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지정된 경남 유일 한글 비석
일부 문구 훼손, 비바람에 약한 재질 구성
보존처리, 안내판 문구 수정 등 절차 필요

진주 의곡사 한글 비석(좌)의 중앙에는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좌우에는 각각 한자와 한글로 부모생천목연경(父母生天目連經, 부묘생쳔목연경)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진주 의곡사 한글 비석(좌)의 중앙에는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좌우에는 각각 한자와 한글로 부모생천목연경(父母生天目連經, 부묘생쳔목연경)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단디뉴스=이은상 기자] 경남의 유일한 한글 비석 문화재인 진주 의곡사 한글 비석이 비바람 등에 훼손될 우려가 높아 문화재 보존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의곡사(상봉동) 주차장 동편 산자락에 위치해 있는 한글 비석 현장을 방문해 보니 비석에 새겨진 일부 문구가 훼손된 채 방치돼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석의 가장자리를 확인해 보니, 작은 충격에도 쉽게 부서졌다. 비석이 비바람 등에 풍화되기 쉬운 사암 재질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해당 비석은 제596호 경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201510월 당시에도 우측 상단에 표기된 문구 일부가 훼손된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문화재 지정 이후에도 비석에 대한 적절한 보존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비석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보존처리와 보호각 설치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석 주변에 설치된 안내판 문구의 수정 및 보완 등도 요구된다. 이곳 안내판에는 한글 비석이 담고 있는 자세한 내용과 역사적 의의 등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진주시에 따르면 안내판은 2020년 시가 설치한 것으로 파악됐다.

비석이 세워진 추정 연대에 관한 역사적 고증과 재검토 등의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비석이 세워진 추정 연대에 대한 내용이 진주시청 홈페이지에 게시된 것(좌)과 안내판에 게시된 것(우)이 다르다.
비석이 세워진 추정 연대에 대한 내용이 진주시청 홈페이지에 게시된 것(좌)과 안내판에 게시된 것(우)이 다르다.

비석이 세워진 추정 연대가 안내판에는 이 비석이 18세기 중후반(1700년대 중반)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적혀 있지만, 문화재 지정을 위한 현지조사보고서에는 연대가 ‘19163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지조사보고서는 20132, 이상필 경상국립대 한문학과 교수(경남도 문화재위원)가 작성했다.

지역의 문화재를 알리기 위한 진주시의 홍보 등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상봉동에 거주하는 최정란 씨는 우리 동네에 이 같은 소중한 문화재가 있다는 사실 조차 몰랐다진주시가 문화재에 대한 홍보뿐 아니라 지역의 문화재 관리에 더 신경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주 의곡사 한글 비석은 경남도 내에서는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된 한글 비석이다. 거창군에서 발견된 한글 비석인 포충사 김계진 영세불망비1879년에 건립된 유일한 철비이지만,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다.

조선시대에 건립된 한글 비석 중 현존하는 것은 전국에 5개 내외인 것으로 학계에 보고됐다. 그 당시 비석에 한자가 아닌, 한글을 새기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만큼 의곡사 한글 비석의 보존가치는 높다.

당시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참여한 박용식 경상국립대 교수는 해당 비석은 우리 지역에 남아있는 유일한 한글 비석으로,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불공을 드리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 당시 비석에 이름을 새기지 못할 정도로 미천한 신분으로 추정되는 주인공이 효심을 표현한 내용은 후세에도 그 의의를 기릴만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주시는 예산과 행정 절차상 등의 이유로 해당 문화재에 대한 보수처리 절차 등을 신속하게 밟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진주시 관계자는 문화재 현황 관리는 진주시가 맡게 되지만, 해당 문화재는 사찰 소유이기 때문에 문화재 보수 등을 위해선 의곡사 측의 신청과 협의 등의 절차가 요구된다비석의 보존처리는 가능해 보이나, 보호각 설치에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 비석의 재질이 약해 보수과정에서 충격이 가해질 수 있으며, 이곳 부지가 도로에 편입돼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진주 의곡사 한글 비석 관련 내용

이 비석의 앞면 중앙에는 ‘()무아미타불’([]無阿彌陀佛)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좌우에는 각각 한자와 한글로 부모생천목연경(父母生天目連經, 부묘생쳔목연경)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비석 위쪽에는 한자 첫 글자 남()과 부()가 소실됐다. 비석의 크기는 가로 30cm, 세로 80cm, 두께 14cm이다.

비석의 중앙 하단에 새겨진 탑()이란 글자로 유추해보면 이 비석은 나무아미타불부모생천목연경을 염송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7월 보름인 백중날이 같은 구절을 염송하면 돌아가신 부모님이 지옥에서 구제돼 천상에 태어난다는 우리나라 불교의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비석을 세운 주체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비석을 세운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려는 사람이었거나, 밝히기 어려울 정도로 신분이 미천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모생천목연경이라는 글자를 한자로 새겨두고 다시 이를 한글로 비석에 새겼다는 점에서다. 그 당시 지배층은 비석에 한자를 새겼다.

비석이 세워진 추정연대는 비석에 남아있는 병진삼월(丙辰三月)이라는 글자를 바탕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다. 이상필 위원은 현지조사보고서에 같은 절에 보존되어 있는 비석이 한글 비석과 비슷한 모양과 같은 재질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들어 비석이 세워진 연대가 1916년이라는 의견을 냈다.

 

비석의 우측 상단이 벗겨져 세겨진 글자가 훼손됐다.
비석의 우측 상단이 벗겨져 세겨진 글자가 훼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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