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사람 박노정」출판기념 추모제 열려

[단디뉴스=강누리 기자] 고향 진주에서 시인, 언론인, 시민운동가로 폭넓은 행보를 이어오다 2018년 작고한 고 박노정 선생 4주기를 맞아 추모집 진주사람 박노정이 출판됐다. 이에 따라 지난 30일에는 장대동 현장아트홀에서 출판기념회 겸 추모제가 열렸다. 고 박노정 선생과 인연이 깊은 이들은 이날 대담, 추모노래와 춤 공연, 시 낭독 등으로 그를 추모했다.단디뉴스

이날 김경현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전문위원, 류재수 전 진주시의원, 조구호 경상국립대 연구교수 등은 대담자로 나서 고 박노정 선생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언론인으로서의 박노정 선생, 시민운동가로서의 박노정 선생, 시인으로서의 박노정 선생과 얽힌 일화를 두고서다. 행사 참석자들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 박노정 선생을 함께 그리워했다.

 

오른쪽부터 김경현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전문위원, 류재수 전 진주시의원, 조구호 경상국립대 연구교수
오른쪽부터 김경현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전문위원, 류재수 전 진주시의원, 조구호 경상국립대 연구교수

‘결단 있고, 외압에 굴하지 않은 언론인’

김경현 행정안전부 과거사 관련업무지원단 전문위원은 진주신문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고 박노정 선생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과거 ‘남강댐 보강공사에 따른 수몰지 보상과 측량비리 및 부정 보상’ 내용을 보도해 박 선생과 검찰조사를 받았던 일화를 설명하며 ‘언론인 박노정’은 결단력 있고,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1993년 사천시 모 의원이 측량비리로 부정보상을 받았다는 내용을 보도했다가, 고 박노정 선생과 함께 5년간 법정다툼을 이어갔다. 그는 기사가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박 선생의 결단 덕분이었다고 했다. 또 1,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가 최종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을 두고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은 박 선생님의 승리이자 진주신문의 승리였다"고 회고했다.

김 위원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에서 일하고 있는 것도 고 박노정 선생의 영향을 받아서라고 했다. 그는 “진주신문을 떠나면서 진실 규명에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역사를 제대로 알고 사실 여부를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어 과거사위에서 일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일을 하게 된 것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자 노력하셨던 박노정 선생님의 영향”이었다고 말했다.

 

‘잘못된 역사 바로잡으려 했던 시민운동가’

류재수 전 진주시의원은 시민운동가로서 겪은 고 박노정 선생의 일화를 전했다. 그는 2005년 5월 진주성 의기사에 걸려있던 친일화가 김은호의 ‘미인도 논개 복사본’을 박노정 선생과 함께 떼어냈다가 벌금 5백만 원을 선고받고, 노역장에 유치된 바 있다.

류 전 의원은 “박 선생님이 (친일화가가 그린) 논개 그림과 관련해 진주시에도 여러 차례 문의했으나 바뀌는 게 없다면서 연락을 주셨다. 이에 시와 언론에도 알리지 않고 시민단체 회원들과 현장에 모여 망치로 유리를 깨고 그림을 떼어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이로 인해 벌금 5백만 원을 선고받았지만, 벌금 처분이 부당하다며 납부를 거부해 1주일간 노역장에 유치됐는데, 박 선생님과 같은 노역장을 사용하면서 더 가까워지게 됐다. 노역장에서 우리 사정을 들은 같은 방 사람들이 우리를 독립투사라고 칭하며 청소 등 모든 단체 활동에서 빼줬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2005년 이들이 친일화가가 그린 논개영정을 강제로 떼어내자 진주시와 장수군이 '표준 논개영정' 제작에 들어갔고, 이에 따라 윤여환 충남대 교수가 그린 논개그림이 2008년 표준영정으로 지정되는 등 이 사건의 반향은 꽤나 컸다. 노역장에 유치됐던 이들은 시민들이 기금을 모아 대신 내준 벌금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

 

‘훌륭한 삶 살면, 좋은 글 나온다는 걸 보여준 시인’

조구호 경상국립대 연구교수는 시인 박노정에 얽힌 이야기를 내놨다. 그는 “박 선생님은 좋은 글을 쓰려고 고민하기보다 훌륭한 삶을 살면 좋은 글이 나온다는 걸 몸소 보여주신 분, 온 삶이 시였던 분”이라고 말했다. 박 선생의 시에서 성찰과 반성, 더 좋은 세상을 위한 애정, 이웃에 대한 마음 등이 꾸밈없이 드러난다면서다.

조 교수는 박 선생과 김장하 선생이 이끌었던 진주가을문예도 언급했다.

그는 “당시 여러 등단 공모전 심사가 불합리하다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진주가을문예는 공정하고 투명한 심사가 진행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면서 “이는 두 선생님이 신인 문학자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진주에도 이 같은 등단문이 있다는 건 지역민들에게도 큰 자랑거리였다”고 덧붙였다.

'진주가을문예'는 김장하 남성문화재단 이사장이 창간 주주 겸 이사로 활동했던 옛 진주신문에 기금 1억 5000만 원을 맡기면서 1995년 시작됐다. 2000년 남성문화재단이 설립되고 옛 진주신문이 폐간되면서 재단에서 진주가을문예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해 오다가 2021년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박노정 선생 이야기에 말을 잇지 못하는 김장하 선생 모습
박노정 선생 이야기에 말을 잇지 못하는 김장하 선생 모습

대담자들의 이야기 후 객석에서도 고 박노정 선생을 둔 회상이 이어졌다.

박 선생과 함께 옛 진주신문과 진주가을문예를 이끌었던 김장하 선생은 박 선생을 떠올리며 “아우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했던 사람, 짧은 만남이었지만 정말 소중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진주사람 박노정> 편집위원 김지율 씨는 “드디어 책이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마음의 짐을 덜게 됐다. 이제야 박 선생님을 제대로 떠나보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단디뉴스

 

[진주사람 박노정] 책 표지
「진주사람 박노정」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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