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국의 일본기차여행] 소설 <설국(雪国)>의 무대 니가타현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夜の底が白くなった。信号所に汽車が止まった)

익히 알려진,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소설 <설국(雪国)>의 첫머리이다. 

내가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다카사키(高崎)에 온 이유는 순전히 <설국(雪国)>의 주인공인 고마코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아침 일찍 다카사키의 명물 에키벤(역에서 파는 도시락)인 닭고기밥도시락(鷄めし弁当)을 하나 사서 185계 시하이루(Schi Heil) 쾌속열차에 올랐다. 시하이루(Schi Heil)는 스키어들의 인사말인데 독일어로 ‘스키 만세’라는 뜻이다.

▲ 에키벤(역에서 파는 도시락)인 닭고기밥도시락(鷄めし弁当)

185계 시하이루를 타고 죠에쓰선(上越線)을 따라 설국인 유자와정(町)까지 환승 없이 갈 수 있다. 하지만 중간의 터널 속에 있는 지하역인 도아이(土合)역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도아이역은 ‘일본 제일의 두더지 역’으로 지하에 있는 하행선 플랫폼에서 지상까지의 거리는 481m이고 486개의 계단이 있다.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에 걸어가야 한다. 지상에 다다르니 역사와 개찰구, 상행선 플랫폼이 있었다.

지상의 상행선은 1931년 개통된 단선으로 당시에는 상하행선을 같이 사용했었고, 1967년에 복선화가 완공되면서 지하의 선로는 하행선 전용으로 개통되었다.

다시 열차를 타고 긴 시미즈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소설 '설국'에서 주인공인 시마무라도 열차를 타고 시미즈 터널을 통해 니가타현의 유자와 마을로 들어선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바깥은 눈보라가 몰아치고 열차 내에선 젊은 아가씨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도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를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온통 눈의 나라다. 

열차가 츠치타루역에 섰다. 요코가 차창을 열어젖히고 ‘역장님, 역장님’ 부를 것만 같았다.

고마코가 있는 에치고유자와(越後湯沢)에 도착하니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설국이었다. 고마코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에치고유자와역에서 북쪽으로 500m쯤 걸어가면 설국관(雪国館)이 있다.

이곳에 고마코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마쓰에의 방을 재현해 놓았다. 일본의 전통 현악기인 샤미센(三味線)도 있었다.

다시 북쪽으로 1km정도 올라가니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1934년부터 3년간 묵으며 <설국>을 집필한 다카한(高半) 료칸이 있었다.

료칸 2층에 당시에 묵었던 ‘안개의 방(가스미노마)’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만화가 허영만 선생께서 다녀간 흔적도 있다.

다카한을 나와 스와신사(諏訪神社)를 찾았다. 고마코와 시마무라가 데이트했던 곳이다.

‘여자는 고개를 돌려 삼나무숲 속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그도 말없이 따라 들어갔다. 신사였다. 이끼 낀 돌사자 상 옆 평평한 바위에 여자가 걸터앉았다.‘

에치고유자와역은 신칸센이 서는 역인데다 스키 시즌이어서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역사 안에서는 많은 가계가 니가타 지역의 특산품을 팔고 있었다.

또 폰슈칸이라는 사케박물관이 있는데 500엔을 내면 니가타 지역에서 생산된 사케 중에서 5잔을 선택해 마실 수 있는 사케 시음 코너(고시노무로)가 단연 인기였다.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