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지켜낸 용유담에서 시작한 초록걸음

[사진=최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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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기도 미안하다고 어느 시인이 노래한 그 4, 여전히 코로나는 온 나라를 점령한 채 물러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지만 초록걸음 길동무들은 딱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며 걸을 수 있기에 변함없이 지리산으로 모였다. 지리산 댐 건설 계획에 하마터면 수장될 뻔한 엄천강의 중심 용유담에서 4월의 초록걸음을 시작했다.

며칠 전 함양군에서 경관 확보와 쓰레기 불법투기를 방지하겠다는 이유로 도로변 수십 년 수령의 소나무와 참나무들을 무참히 베어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던 용유담은 2019년 정부에서도 지리산댐 완전 백지화를 선언함에 따라 역사적으로나 지질학적으로 국가 명승으로 지정해야 할 곳이다. 벌목 현장을 보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사진=최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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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초록걸음은 용유담에서 출발, 모전마을과 송전마을 그리고 운서마을 지나 구시락재를 넘어서 동강마을까지 대략 8Km의 거리인데 엄천강 푸른 계곡물 따라 걷는 길이라 눈 호강하면서 걸을 수 있는 구간이었다. 엄천강은 운봉 세걸산에서 발원한 물이 백무동계곡과 칠선계곡을 거치며 합쳐져 용유담 지나 산청 생초에서 경호강으로 이어지는 남강의 상류라 할 수 있다. 수십 년간 논쟁거리가 되어 왔던 지리산 댐 건설 예정지이기도 했던...

용유담 바로 옆 모전마을부터는 아스팔트길로 걸어야 하는 지리산 둘레길보다는 강 가까이 걸을 수 있는 마적도사 전설길로 걷기를 강추한다. 숲속 오솔길이 계속되는 전설길은 송전마을 전까지 이어지는데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아 길이 희미하긴 하지만, 엄천강 물소리 벗 삼아 호젓하게 걷기 딱 좋은 길이다. 필자의 개인적 생각으론 지리산 둘레길도 이 구간은 아스팔트 차도인 기존 노선보다 이 전설길로 노선을 옮기는 게 둘레길의 취지에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사진=최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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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시 향에 결코 뒤지지 않는 고추나무 꽃향기 가득한 전설길은 송전마을 직전에 아스팔트길로 합류되고 이 팍팍한 아스팔트길은 와룡대가 있는 송문교까지 이어진다. 송전마을 지나 1Km 정도 가면 문제의 그 지리산댐 건설 예정지가 나온다. 엄천강 계곡 양쪽을 막는 폭 900m에 높이 140m의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을 세우겠다던 그 어처구니없는 지리산 댐, 돌이켜 보면 정말 지난한 싸움이었다. 지리산 생명 평화 운동의 시작점이었던 그 지리산 댐 건설 계획이 백지화되긴 했지만 언제 또 다시 개발 망령이 지리산을 흔들어 놓을지 모르기 때문에 지리산권의 환경 단체들은 지리산을 그대로라는 구호를 여전히 외치고 있는 실정이다.

걸음을 시작한 지 1시간 30분 정도가 지나고 도착한 와룡대는 문정마을로 이어지는 송문교 옆 강 가운데 바위섬처럼 자리하고 있는데,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우리 길동무들도 이곳에 자리를 깔고 점심시간을 가졌다. 식사 후엔 동행한 경상국립대 환경공학과 박현건 교수로부터 남강 수계에 대한 간략한 강연도 들으며 엄천강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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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대를 출발, 운서마을을 지나 구시락재에 다다르면 엄천강 줄기와 함께 동강마을과 산청 자혜마을까지의 풍광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구시락재를 넘어 도착한 동강마을엔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언급된 花巖(꽃바위)을 지나는데, 이곳엔 수령 600년 된 팽나무 한 그루와 느티나무 세 그루가 사이좋게 마을을 굽어보며 마을의 수호신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 당산나무 전통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이번 초록걸음 종착지인 동강마을에서 엄천교를 지나 원기마을에서 우리 길동무들은 함양 공영버스를 이용, 출발지였던 용유담으로 이동했다. 봄날의 엄천강 초록걸음을 마무리하면서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는 5개 시군을 순환하는 공영버스를 운행한다면 둘레길을 걷는 둘레꾼들에게 아주 유용할 거란 생각을 해 보았다. 하지만 용유담과 엄천강 주변을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는 함양군에 대한 우려를 떨칠 수가 없어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아픈 대한민국을 치유해 줄 지리산을 그대로 두길 바라는 마음만 간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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