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규 시인
김한규 시인

[단디뉴스=김순종 기자] 김한규 시인(=단디뉴스 필진)이 제5회 박상륭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박상륭상 운영회의는 지난 20일 올해 박상륭상 수상작으로 김한규 시인의 ‘안보동물’ 외 23편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운영회의는 수상자 선정을 위해 소설, 시, 평론, 희곡 등 163명 166편의 작품을 평가해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운영회의 측은 김한규 시인의 ‘완보동물’ 외 23편의 시를 두고 “감정도 심상도, 심지어는 감각마저 다른 차원으로 변용하여, 냉혹할 정도로 건조하고 치밀한 언어로 꾸며내는 구성력이 일품이었다”고 평가했다. “한국 시에서 볼 수 없었던 ‘조직력’”, “호흡과 리듬이 탄탄하다”, “정교하고도 실험적인 통사구조의 자유로운 운용능력이 있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박상륭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한규 시인은 196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2017년 영남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2021년 시집 ‘일어날 일은 일어났다’를 펴냈다. 그는 이번 수상소식에 “시가 인간에게서 비롯될지언정 인간을 위한 것만은 아니어서, 다시 인간의 길을 톺아볼 수 있게 한다”며 “우려와 격려(를 보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는 소감을 전했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박상륭상은 고 박상륭 작가(1940~2017)의 문학 정신을 기리고자 2018년 제정됐다. 시, 소설, 희곡, 평론, 논문 분야 응모작을 받아, 해마다 단 한 편만을 수상작으로 선정, 시상한다. 수상작을 두고는 아무런 권리를 갖지 않으며, 작품집도 내지 않는다. 수상금은 천만원이며, 시상식은 오는 4월 열릴 예정이다.

 

완보동물 / 김한규 시인

 

걸을 준비 없이 생각 없이 걷지 않는 걸음이다 말할 수 없는 걸음 사이를 묻지 않고 물을 수 없게 궁금하지 않는다 살지 않으면서 살면서 망각도 없이 망각을 모르며 잊은 채로 기억을 모른다 몰락하고 있는 사이를 이미 몰락한 기관으로 들어가 숨을 죽이고 버티는 곳을 찾지 않으며 안이 되었다 처음도 아닌 처음에서 끝을 잘라낸 끝에서 시작하며 시작을 끝는다 머뭇거리지 않으며 줄곧 생각하지 않으며 기능과 작동의 세계를 세계로 삼지 않는다 되돌아오는 법이 없이 닿는 곳을 멈추지 않는 고요한 습관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기이하게 보이려는 의도 따위는 아무런 기이함도 없이 어떤 수단도 되지 않았다 올려다보는 눈과 내려다보는 눈을 함께 닫고 창은 열지 않는다 할 말이 없는 이유를 말에서 찾지 않는 오랜 침묵이 저절로 부화한다 남지 않으려는 의지를 남기지 않고 뒤에서 자꾸만 뒤로 물러났다 생겨난 것에서 필요한 것을 구하지 않는 방법으로 구하게 되었다 밖은 밖이 아닌 곳으로 만들어 가두지 않고 들어가지고 나오지도 않고 버려두었다 되풀이하지 않고 거듭하지 않으며 자리를 바꾸지 않는 하나의 동기뿐이다 그것을 낳으려고 낳지 않았다  죽는 기분을 갖지 않은 채로 죽음을 싸고 있다 살면서 죽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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