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을 다녀와서

강정마을 해안가
강정마을 해안가

모처럼 긴 휴가를 다녀왔다. 휴가지는 제주도. 여행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 이번 여행이 사실상 첫 제주방문이었다. 제주에 머물며 바라본 이색적인 풍경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감정과 깨달음을 주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세차게 와 닿은 건 제주 강정마을에서 목격한 사람들의 ‘진심’이었다. 그들의 ‘진심’이 마음을 울렸다.

평화의 섬 제주에 해군기지를 짓겠다며 구럼비 바위를 폭파한 지 10여년, 제주해군기지가 강정마을에 들어선 지도 7여년이 지났다.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 숱한 이슈들이 휘발성 있게 소진되지만, 제주에는 여전히 구럼비 바위와 아름다웠던 강정마을 해변가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었다. 10여년 넘게 평화의 섬 제주를 만들자는 외침을 이어가는 이들이다.

그들을 만난 건 기억 너머에 있던 구럼비 바위를 떠올리고 강정마을로 향하면서다. 차량을 운전하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그들은 한참 미사를 올리는 중이었다.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고 기도하는 그들은 무엇을 바라 10여년 넘게 투쟁하고 있는 것일까.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의 몸짓에서 평화를 바라는 ‘진심’을 느꼈다.

강정마을 해안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여행을 함께 떠난 옆지기는 “제주를 여러 차례 와 봤지만, 이러한 곳이 있는지 몰랐다”며 해안가 풍경을 연신 극찬했다. 다만 해안가 한 쪽에는 그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해군기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안내판은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라고 이곳을 소개하고 있었지만, ‘관광미항’이라는 말은 도무지 와 닿지 않았다.

해안가 한 측에 자리한 카페에서,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만들자며 미사를 올리던 이들을 생각했다. 그들의 모습은 해안가의 풍광과 어우러져 마음을 흔들었다.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선 지 오래인데도 여전히 평화의 섬 제주를 요구하는 이들의 ‘진심’이 마음을 울렸다면, 안보니 물류니 하는 이유로 그들의 ‘진심’을 외면한 이들의 횡포에 슬픈 감정이 일었다.

강정마을에서 본 풍경은 지역에 와서도 마음 한 쪽에 남아있다. 정확히는 10여 년간 투쟁해온 사람들의 ‘진심’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 사회를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들자던, 인간 본위의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곳이 돼야 한다던 숱한 이들의 ‘진심’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지 떠올렸다. 그들은 10여년 넘은 이들의 투쟁과 같은, '진심’을 가지고 있을까.

혹여 승리할 가능성 있는 투쟁에만 집착하며 실상은 이익을 바라, 주판알 튕기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

강정마을을 다녀온 뒤 ‘힌남노’가 제주를 휩쓸던 밤, 요동치는 창문 밖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태풍이 우리사회의 위선과 가식을 모두 휩쓸어 가버렸으면, 그리고 그 자리에는 강정마을에서 본 것과 같은 ‘진심’만이 남았으면. 무엇보다 나의 마음속에 허세와 허위가 아닌 오랜 시간 지속될 ‘진심’이 가득 차올랐으면..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