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째 해마다 열어... 6개 동아리 연합, 올해 90여 명 출품

“어렵다고들 하지만 사실 시에 대해서는 다들 익히 알고 있죠. 많이들 듣는 노래 가사도 일종의 시니까요. 저희는 시라는 장르에 대한 동경으로 모였고, 직접 써보는 것으로 이런 문학 속으로 더 많이 깊이 들어갈 수 있는 거 같아요.”

졸업과 입학이 줄줄이 이어지는 새 학년도를 앞둔 가운데 지역 고교생들이 시화전을 개최했다. 이 시화전의 놀라운 점은 청소년 문학동아리 ‘솜다리’가 20년 넘게 해마다 열어왔다는 것이다.

진주지역 고교시문학연합동아리 ‘솜다리’는 28일부터 31일까지 4일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100주년 기념관 2층 전시장에서 ‘제21회 솜다리 시화전’을 열었다.

▲ 넓은 전시장 벽면은 솜다리 학생들의 시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들은 진주 지역 각 고등학교 시문학 동아리가 모여 결성된 연합동아리다. 소속돼 있는 곳은 달별(진주고), 청초(진주여고), 이음새(경상사대부고), 한얼소리(삼현여고), 청춘산맥(명신고), 야간비행(경해여고) 등 6개 동아리다.

동아리 이름인 '솜다리'는 에델바이스의 순우리말로, ‘소중한 기억, 귀중한 추억, 귀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솜다리에 소속한 학생들은 꽃말처럼 시 문학 창작을 통해 선배에서 후배로 이어지는 소중한 추억을 쌓아가고 있다.

시 작품 전시는 솜다리 3기 때 시작해 한 해도 빠짐없이 이어져 올해로 21회째를 맞았다. 동아리 자체는 25년이나 됐을 만큼 역사가 길고, 전시장 입구에 솜다리 2기 선배들이 보낸 축하화한이 세워져 있을 만큼 결속도 강해보였다.

그들은 해마다 늘 이맘때마다 전시를 열어왔다. 3학년들이 학사일정 중 졸업만을 남겨두고, 1·2학년도 새 학년도의 부담이 적을 만한 시점이 딱 이때쯤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한 달 남짓 준비에 참여한 솜다리 회원 90여 명이 각자 자신의 작품을 내놓고 웨딩드레스 차림의 캐릭터 액자에 이를 담아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솜다리는 학교별로 20명 안팎이 활동하는데, 연합 전시를 위해 각 학교별로 구상한 액자 디자인을 모아놓고 괜찮은 걸 골라낸 뒤 디자인을 보완한다. 웨딩드레스 액자도 그렇게 나온 작품.

▲ 사진 촬영을 부탁하자 솜다리 23기 정민경 학생이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재기발랄한 작품들들부터 오랜 고민이 담겼을 듯한 진지한 작품까지, 시들은 참여한 학생들의 수만큼 다양한 감상을 일으켰다. 이 중 정민경(18, 솜다리 23기) 학생의 시 '서리'와 강태안(20, 솜다리 21기) 학생의 시 '자정'은 다음과 같다.

서리

비오는 날
네가 앉은 버스 좌석의
창이 되어 본다
나는 알코올에 젖은 듯
나 너무 그사람이 네게 보이질 않도록
네 초점을 뿌옇게 흐린다
이런 내 마음을 모르는지
너는 두 손으로 나를 쉽게 닦아내었다
무심했다 내가 이토록 쉽게 네 세월에 잊혀진 것이

 

자정

밝을 때 못 보던 너를
차운 밤이 되서야
보고 싶다

따신 낮에 닿던 너를
어두운 밤이 되서야
닿고 싶다

눈이 부셔 눈 앞인지 몰랐던 너를
멀어진 밤이 되서야
보고 싶다

새벽이 멀다

전시에 참여한 경상사대부고 강태안(20, 솜다리 21기) 학생은 “해마다 테마를 정해보고, 액자와 시의 느낌을 맞추려고 신경을 쓴다. 이번에는 여자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랄까… 걸어놓으면 예쁠 것 같아 밝은 느낌으로 꾸몄다. 매번 전시마다 예전에 했던 것과 겹치지 않게, 해마다 다르게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안내로 작품을 둘러보면 시마다 풀이나 꽃잎 같은 큰 점이 찍힌 글씨가 눈길을 끈다. 손글씨로 쓰여 어떤 것은 삐뚤빼뚤한 것도 있지만 모든 작품이 같은 글씨 모양으로 꾸며졌다.

강태안 학생은 “꽃잎이에요. 자음마다 꽃잎이 떨어진 것처럼 글씨를 꾸미는데, ‘솜다리체’라고 부릅니다.”

관람객들이 많이 찾아오느냐는 질문에 그는 “차려 입고 있는 거 보러왔다는 친구들도 있고 낯 부끄러운 시 써놨다더라 하며 보러오는 친구들도 있다”며 짓궂은 친구들의 반응을 얘기해줬다.

▲ 솜다리 21기 강태안 학생은 "이번 작품에 공을 많이 못 들였다"며 아쉬워했다.

졸업을 앞둔 남학생들은 양복을 입었고, 일부 여학생들은 한복을 입고 전시장에서 관람객을 맞았다. 복장은 언제부터였는지 몰라도 계속 이어져 온 솜다리만의 전통이라고 한다.

전시회에 나온 작품들은 한데 모아져 작품집으로도 제작된다. 솜다리 회원들은 앞으로도 부담 없고 담백한 시문학을 통해 각자의 정서로 시민들과 공감할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 관객은 작품을 감상한 뒤 소감을 적어 작품마다 담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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