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장대 아래 함양군 안의면 주민들이
수축했던 것으로 유추돼
기록 새겨진 돌, 북장대 아래에

1680년, 진주성 북장대 아래 성벽을 안음지역(현 함양군 안의면) 사람들이 고쳐 쌓았음을 유추할 수 있는 기록이 나왔다. 북장대 아래 성벽(바깥쪽)을 이루는 돌들 사이에서다. 문구가 새겨진 돌은 10여년 전 발견됐지만, 공론화되는 건 처음이다. 돌 위에는 ‘강희 19년 2월 안음(康熙十九年二月安陰)’이라는 글귀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강희는 청나라 연호이며, 강희 19년은 조선 숙종 때인 1680년을 말한다.

 

1680년 진주성을 고쳐 쌓을 때, 안음지역(현 함양군 안의면) 사람들이 북장대 아래를 담당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흔적. 10여년 전 발견됐지만, 공론화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다.
1680년 진주성을 고쳐 쌓을 때, 안음지역(현 함양군 안의면) 사람들이 북장대 아래를 담당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흔적. 10여년 전 발견됐지만, 공론화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다.

강호광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은 지난 2일 현장을 찾아 10년여 전 우연히 이 돌을 발견해 국립진주박물관과 진주성관리사무소에 제보했지만, 별다른 후속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1680년 진주성을 고쳐 쌓을 당시 14개 지역민이 동원됐지만, 동원된 이들이 어느 지역을 수축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며 이 돌을 보전 관리해야 할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사료로써 가치가 있다면서다.

다만 그는 “조금 더 조사가 필요하다”며 기록이 남겨진 돌이 1680년 이후 한 차례도 옮겨지지 않았는지는 불분명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옮겨진 적 없는 돌이라면 1680년 진주성을 고쳐 쌓을 때 당시 안음(현재 함양군 안의면)에 살던 이들이 북장대 인근 진주성을 고쳐 쌓았음을 알 수 있는 기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680년 진주성을 고쳐 쌓을 당시 14개 인근 지역민들이 동원됐지만, 이들이 수축을 담당한 구역은 여지껏 알려진 바 없다.

 

1680년 진주성을 고쳐 쌓은 기록이 새겨진 돌들, 이들은 기존에 발견돼 안내판을 세워 소개하고 있다. 위치는 공북문 오른쪽 편.
1680년 진주성을 고쳐 쌓은 기록이 새겨진 돌들, 이들은 기존에 발견돼 안내판을 세워 소개하고 있다. 위치는 공북문 오른쪽 편.

진주성에는 이 돌 이외에도 1680년, 진주성 수축에 나선 지역민을 유추할 수 있게 하는 돌이 2개 더 있다. 이 돌들은 공북문 오른쪽에 위치해 있으며, 시는 안내판을 통해 이 돌의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다만 이 돌들은 진주성 수축에 동원된 지역민이 누구인지 엿보게 할 뿐, 이들이 어디에 투입돼 작업했는지는 명시하고 있지 않다. 이 돌들은 1980년대 성벽 복원 시 현 위치에 끼워 넣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기록에 따르면, 1680년 진주성 수축 시 작업을 담당한 이들은 진주, 사천, 곤양, 남해, 하동, 단성, 산음(산청), 함양, 안음(안의), 거창, 합천, 초계, 의령, 삼가 등 14개 읍 지역민(출신 군인들/속오군)이다. 진주성 공북문 옆에 자리한 돌에는 ‘강희 19년 산음(산청) 마병증초 사천 곤양 하동 단성 함양 등 여섯 개 관할구역이 한 개의 조를 이루어 (돌을) 쌓았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다만 이 돌의 본래 위치는 알 수 없다.

진주성관리사업소는 이번에 확인된 돌을 살펴본 뒤, 후속조치 등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단디뉴스 = 김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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