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호·박진환 선생 일가 이름 음각 발견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 유추·확인 가능”

옥봉고분군 아래 벽면에서 발견된 강상호, 박진환 선생 일가 이름 음각
옥봉고분군 아래 벽면에서 발견된 강상호, 박진환 선생 일가 이름 음각

[단디뉴스=김순종 기자] 경남 진주시 옥봉동에 위치한 옥봉고분군 아래 벽면에서 형평운동가 강상호 선생과 독립운동가 박진환 선생 일가의 이름이 음각된 벽면이 발견됐다. 벽면에 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이유나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들이 가진 상징성과 잘 알려지지 않은 몇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벽면을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단디뉴스는 17일 봉양학교(현 봉래초등학교) 설립을 주도한 인물이자, 독립운동가인 강재순(姜在淳) 선생과 그의 아들이자 형평운동의 선도자인 강상호(姜相鎬/본명 강경호, 姜璟鎬) 선생, 진주를 우리나라 소년운동의 발상지로 만든 강영호(姜英鎬) 선생을 포함한 일가 다섯 사람의 이름이 음각된 벽면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현장을 방문했다.

벽면에는 이들 일가와 구한말 전북 무주, 영동, 추풍령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박진환(朴進煥) 선생의 일가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박진환 선생은 1919년 3·1운동 때 진주에서 김재화·강달영 등과 만세시위를 주도한 인물이다. 1927년 신간회 진주지회 설립에 참여하기도 했다. 1980년 건국포장이 추서됐다.

 

벽면 왼쪽에 형평운동가 강상호 선생 형제들의 이름이 음각돼 있다. 
벽면 왼쪽에 형평운동가 강상호 선생 형제들의 이름이 음각돼 있다. 

이들의 이름이 이곳에 음각된 시기나 이유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강재순 선생의 아들 4명의 이름이 모두 음각돼 있는 점에 비추어보면, 1904년 이후 이들 이름이 음각됐을 것이라 추정된다. 강재순 선생의 네 아들 가운데 막내인 강신호 선생의 아명 강복호(姜福鎬)가 음각돼 있는 점을 보아서다. 그는 1904년생으로 1927년 작고했다.

벽면에는 강재순(姜在淳) 선생을 시작으로, 그의 맏아들인 형평운동가 강상호 선생의 본명 강경호(姜璟鎬), 젊은 나이에 요절한 둘째 아들 강기호(姜箕鎬), 소년운동을 하다 일본 유학 중 색동회를 조직한 소년운동가 강영호(姜英鎬) 선생, 서양화가였으나 남강에서 익사한 강신호(姜信鎬)의 아명 강복호(姜福鎬) 등이 모두 새겨져 있었다.

 

벽면 오른쪽에 박진환 선생 일가와 강재순 선생의 이름이 음각돼 있다.
벽면 오른쪽에 박진환 선생 일가와 강재순 선생의 이름이 음각돼 있다.

왼쪽 바위에는 박진환(朴進煥) 선생과 그의 아버지, 형제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강호광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장은 이 같은 벽면이 발견된 점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음각을 통해 강재순 선생의 막내아들인 강신호의 아명이 강복호임을 유추할 수 있고, 독립운동가 박진환 선생의 가족 관계도 확인해 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름이 음각된 시기와 이유 등은 연구해봐야겠지만, 우선 벽면을 보존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음각 발견 후 박진환 선생의 가족과 연결이 됐다”며 벽면에 새겨진 박상순(아버지)과 박진환의 형제 박영환, 박우환, 박증환이 가족관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족들에 따르면, 형평운동가 강상호 선생과 독립운동가 박진환 선생이 친밀한 사이였고, 기록이 미비하지만 박 선생도 형평운동에 일조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한편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애국계몽운동에 매진한 박진환 선생과 강영호 선생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좌익활동가라는 이유로 희생됐다. 보도연맹원으로 몰려서다. 강호광 지회장은 “색깔론으로 이분들이 해온 노력들이 지금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진 경향이 있다”며 “이분들이 제대로 평가받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단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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