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곡면 농민항쟁기념탑 앞 참배식 열려
1862년 전국농민항쟁의 출발점

 

진주 수곡면에 있는 진주농민항쟁 기념탑 / 사진=조세인 기자
진주 수곡면에 있는 진주농민항쟁 기념탑 / 사진=조세인 기자

“동치원년 임술년(1862, 철종 13) 2월 19일 진주민 수만 명이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손에 몽둥이를 들고 무리를 지어, 진주 읍내에 모여 이서-이방과 하급 관리들의 집 수십 호를 태우니, 행동거지가 가볍지 않았다. … 그 분을 풀기 위해 병사들을 병영에 잡아들여 이방 권준범(權準範)과 관물(官物)을 사사로이 써 버린 이속(吏屬) 김희순(金希淳)에게 엄히 10여 대를 곤장으로 힘껏 때리고는 무리 지은 백성들이 계속해서 양 관리를 불 속에 던져 태워 버려 재도 남지 않았다. 이방의 아들 권만두(權萬斗)가 그 아비를 구하고자 했으나 또한 난민에게 밟혀 죽었다.”

1862년 진주에서부터 시작된 농민봉기에 관한 기록을 수집해 1958년 간행한 <임술록>의 내용 중 일부다.

진주농민항쟁이 일어난지 162주기를 맞아 진주 농민들이 항쟁이 발발한 수곡면 농민항쟁기념탑 앞에 모여 참배식을 가졌다.

진주시농민회 김복근 회장은 “과거 삼정문란에 맞서 우리 농민들이 봉기를 했다. 과거와 현재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선거를 통해 정부를 심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주시농민회 전주환 전 사무국장은 “불의한 것을 보면 행동하고, 나보다 못한 사람이 있으면 같이 보듬고 가는 측은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진주였다”며 “그러한 진주 역사를 기억하는 곳이 수곡에 있는 진주농민항쟁탑이고, 진주의 자랑”이라고 밝혔다.

1862년 진주농민항쟁 이후 전국 곳곳에 농민항쟁이 일어났으며, 이 움직임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116주년 진주농민항쟁을 기리기 위해 모인 진주시농민회. 진주시여성농민회 회원들 / 사진=조세인 기자
116주년 진주농민항쟁을 기리기 위해 모인 진주시농민회. 진주시여성농민회 회원들 / 사진=조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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