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잠과 의식의 경계에 있는 당신에게

[박채린 시민기자] 필자 주: ‘사운드그래피’는 음악(sound)과 사진(photography)을 결합한 단어입니다. 단디뉴스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채린제인의 사운드그래피>에는 그동안 써오던 음반리뷰에 사진작업을 더해보고 싶었습니다. 음악이 주는 느낌과 감정을 좀 더 진하게 머금을 수 있는 방법이고, 좋은 음악을 들려준 아티스트에 대한 제 나름의 작은 화답도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잠과 의식의 경계에 있는 당신에게 이 음악을... Fortune의 [Blackboard]

창가에 밤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종일 마음을 졸이며 삶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가 밤 열두시가 되어 마침내 침대에 몸을 구겨 넣는다. 경직되어있던 근육들이 따뜻한 기운에 녹아내리자 호흡도 덩달아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간다. 이대로 있다가는 곧 꿈의 세계로 떠나버릴 것 같다. 눈을 감으며 생각의 증발을 즐기던 찰나, “!” 돌연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사실 내게 허락된 하루의 끝이 아직 내 방에 도착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다가 ‘오래도록 깨어있는 밤’을 한번쯤은 맞이하게 된다. 자고 싶은 욕구보다 무언가를 이루어놓고 잠이 들고 싶다는 생산적인 욕구가 조금 더 크게 작용하는 순간이다. 모든 것들이 차분해지는 밤의 시간이지만, 그런 욕구가 치밀어오를 때 우리는 의도적으로 온 몸의 감각을 깨워낸다. 편안한 침대를 박차고 잠과 의식의 경계에서 각자의 하루를 완성시키기 위해 노력을 한다. 누군가의 명령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러한 밤의 시간을 선택한 것이다. 심신의 피로가 상당하지만 왠지 모르게 솟는 맑은 쾌감이 묘하게 마음에 들기도 한다.

만약 당신의 밤도 이처럼 발광(發光)하고 있다면 나는 당신의 시간을 기쁘게 응원하고 싶다. 점점 깊어가는 새벽, 정신을 차리기 위해 밑도 끝도 없이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너무 고문 같은 행위라 생각한다. 하드 코어의 마니아라면 모르겠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밤의 고요한 풍경도 해치고, 심적으로도 다소 부담스런 선택이 될 것이다. 스스로 깨어있는 멋진 밤에는 좀 더 아름다우면서도 지속적으로 감각을 깨워줄 수 있는 음악들이 어울린다.

1. 리오넬 피에브스(보컬, 기타), 피에르 루카스(키보드), 빈센트 브루린(기타, 키보드), 하브 루`스(드럼)의 네 명의 아티스트들로 구성된 프랑스 밴드 Fortune은 2007년부터 일렉트로 록 장르에서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이들의 음악에서는 신스 기타와 더불어 섬세하게 짜여진 사운드가 일렉트로니카와 팝, 인디 록이 어우러진 경계를 새롭게 그려나간다.

신스 기타가 빛을 발하는 첫 곡 ‘Turn Around’는 일렉트릭 피아노와 함께 하는 훅 부분의 쫄깃한 리듬감이 좋다.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분위기라 힘이 생기는 곡이다. ‘Blackboard’는 영혼의 목적지에 대한 명확한 이미지를 얻고 싶다는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독창적으로 배열된 사운드가 세련된 감각을 더한다.

‘Drive Out’은 편안하고 이완된 사운드로 몽환적인 첫 발을 들이는데 그 뒤로 풍만하게 퍼져나가는 사운드는 달콤 씁쓸한 맛을 내고 있다. ‘Hold Me’는 특히나 복고적인 성향이 강한 트랙이다. 진한 리듬과 맞물려 다채로운 색깔을 보여준다. 모든 음색이 사라지고 홀로 남은 리듬 뒤로 ‘Island’가 이어진다. 다소 짙고 묵직한 트랙으로, 한 단어씩 흩어지는 가사들이 꼭 띄엄띄엄 존재하는 섬처럼 느껴진다. 가사 전후의 사운드는 아득하게 펼쳐진 바다의 이미지를 닮았다.

‘Endless War’는 심각한 제목과는 딴판으로 정신없이 쏟아지는 앙증맞은 사운드와 함께 사랑스러운 논쟁의 지속을 표현하고 있다. ‘Valley’는 삶의 골짜기에서 어디로 향해야 올바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 의문을 던지는 곡이다. 거부할 수 없는 삶의 속도가 반영되어 격앙된 템포로 전개되는 음악에 저절로 온 몸이 들썩인다. 묘한 멜로디로 시작되는 ‘Each Day’는 하루하루 사라져가는 날들을 노래하고 있다. 사탕 같은 달콤한 소리가 함께 하는 것 같더니 후반부로 갈수록 중독적인 리듬과 음색에 홀리는 기분이 든다.

2. ‘운’이 좋게도 환하게 깨어있고 싶은 밤에 Fortune의 음악을 만나게 되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지루할 새가 없이 밤의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들의 음악에는 생생한 빛깔이 함께 하고 있다. 그 빛은 그대로 에너지가 되어 깊은 새벽까지 깨어있는 데 힘을 보태어주었다.

Fortune의 음악과 함께 한 두 번째 사운드그래피에는 어둠이 내려앉는 해운대 해수욕장의 모습을 담아보았다. 이곳은 모래사장에 원색의 조명들이 비춰진다. 다채로운 색깔을 담기 위해 완전히 어두워진 하늘이 아니라 해지기 전의 짙은 푸른색인 시간을 노려보았다. 모래가 밋밋하지 않고 여러 가지 선이 존재하고 있어 좀 더 음악적인 기분이 들었다. 조명의 색깔이 한 데 섞여 경계선이 모호한 것이 일렉트로니카와 팝, 인디 록이 녹아있는 Fortune의 음악과 비슷해보였다. / 박채린 시민기자

[박채린을 말하자면]

저는 지금까지 블로그에 60여 편의 개인적인 음반리뷰를 모아오고 있는 ‘채린제인’이라고 합니다. 혼자서만 해오던 일이었는데 이렇게 단디뉴스의 첫 발걸음을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클래식과 팝을 좋아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말도 제대로 못하는 꼬맹이였을 때부터 음악에 푹 빠져 지냈던 아이였어요. 자라면서 점점 취향이 생겨났고, 좋아하는 음악들에 대한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 자연스럽게 음반리뷰를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이런 방식이 청자로서 할 수 있는 꽤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때부터 조금 더 정성을 들여 써나갔고, 냉정한 평가보다는 가사와 음악 속에 드러난 아티스트의 생각과 음악 그 자체의 분위기를 따라 가보는 방식이 더 마음에 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이런 작은 작업들은 인생의 한 순간에 풍부한 색채를 더하는 음악들을 탄생시켜준 아티스트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었지요.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