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축구 국가대표팀에 위로받고
용기·지성 겸한 국대 면모에 감명받고

홍창신 칼럼리스트
홍창신 칼럼리스트

축구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날들이다. 우리 국가대표팀이 아시안컵 8강전에 이르기까지의 전황은 곳곳에 극적 반전을 정교하게 장치한 한 편의 잘난 연속극이다. 사흘거리로 아라비아의 마당에서 연출하는 이 꿀맛 같은 한밤의 드라마는 곤한 일상을 버티는 공동체에 모처럼 생기가 돌게 하는 엔도르핀이다. 나라 안팎으로 반길만한 소식보단 궂고 험한 소리만 들려오고 날씨마저 꽁꽁 얼어붙은 고달픈 세월이라. 91분, 94분, 99분, 96분에 결승 골을 넣는 '뒤집기 쇼'라니, 엄동설한을 박박 기는 국민 제위께 삼가 위로를 드려야겠다는 '국대'된 자들로서 시대적 사명감이 아니고서야 도대체 어찌해내랴. 그 웅숭깊은 심지에 감복한다. 공정과 상식의 표상이란 껍데기를 쓰고 뽑힌 또 다른 '국대' 명색이 벌이는 갖은 행악으로 썩어 내려앉는 심사가 그나마 위로받는 시간이었다.

피파 순위 130위의 말레이시아에 졸전 끝에 비겼다고 분을 내고 비난을 퍼부은 밤에도 나는 흐뭇하기만 했다. 6골이 나온 경기였으니 구경거리로도 프리미어리그 못잖은 풍성한 밤이었고 더구나 저쪽 사령탑은 김판곤 감독 아닌가. 침체한 말레이시아 축구를 맡아 바람을 일으키던 중 아시안컵 출전 자격을 얻었으나 2패하며 탈락이 확정돼 의기소침한 시점이다. 그러니 피파 순위 23위와 사투 끝에 얻은 극적인 무승부는 말레이시아 반도의 밤을 들뜨게 해주기에 충분했고 김 감독 체면도 늠름히 세워줬다. 우리로서는 진 것도 아니거니와 비겼다고 탈락하는 것도 아니니 이거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멋진 화국이 아닌가. 베트남에서 돌풍을 일으킨 박항서, 인도네시아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신태용과 더불어 동남아 축구 르네상스를 불러일으킨 국대 선배 김판곤 감독에 대한 사려 깊은 예우였다고 보는 것이다.

사우디전은 우리 '국대'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란 '요기 베라'의 명언을 온몸으로 체현한 드라마였다. 헛발질로 바가지 욕을 먹던 조규성이 머리띠 전사의 명성을 회복했고 벤치에 묻혀있던 조현우는 '빛현우'란 이름값을 했다.

호주의 노란 유니폼은 우리보다 월등한 그들의 체격과 체력을 더욱 두드러지게 했다. 시작하자마자 "아이가 아이가 이거 에럽것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거한들이 늘어선 저들의 막강 수비는 우리 포워드의 기술로는 불감당이란 비관에 빠지도록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그 틈을 헤집은 황희찬의 페널티킥은 거침없이 담대했고, 손흥민 프리킥 궤적은 아름다웠다. 손흥민이 잘한다지만 감히 차범근과 우위를 비교할 수 있나!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번 시합 과정을 통해 한층 도약한 우리 주장의 원숙함을 확인했다. 무르익은 기량의 탁월함에 더해 경기 외적으로도 빛나는 그 청년의 품성에서 받은 감명이다.

때마침 차범근 감독이 세간의 입살에 오르내린다. 선고 공판을 앞둔 조국 교수의 재판정에 낸 탄원서 때문이다. "벌써 5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조국 가족이 감수한 징벌은 비슷한 경험을 한 대한민국의 수많은 학부모에게 큰 경종이 되었으리라 확신한다." 보수 매체들은 차 감독이 낸 이 탄원의 발췌문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대한민국의 수많은"이란 문장을 빼고 헤드라인을 뽑는다. 그 부분의 함의가 지닌 통렬함을 가려 비난을 유도하려는 간악한 수법이다. 나쁜 놈들 전성시대다. 비난과 보복을 무릅쓰고 이 검언 잔혹극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나선 차 감독의 용기와 지성에 감탄한다. 진정한 '국대'의 면모를 본다.

*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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