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 이현동 나불천 산책로

휴대전화는 곧잘 충전하라고, 밥 달라고 조른다. 나 역시 오늘은 휴대전화를 충전기에 꽂듯이 쳇바퀴 돌아가는 일상에서 지친 나에게 에너지로 충전하러 길을 나섰다. 더구나 프랑스 파리에 있다는 퐁네프 다리를 보러 진주 이현동으로 갔다.

▲ 진주시 이현동 퐁네프 산책로.

경남 진주에서 산청으로 출퇴근하면서 먼발치에서 퐁네프의 다리를 봤다. 궁금해서 지리산 일대에 첫눈이 내린 25일 걸었다. 이현동 웰가 아파트 앞에서 눈이 날렸다. 붉디붉은 단풍잎 사이로 눈발이 날리는 사이로 털모자를 쓴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빨간 남천 열매가 따스하게 위로해주고 개망초들이 태양을 닮은 노란빛으로 달래준다. 아파트에는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 오는 이의 짐 나르기가 한창이다.

▲ 진주시 이현동에 있는 ‘퐁네프의 다리’

‘퐁네프의 다리’는 이현동 나불천을 잇는 다리를 지났다. 이 주위를 일컬어 퐁네프 산책로라고 한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에 나오는 프랑스 파리 퐁네프 이름을 빗댄 모양이다. 다리는 사랑이 영글기를 바라는지 다리 앞 난간에는 장미 문양이 붙어 있다. 다리에는 진주시의 상징 새인 백로를 담은 새들이 힘차게 날갯짓하며 날라오는 모양이 꾸며져 있다. 지나가는 어르신들에게 여쭤도 이 다리 이름도 몰랐다. 근처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다리를 지어 진주시에 기부하면서 이 다리 이름도 프랑스의 퐁네뜨 다리라고 부른 듯하다.

▲ 경남 진주시 이현동과 명석면을 잇는 자전거 전용도로.

아파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얼마를 걷자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으로는 명석면으로 가는 자전거 전용도로고 오른편은 아파트 둘레다. 왼쪽으로 길을 잡았다. 집현면과 내동면을 잇는 진주 시내 우회도로 밑을 지났다. 진주 남강의 지류인 나불천 옆으로 난 길에는 코스모스가 가냘프게 바람에 이리저리 추위에 떤다.

▲ 진주 남강의 지류인 나불천 옆으로 난 길에는 코스모스가 가냘프게 바람에 이리저리 추위에 떤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뒤를 돌아보았다. 1,000세대가 넘은 아파트 단지와 중고등학교 건물들이 진주 시내 풍광을 막는다. 자전거 전용도로는 딱딱한 시멘트 포장길이다. 하천 건너에는 흙길이요 텃밭들이 이어져 있다. 아쉽지만 하천 건너편의 길을 몰라 잘 닦인 길을 따라가기로 했다. 노란빛을 벗고 주황빛으로 갈아입은 나무가 햇살에 반짝인다. 장갑을 끼고 겨울 잠바를 입은 아주머니 둘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온다.

 

▲ 진주 나불천에는 청둥오리들이 노니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장미 터널이 나온다. 다 떨군 지 않았더니 한두 송이 간간이 붉게 인사를 한다. 청둥오리 4마리가 한 방향으로 도랑을 헤엄친다. 개울에서 노니는 새들의 풍경에 걸음을 멈췄다. 두 마리가 연인처럼 옆으로 나란히 가고 다른 두 마리는 마치 결혼한 아줌마, 아저씨처럼 간격을 벌려 그 뒤를 따른다. 얼마쯤 더 가자 오리들이 많아진다. 엉덩이를 하늘로 쫑긋 세우고 물속의 먹이를 쫒는 녀석도 있다.

▲ 진주 나불천을 따라 놓여진 자전거 전용도로 쉼터.

돌아보았다. 길은 아파트 숲으로 이어져 내달린다. 앉는 의자가 놓여있는 쉼터에 잠시 쉬었다. 벽기둥에 ‘참 좋은 날’이라는 스티커가 붙었다.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다. 걸어서 상쾌한 날이다.

▲ 개울 건너에 이른 겨울의 하얀 속살을 보는 듯 은사시나무들이 곱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개울 건너에 이른 겨울의 하얀 속살을 보는 듯 은사시나무들이 곱다. 드문드문 내리던 눈도 멈추고 구름 사이로 햇살이 드문드문 나온다. 집현면 광제산이 보인다. 이현동을 지나 명석면으로 접어들었다.

▲ 진주시 집현면 광제산이 보인다.

농로에서 짐 자전거를 끌고 자전거도로로 올라온 할머니가 날렵하게 자전거에 오른다. 서부시장에 저녁 찬거리를 사러 간다며 힘차게 바람을 가른다. 수탉들이 한쪽 구석에 모여 서로의 체온으로 바람을 이겨낸다. 무리에 떨어진 보다 더 덩치가 큰 수탉 한 마리는 무덤덤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 길 건너 붉나무들이 붉은 빛으로 활활 타오른다.

걸은 지 30분이 되었다. 나불교 앞에는 ‘보국 충석의 고향 명석면’이라는 큼지막한 간판이 나온다. 반환점이다. 왜가리 한 마리 다리 아래에서 마치 활주로를 날아올라 가는 비행기처럼 날갯짓하며 다리 사이를 박차고 올라간다. 내 걸음에 놀랐을까.

▲ 경남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新基里) 솔기 저수지에서 시작해 진주 시내를 흐르다가 인사동(仁寺洞)에서 남강에 합류하는 나불천.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갔다. 길 건너 붉나무들이 붉은 빛으로 활활 타오른다. 갈대가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손수건처럼 곱게 펄럭이다. 갈대 무리를 지나자 개망초 무리들이 환하게 합창하듯 바람에 흔들거린다. 추위가 가셨다.

명석면 신기리(新基里) 솔기 저수지에서 시작해 진주 시내를 흐르다가 인사동(仁寺洞)에서 남강에 합류하는 나불천을 사이에 두고 하늘이 푸르고 구름이 맑다. 얼마 전까지 눈이 날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바람이 멈추고 빛이 머물렀다. 서산으로 가는 햇살이 나무 이파리에 걸렸다. 빛이 곱다.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다.

▲ 진주 나불천 위로 새들이 에어쇼를 펼치듯 다양한 형태로 날아간다.

진주에서 산청으로 가는 국도 3호선에 트럭이 쌩 달리고 마치 경주를 하는 듯이 아래 농로를 오토바이가 달린다. 하늘에는 새들이 V자 꼴로 대형을 지으며 날다가 일렬횡대로 날아갔다가 휙 돌아서 일렬로 난다. 하천 너머 소나무 위에는 부부 싸움이라도 한 것인지 왜가리 한 쌍이 서로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본다. 에어쇼를 펼치듯 새 5마리가 V자로, 일렬로, 횡대로 다양하게 날아간다. 두 날개 가득 펼쳐 바람에 몸을 맡겨 푸른 하늘을 헤엄치는 새들이 부럽다. 새들의 에어쇼를 저 너머 구름도 함께 구경한다.

▲ 진주 도심과 맞닿은 나불천 산책길은 진득하게 주위 자연과 이야기를 나누는 길이다.

진주 도심과 맞닿은 나불천 산책길은 진득하게 주위 자연과 이야기를 나누는 길이다. 마음이 서늘할 때면 따뜻한 우동 한 그릇처럼 가볍게 걸으며 내 몸 안을 데울 수 있다. 일상에서 지친 나에게 휴식이 필요할 때면 가벼운 수다처럼 기분을 바꾸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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