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이반성면 선돌(立石)을 찾아

해 바뀌고 벌써 한달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가고 싶었다. 느린 숨으로 시간을 멈춰 세워 잠시 숨고르고 싶은 마음은 1월 27일, 밤 근무를 끝내고 시간의 들판에서 머무르다 왔다. 몇 천 년의 시간이 빚어낸 바위를 만나 ‘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다짐도 하고 강추위에 움츠러든 몸과 마음을 푸근하게 맡겼다.

▲ 진주에서 옛 마산으로 가는 4차선 국도를 시원하게 따라 가다 경남수목원을 지나 이반성교차로에 못미쳐 대천리에서 빠져나오면 선사시대의 선돌 2개를 만날 수 있다.


경남 진주에서 옛 마산으로 가는 4차선 국도를 시원하게 따라 가다 경남수목원을 지나 이반성교차로에 못미쳐 대천리에서 빠졌다. 굴다리 아래를 지나면 가을걷이 끝난 들에서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서 있는 돌 2개를 발견할 수 있다.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77호인 선돌이다. 시멘트 농로를 사이에 두고 약 70m 간격을 둔 두 개의 바위는 국도 가까운 쪽이 여자 바위고 건너가 남자 바위다. 여자 바위는 밑바닥이 넓고 남자 바위는 키가 크다.

▲ 진주시 이반성면 대천리 들판에서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서 있는 돌 2개를 발견할 수 있다.


차를 굴다리 근처 한쪽에 세워두고 들판 속으로 걸었다. 오른편 논에는 파릇한 보리들이 싹을 틔웠다. 초록빛이 좋다. 공룡알처럼 생긴 '생볏짚 원형 곤포 사일리지'가 들판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볏짚 곤포사료는 소 사료로 사용할 벼짚 말아 올린 것들이다. 우리의 김장 김치처럼 소가 겨우내 먹을 벼짚 김치인셈이다. 시멘트 농로에는 소똥과 흙이 드문드문 붙어 있다.

▲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77호인 선돌이다. 시멘트 농로를 사이에 두고 약 70m 간격을 둔 두 개의 바위는 국도 가까운 쪽이 여자 바위(사진 왼쪽)이고 건너가 남자 바위다. 여자 바위는 밑바닥이 넓고 남자 바위는 키가 크다.


농기계가 논에서 작업하기 쉽게 만든 경사 진입로에 마치 트랙터처럼 육중하게 논으로 걸어 들어갔다. 수확도 끝난 들에 우뚝 서 있는 돌이 나왔다. 땅속에서 대지를 뚫고 나온 듯이 돌은 보는 위치에 따라 날카로운 칼 모양새이기도 하고 오동통한 고구마같기도 했다. 또한, 하늘에서 마치 하늘에서 툭하고 던진 게 60도로 박혀 있는 형상이다. 돌은 줄 그은 듯한 움푹 패인 흔적이 여럿있고 검버섯같은 시간의 훈장들이 붙어 있다.

▲ 선돌은 땅속에서 대지를 뚫고 나온 듯이 돌은 보는 위치에 따라 날카로운 칼 모양새이기도 하고 오동통한 고구마같기도 했다. 또한, 하늘에서 마치 하늘에서 툭하고 던진 게 60도로 박혀 있는 형상이다.


11시 방향, 떠오른 태양을 바라보자 바위는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합장이 되기도 했다. 돌의 표면은 거무튀튀하면서도 말라버린 이끼들이 엉겨있어 돌 본연의 질감은 보이지 않았다. 돌 아래는 벼를 수확한 트랙터가 에둘러 지나간 흔적만 남아있다.

이렇게 드넓은 들판을 바둑판처럼 경지 정리를 하면서도 돌을 치우지 않았다. 무병장수를 비는 영험함이 깃든 이 돌은 마을의 풍년을 기원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석기와 청동기 시대 권력자의 무덤이기도 한 고인돌과 같은 큰돌 문화의 하나인 선돌(立石)은 묘의 영역을 나타내기도 하고 마을 입구에 세워 귀신을 막거나 경계로 삼았다고 한다.

▲ 11시 방향, 떠오른 태양을 바라보자 바위는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합장이 되기도 했다.


가로의 들판에 전봇대가 세로 좌표를 그리고 있다. 좌표 사이로 돌이 서 있는 꼴이다. 선돌 뒤로 진주에서 창원(구 마산)으로 가는 4차선 국도가 보이고 그 뒤로 멋진 나무 한그루가 내려다본다.

여자 바위에서 남자 바위쪽으로 걸음을 옮겨 걸었다. 걸음 옮기는 동안 나도 모르게 노래패 꽃다지의 <바위처럼>을 흥얼거렸다. ‘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모진 비 바람이 몰아친대도~.’ 가을걷이 끝난 논이지만 초록빛 생명력을 틔우려는 몸부림이 이랑에 연두빛으로 물들었다. 결국 ‘~바위처럼 살자꾸나’를 몇 번이나 되뇌이고 끝냈다.

▲ 남자 바위 뒤로는 반성천(川)이 흐르는데 둑 여기저기에는 봄을 기다리는 봄까치꽃 무리를 만날 수 있다. 봄까치꽃들은 하얀 서리를 예쁘게 두르고 있다.


남자 바위 뒤로는 반성천(川)이 흐르는데 둑 여기저기에는 봄을 기다리는 봄까치꽃 무리를 만날 수 있다. 봄까치꽃들은 하얀 서리를 예쁘게 두르고 있다. 하천은 꽝꽝 얼어붙었다. 갈대가 바람에 살랑살랑 몸 흔들자 저만치 들 한가운데 까마귀들이 먹이를 발견했는지 까악까악 소리를 내며 검은 색으로 덮었다.

▲ 남자 바위에서 여자 바위를 바라보자 마치 멋진 나무 한 그루와 삼각 관계를 만든다. 이룰 수 없는 사랑 이야기라도 들려줄 듯 햇살이 부드럽다.


하천 둑에서 남자 바위를 바라보면 뒤편으로 높다란 고압전기 철탑이 키 재려는 듯 함께한다. 남자바위는 얼핏 직삼각형 자를 닮았고 한편으로는 주걱을 닮았다. 바위 위에는 지나가는 새들이 하얗게 배설한 흔적이 뚝뚝 묻어있다. 바위 위에서 삼각형 모양이 아래로 내려오다 가운데쯤에서 다시 엇갈린 삼각형이 이어붙은 듯 한몸이다.

▲ 바람이 쉬어가고 머나먼 세월이 굳세게 서있는 선돌을 품은 들판에서 푸근하게 머문 하루다.


남자 바위에서 여자 바위를 바라보자 마치 멋진 나무 한 그루와 삼각 관계를 만든다. 이룰 수 없는 사랑 이야기라도 들려줄 듯 햇살이 부드럽다. 햇살은 사랑이야기 대신 ‘고려 중기 때 두 개의 커다란 돌이 대동마을과 하촌마을 쪽으로 다음 도읍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는데, 부엌에서 밥을 짓던 처녀가 이를 보고 막대기로 마당을 치자 돌이 멈추어 우뚝 서버렸다’는 전설을 들려준다.

바람이 쉬어가고 머나먼 세월이 굳세게 서있는 선돌을 품은 들판에서 푸근하게 머문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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