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 박생광-진주에 묻다’ 기획전시전 열려
진주시민들이 소장한 64점 작품 전시
[단디뉴스=이은상 기자] “역사를 떠난 민족은 없다. 전통을 떠난 민족은 없다. 모든 민족 예술에는 그 민족 고유의 전통이 있다.” 한국 채색화의 거장, 고(故) 박생광(1904~1985) 화백이 생을 마감하며 남긴 유고에 담긴 내용이다. 민중들이 지닌 삶의 요소들을 화폭에 진솔하게 담은 박 화백은 진주가 낳은 대표적인 민족화가였다.
3일 방문한 진주시립 이성자 미술관에서는 ‘내고 박생광-진주에 묻다’ 기획 전시가 한창이었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진주에서 만들어진 박 화백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기획전은 진주시가 박 화백의 작품을 소장한 진주시민들로부터 64점의 작품을 대여하는 방식으로 마련됐다. 전시 기간은 지난 1일부터 오는 8월 15일까지다.
전시된 작품 중에 박 화백이 지인에게 직접 보낸 편지 내용이 눈에 뛰었다. 편지에는 박 화백이 지인의 딸(최명희 씨)에게 “서울에 오면 전화하고 찾아오너라. 공부 잘 하여라”등의 안부를 전하는 내용이 담겼다. 편지 주변에는 ‘최명희가 시집을 가다’라는 문구가 담긴 ‘원앙’이라는 작품이 걸려있었다. 이 작품은 박 화백이 최 씨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원앙’ 옆에는 ‘나녀’라는 작품이 걸려있었다. 1980년대에 제작된 이 작품은 굿을 하기 전 폭포에서 몸을 씻는 무당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주황색 선으로 명암을 처리해 강렬한 인상이 남는다. 이 작품에서 엿 볼 수 있듯이 박 화백은 1980년대, 민속적 소재를 모색하면서 무속과 불교, 십장생 등의 역사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박 화백은 당초 1920년부터 해방직전까지 있었던 일본 유학의 영향으로 인해 왜색화가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다양한 시도를 거쳐 기존 화법을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을 담은 방식으로 재창조했다. 박 화백은 민화와 무속화에서 볼 수 있는 오방색의 화려한 색채를 활용해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방색의 화려한 색채가 담긴 ‘부귀모란도’라는 작품도 눈에 띤다. 1980년대에 그려진 이 작품은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을 그린 것이다. 박 화백은 해방 이후 자신의 고향인 진주에 터를 잡고 개천예술제 운영에 참여하며, 지역의 문화예술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박 화백이 진주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당시, 박 화백의 부인은 생계가 어려워 ‘청동다방’을 운영했다. 청동다방은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작품을 공유하고 담소를 나누던 곳으로, 개천예술제가 태동한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박 화백은 제주도로 건너가 영남예술제를 홍보하면서 ‘녹담만설’이라는 작품을 그리기도 했다. 이 작품은 은은한 색채로 눈이 쌓인 한라산의 풍경을 담아냈다. 이외에도 박 화백은 진주성 촉석루, 북장대 등 진주의 풍경을 담은 작품을 비롯해 금붕어, 소, 새, 탈 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을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