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춤연구소 네번째 창작극 <까마귀> 관람 후기

사람들은 왜 ‘극(劇)’을 보는 걸까?

집안 거실에서 리모컨을 돌려가며 편하게 드라마를 보다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하고, 가족이나 연인끼리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갖기 위해 극장을 찾기도 한다. 때로는 사회구성원들로부터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화젯거리가 되고 있는 영화나 연극을 찾아서 보는 경우도 있다.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이유와 취향이 있겠지만, ‘극(劇)’을 보는 효과는 딱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복잡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환각제 또는, 현실을 더 선명하게 비춰주는 각성제 효과가 그것이다.

정상적인 경우 사람은 환각제에 의존해서만 살 수도 없고, 늘 각성된 상태로 살아가는 것도 매우 피곤한 일이다. 때론 실현 불가능한 꿈을 꿀 때도 있고, 차가운 눈으로 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우리 곁에는 환각제들만 너무 넘쳐난다. 수천억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부어 세계시장에서 투자금의 수십 배를 벌어들이는 블록버스트 영화에서부터, 안방극장을 지배하는 우리네 막장드라마까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것은 하나같이 현실로부터 도망칠 판타지를 제공하는 환각제들 뿐이다.

하기야 이미 현실이 충분히 지옥 같은데, 그것을 더 냉정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들여다 본들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끔찍하기만 하지.

▲ 지난해 12월 19일 공연한 풍류춤연구소의 <까마귀>는 4.3제주항쟁과 역사를 담은 창작탈춤극이다.

그러나 아무리 환각제를 맞아봐도 그것이 현실이 될 수는 없다. 우리 몸뚱아리가 정신세계로 들어갈 수 없으니, 정신으로 몸뚱아리가 사는 현실을 비춰볼 밖에.

지난 12월 19일 풍류춤연구소가 막을 올린 네 번째 창작탈춤 ‘까마귀’(부제: 진주댁의 4월 3일)는 말하자면 작은 각성제 한 알이다.

무지렁이 민중의 삶과 한을 춤과 노래로 풀어내 그들 가슴을 어루만지고 달래 온 것이 전승탈춤이라면, 창작탈춤은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상처와 한을 탈춤이라는 전통 놀음에 현대 언어를 입혀 풀어낸 시대극이다.

극은 하나 뿐인 피붙이 ‘동백이’를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놀이꾼 강노인의 삶을 통해 제주 4.3의 실상을 고발한다.

광복을 맞은 제주도민들은 3.1운동을 기념해 시위를 벌이고, 경찰이 무참히 진압하면서 희생자가 발생한다. 이에 민중들이 격렬히 항의하자 국가는 제주도민 3분의1을 빨갱이로 몰아 무참히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무대 위에 설치된 소품이라고는 막대기 두 개에 줄을 묶어 흰 광목 줄기를 늘어뜨린 장막과 솟대가 유일했다. 광목 장막은 때론 담장처럼 마을 풍경이 되기도 하고, 때론 다음 장면을 준비하는 막이 되기도 했다. 동백이와 제주 사람들이 군인과 경찰을 피해 산으로 숨어드는 장면에서는 깊이가 있는 동굴로 표현돼 현장감을 살려주었다.

죽어야 하는 이유도 모른 채 해방된 나라에서 아군과 경찰의 총에 쓰러져간 동백과 순박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미 끝나버린 옛 이야기가 아니다.

1948년 제주 4.3에서 드러난 국가의 무자비한 폭력과 잔혹성은 32년 후 광주에서 5.18이라는 이름으로 재현된다. 그리고 34년이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란 이름으로 되풀이 되고 있다. 그 뿐인가. 2016년 현재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동원된 군위안부들에 대해 일본정부와 한국정부는 제대로 된 책임 규명과 배상 없이 사건을 암흑 속으로 묻으려 하고 있다.

▲ 1948년 제주 4.3에서 드러난 국가의 무자비한 폭력과 잔혹성은 역사 속에서 되풀이 되고 있다.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 나라의 민중에게 참혹하고 억울한 죽음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작은 무대와 소박한 소품들, 1인 다역을 소화해 낼 수 밖에 없는 얇은 출연진, 쥐꼬리 예산 지원에 목매야 하는 지역 문화단체의 현실 또한 이러한 시대 현실과 어찌 무관하겠는가.

우리는 눈을 돌려 물어야 한다. 국가란 무엇인가? 저들에게 민중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제대로 된 국민, 국가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국가에 대한 의심과 외침이 국가를 건강하게 만든다. 국가에 대한 맹신과 침묵이 오히려 국가를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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