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시 반성면 경남수목원

두툼한 겨울 잠바가 무겁게 느껴진다. 봄을 느끼고 싶었다. 저만치 가버리는 겨울도 기억하며 새로 다가오는 봄도 마중하러 2월 23일 아침 일찍부터 길을 나섰다. 경남수목원으로.

수목원 입구에 들어서면 왼편으로 산림박물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건물이 아닌 밖에서 겨울도, 봄도 함께 느끼고 싶었다. 오른편으로 그냥 걸었다. 검은 대나무, 오죽이 반갑다며 온몸으로 흔든다. 

상한 녀석의 모습이 강단 있어 보여 걸음을 세우고 요리보고 조리 보고. 옆에 있는 실화백은 어떻고. 햇살 받은 화백의 잎들이 마치 화려한 불꽃처럼 하늘에서 내리는 양 아름답다. 꽝꽝나무 앞에서는 나도 발을 구르며 꽝꽝 소리 내보려 애썼다. 새끼손가락만한 녀석들의 잎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하늘 향해 고개 든 모습이 귀엽다.

▲ 홍매실이 예쁘게 꽃망울을 터트렸다.

 

연못이 나온다. 생태 탐방로를 거닌다.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코를 타고 머리를 맑게 한다. 홍매실이 예쁘게 꽃망울을 터트렸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지 ~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아장 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방긋 웃어라 아마도 내 사랑아“ 판소리 <사랑가> 한 구절이 절로 입안에 웅얼거린다. 녀석의 자태에 모델을 만난 신난 사진가처럼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 넓은 잔디밭 옆으로 메타세쿼이아들이 열을 지어 어서 오라 손짓이다.

 

그 옆에는 김소월의 <산유화>가 걸음을 이끈다. “산에는 꽃피네/꽃이 피네/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아직 이곳은 꽃은 드물고 초록빛도 상록수 외에는 거의 없다. 그래도 좋다. 저기 하늘 향해 높다랗게 두 팔 가득 벌린 나무들이 좋다.

 

봄을 앞둔 나무들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다. 넓은 잔디밭 옆으로 메타세쿼이아들이 열을 지어 어서 오라 손짓이다. 야외 결혼사진을 찍은 옛적과 아장아장 걸음을 옮기던 아이들의 모습이 메타세쿼이아 사이로, 잔디 사이로 떠오른다.

▲ 경남수목원 수생식물원 개천에는 오는 봄을 속으로 조용히 기다리며 물소리마저 숨죽였다.

수생식물원 개천에는 오는 봄을 속으로 조용히 기다리는 지 물소리마저 숨죽였다. 낙우송 나뭇잎들이 폭신폭신 내 발자국을 감춘다. 잎이 넓은 활엽수의 낙엽들은 낙우송 낙엽과 달리 바스락바스락 아주 경쾌하게 걸음걸음마다 장단을 맞춘다. 낙엽 밟는 소리와 느낌이 좋아 절로 고개를 들자 가시나무들 사이로 맑은 기운이 보인다.

 

▲ 메타세쿼이아와 대나무들 사이로 난 길에 의자에 앉았다. 햇살을 안고 햇볕을 담았다. “으음~” 마치 캔커피 한 잔을 마신 듯 입안이 향긋하고 개운하다.

 

메타세쿼이아와 대나무들 사이로 난 길에 의자에 앉았다. 햇살을 안고 햇볕을 담았다. “으음~” 마치 캔커피 한 잔을 마신 듯 입안이 향긋하고 개운하다. 근처에는 아이들이 놀기 좋은 나무와 함께하는 놀이터가 있다. 나무로 만든 징검다리 같은 미로를 올랐다. 중심 잡기가 어렵다. 몸은 연신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흔들리다. 톱밥이 깔린 바닥으로 넘어졌다.

 

▲ 동그랗게 뜬 눈과 기다랗게 벌린 입이 익살스러운 애니메이션 ‘라바’의 '옐로우‘처럼 흉내 내다 이내 ’레드‘처럼 이 가득 드러내고 웃는다.

 

바지를 털고 근처 평상에 앉았다. 햇살 드는 자리는 나무 사이 여기저기 있다. 숨을 고르고 다시 길을 나서자 ‘아기 돼지 삼 형제’를 비롯해 아이들이 좋아할 캐릭터들이 나무 사이사이 나온다. 동그랗게 뜬 눈과 기다랗게 벌린 입이 익살스러운 애니메이션 ‘라바’의 '옐로우‘처럼 흉내 내다 이내 ’레드‘처럼 이 가득 드러내고 웃는다. 야생동물 관찰원 옆으로 올랐다. 경남 시군 소나무들이 마치 시군 대표선수인 양 이름표를 달고 있다.

 

▲ 꼬리조팝나무들 사이로 난 길을 조곤조곤 걷는다.

 

소나무를 지나자 1947년 미국 식물채집가가 북한산 수수꽃다리 종자를 미국으로 가져가 개량한 ‘미스김라일락’ 군락이 보인다. 당시 식물도감을 정리하던 타이피스트 미스 김의 성을 따서 붙였단다. 4월~5월이면 작은 꽃이 오밀조밀 다닥다닥 분홍빛으로 피면 눈이 즐겁고 마음이 기쁘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라일락 품종이란다.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를 경제적 가치가 있도록 상품화한 교훈을 배운다.

 

▲ 선조들이 사용한 횃불의 기름이 쉬나무다. 그을음이 거의 없고 불이 밝아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적당하다. 그래서 경상도 일부 지방에서는 열매에서 기름 짜서 불을 밝히는 나무란 의미로 소등(燒燈)나무라고도 한다.

꼬리조팝나무들 사이로 난 길을 조곤조곤 걷는다. 이름표를 붙인 나무 덕분에 아직은 민낯 드러낸 나무들의 존재를 알 수 있어 좋다. 전망대 쪽으로 걸었다. 천천히 올라가는 길에서 눈에 띄는 나무를 만났다. ‘쉬나무’ 나무 이름처럼 지금 거닐면서 쉬는 중이다. 선조들이 사용한 횃불의 기름이 쉬나무의 기름이란다. 그을음이 거의 없고 불이 밝아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적당하다고 한다. 그래서 경상도 일부 지방에서는 열매에서 기름 짜서 불을 밝히는 나무란 의미로 소등(燒燈)나무라고도 한다. 책 읽는 공부방을 밝히는 소중한 기름으로 사용한 쉬나무 씨앗을 조선 시대 선비들이 이사를 갈 때면 절개를 상징하는 회화나무와 함께 꼭 챙겨 가져갔단다.

 

▲ 잠시 숨을 고르며 나무 사이를 바라보면 반짝이는 햇살과 함께하는 경치가 푸근하다.

 

전망대 아래쪽 상록활엽수원은 멧돼지 출몰로 진입을 금지하고 있다. 잠시 숨을 고르며 나무 사이를 바라보면 반짝이는 햇살과 함께하는 경치가 푸근하다. 전망대를 지나 오솔길도 잠시 거닐다 돌아왔다. 기운이 맑다. 머리가 개운하다. 메타세퀘이아들 사이로 거닐다 아래 대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푸른 바람이 일렁인다. 마음도 푸른 빛으로 채웠다. 다시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의 행진과 함께 산림박물관으로 내려갔다.

 

▲ 메타세퀘이아들 사이로 거닐다 아래 대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푸른 바람이 일렁인다. 마음도 푸른 빛으로 채웠다.

시원한 정자 아래에서 장기 한판 두는 풍경부터 시작하는 나무 이야기를 따라 제1 전시실에서 차근차근 둘러보고 나왔다. 박물관을 나오자 겨울 동안 가장 바쁜 일상을 보냈을 겨울눈이 잘 가라 인사를 건넨다. 추위와 건조함 속에서도 봄에 싹 틔울 준비를 차근차근 준비하며 잉태한 생명을 굳건히 지켜온 겨울눈의 열정에 고개 숙인다.

 

‘안개가 짙은 들 산까지 지을 수야/ 어둠이 짙은 들 오는 아침까지 막을 수야/안개와 어둠 속을 꿰뚫는 물소리, 새소리/ 비바람 설친들 피는 꽃까지 막을 수야’(안개가 짙은 들- 나태주)‘

 

▲ 추위와 건조함 속에서도 봄에 싹 틔울 준비를 차근차근 준비하며 잉태한 생명을 굳건히 지켜온 겨울눈의 열정에 고개 숙인다.

아직은 상록수를 제외하고는 나무들은 앙상한 민낯이다. 겨울이 아무리 춥다 해도 오는 봄을 막을 수 없다. 나무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새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앙상한 가지에 새순을 품고 비상을 꿈꾸듯 하늘을 향해 있었다. 봄을 앞둔 겨울나무가 나에게 묻는다. 봄 맞을 준비가 되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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