의 만남은 부끄러운 순간들을 시 구절에 담아낸 윤동주의 '자기 고백'을 통한 여운을 남긴다.

흑백과 여백의 만남은 젊은 지식 청년들의 꿈을 지켜주지 못하는 주권을 잃어버린 나라의 비통함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특히 극의 후반부, 일본 경찰이 윤동주와 송몽규의 억지 자백과 서명을 받아 내는 장면은 찬찬히 쌓아놨던 모든 감정을 폭발시킨다. 서글프고 애통하다.

영화 <동주>에 대한 감독과 배우들의 애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이 감독은 제작의 한계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온 정성을 쏟았다.

<사도>에서도 보여줬지만, 이미 아는 사건을 현재와 과거를 교차 편집을 통해 긴장감을 높인다.

인물 하나하나의 표정과 섬세한 몸짓에 집중함으로써 이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시킨다.

강하늘과 박정민 역시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해냄으로써 스러져간 청춘들을 위로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게지."

환하게 웃던, 첫사랑 앞에 수줍게 미소 짓던 모습이 떠올라 마음 한편이 아리다. 생은 짧았지만 시와 그들의 삶은 새삼 우리 곁에서 부끄러움이 얼마나 무거운 단어인지 숙제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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