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딥하우스 리믹스의 향연

  아침에 음반 한 장이 도착했다. 예전에는 어떤 음반이 도착하는지 미리 찾아서 읽어보았는데 이번에는 그 마음을 꾹 참아내고 택배를 기다렸다. 나름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받는 기분으로 말이다.

  테이프를 뜯어내고 포장지에서 음반을 살짝 들어 올렸을 때가 사실 기분이 가장 묘하다. 내 세계에 이 음반의 세계가 더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포장지에서 완전히 꺼내니 클래식하고 깔끔한 무채색의 음반이 모습을 드러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차분한 겨울밤의 모습 같달까. 정적인 음악을 상상하고 있다가 "Selected Remixes"라는 글씨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도대체 어떤 음악이길래 이렇게도 시크한 옷을 입고 내 방으로 찾아왔을까.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이 음반의 제작자, Nakamura Takahiro(나카무라 다카히로)는 도쿄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레이블 Kuh Recording을 설립하고 2012년 재패니즈 하우스/디스코 레이블인 Reimei Music을 새롭게 설립해 꾸준한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DJ/프로듀서이다. 프랑스의 마을 Collioure(콜리우르)에서 영감을 받아 그 이름을 자신의 솔로 프로젝트에서 쓰고 있는데, 올해인 2015년이 그의 데뷔 10주년이라고 한다. 그는 딥 하우스, 뉴 디스코, 프로그레시브 하우스까지 광범위한 영역의 음악 작업을 해오고 있다.

  오늘 내 손에 들리게 된 이 음반에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그가 발표한 많은 리믹스들 중 엄선된 12개의 트랙이 담겨있다. Collioure의 손끝에서 다시 다듬어진 전 세계 곳곳 뮤지션들의 음악을 한 음반에서 만날 수 있으니 보이지 않는 끈이 이곳저곳에 묶여있는 것 같았다. 그 끈들을 따라 입소문만으로도 스테디셀러를 기록한 그의 저력을 확인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첫 트랙에는 우크라이나 일렉트로닉 그룹 Tomato Jaws의 'Dreaming (Of You)'의 리믹스 버전이 담겨있다. 꿈속을 정신없이 떠돌 것만 같은 트랙이다. 원곡보다 더욱 깊은 느낌이 나는 신스를 사용해 'Dreaming'이란 주제를 콜리우르만의 맛으로 잘 살려냈다.

  곧이어 리듬감을 그대로 이은 채 Noelle과 함께한 이탈리아 아티스트 Alex & Chris의 'Peace Of Mind' 리믹스 버전이 흘러나온다. 이미 원곡이 딥하우스 씬에서 큰 히트를 기록한 곡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콜리우르의 리믹스 버전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불빛이 진하게 반짝일 것 같은 사운드가 시작되자 말리부 럼을 베이스로 한 칵테일을 손에 쥐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 곡은 스페인으로 연결된다. Deephope의 'Long Way' 리믹스 버전이 담긴 세 번째 트랙은 제목처럼 까마득하게 긴 통로를 걸어가는 기분이 든다. 짧은 호흡들 가운데로 기나긴 신스 사운드가 펼쳐지다가 발걸음만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필리핀으로 넘어간 이번 곡은 CONCL△VE의 'Ocean Star' 리믹스 버전이다. 남태평양의 환한 물결을 눈에 보이는 음악처럼 들어낼 수 있는 환상적인 트랙이다. 다소 무게감이 느껴지던 원곡에다가 콜리우르 특유의 리듬감을 실어내면서도 원곡이 가진 광할한 이미지를 놓치지 않았다.

  낙천적인 분위기를 이어 러시아 아티스트 Cipcura의 'Every Day' 리믹스 트랙이 등장한다. 경쾌한 브라스 효과음과 묵직한 하우스 비트가 기분 좋은 느낌을 만들어낸다. 계속해서 러시아 아티스트 Perfect Senses의 'Jazzile'이 이어진다. 시크한 비트가 나오다가 중반부에 신비로운 기운이 감돌 때 매력적인 느낌이 들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아티스트 Bassline Romance의 'Juno101' 리믹스 트랙은 다소 무겁던 분위기가 바이브 넘치는 인트로로 순식간에 반전된다. 딜레이(delay) 자체를 리듬으로 잘 실어 비트가 한결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탈리아 아티스트 Alex & Chris의 곡이 등장하는데 Shatti와 함께 한 'Elements'의 리믹스 버전은 낭만적이고 기름지다. 절대 늦추는 감 없이 비트를 시원스레 밀고 나간다. 뒤를 이어 시크함이 잔뜩 묻어나는 필리핀 아티스트 Miguel Libre의 'Half Measures' 리믹스 트랙이 등장한다. 은근하게 퍼져나가는 감각적인 전개를 선보이는 우크라이나 아티스트 Playone & Vadim Griboedov의 'Number One' 리믹스 버전이 지나가면 한결 여유로워진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

  러시아 아티스트 Tom Carmine의 'Mediterraneo' 리믹스 트랙은 맑고 깨끗한 피아노 소리가 인상적인데 스페인어로 '지중해'라는 뜻을 가진 제목과 연관 지어 생각하다 보면 바닷물이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이 표현된 것 같다. 중반부에서 비트가 빠지면서 더욱 아득한 느낌을 자아낸다.

  마지막은 Kensuke Fukushima의 'Sunset Flow' 리믹스 트랙이 장식하고 있다. 도입부부터 아름답고 환한 느낌이 드는데 원곡에서 느껴지던 바이브함을 줄이고 좀 더 어쿠스틱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했다. 언어가 절제된 콜리우르와의 여행은 해넘이를 함께 지켜보며 막을 내린다.

  마지막 트랙까지 다 듣고 나서 앨범을 다시 집어 드니 무채색의 음반이 더욱더 신비로워 보였다. 검은색 물감이 딥하우스의 가볍지만은 않은 무게감을 잘 나타내고 있었고, 자연스레 스며든 형태는 그의 음악을 닮아있었다. 우크라이나, 이탈리아, 스페인,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 러시아, 일본을 넘나드는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작업에 그만의 개성을 잘 녹여내서 Collioure라는 하나의 색깔을 만들어낸 기분이랄까. 그 색깔이 마음에 들어서 이 음반을 계기로 그의 음악을 좀 더 찾아 듣기도 하였다.

  콜리우르를 위한 사운드그래피. 무채색인 그의 앨범아트를 따라서 나도 흑백으로 담아보았다. 리믹스 트랙들을 들으면서 시크하고 몽환적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안개 낀 도시의 전경'은 그 두 가지를 포괄하는 이미지일 것 같았다. 날 선 경계들이 안개로 인해 모호해지고 전체적으로 비슷한 톤이 되었다. 여기서 콜리우르의 리믹스 작업은 '안개'의 역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전 세계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자신의 색깔로 이어준 것에 있어서 '광안대교'의 이미지에도 그를 연관시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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