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호 자유기고가
박훈호 자유기고가

작년 말부터 올해 초에 이르기까지 모 종편에서 방송한 싱어게인이란 프로가 인기리에 종영되었다. 프로그램은 데뷔앨범이나 몇 개의 앨범을 내고도 주목받지 못한 무명가수들을 대중에게 소개한다는 취지로 출발했다. 대신 오디션 형식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감춘 채, 번호로 불리며 심사위원과 카메라 앞에 서야했다.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과 다르게 우선 따뜻한 시선이 녹아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차별점이었다. 길든, 짧든 무명생활이 주는 박탈감과 생활적 스산함이야 쉬 상상해 볼 수 있는 노릇이었다. 거의 모든 분야가 그렇듯 연예계라는 곳도 기실 승자독식의 시스템이 아니던가. 게다가 소소한 일거리, 소극장 공연, 교습소 운영, 라이브 카페 등은 코로나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분야이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출전한 모든 가수들의 사연들은 구구절절 한편의 드라마였다. 이런 소재는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연말이라는 상황, 코로나 사태라는 힘겨운 상황에서 개별적이지만 꿋꿋이 자신의 꿈을 위해 그 자리를 지키는 이 무명가수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영웅서사에 가까워보였다. 우리네 삶과 바람을 투영하기에 이만한 소재가 없었다.

심사위원들도 출전자들의 이야기와 노래에 동화되어 감동에 빠지는 모습이 여럿 연출되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 또한 오디션이었다. 승자와 패자를 꼭 나눠야 했고, 결국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한 데서는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과 하등 다르지 않았다. 어디 오디션 프로그램뿐이던가. 이 사회의 축약판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어보였다.

프로그램 종영 이후의 모습도 기실 무명가수전이라는 부제가 어울리지 않는 행태를 계속 보여 오고 있다. 소위 인기몰이에 성공하고 팬덤을 형성한, 많게는 탑10, 적게는 탑3로만 특집을 만들어 계속해서 시청자몰이를 하고 있다. 우승자특집, 누구누구 미 방송분 송출 등으로 탑10 이상을 상품으로 계속해서 활용 중이다. 프로그램 재방도 엄청나다. 피로도를 느낄 정도다.

무명의 설움을 딛고 일어선 가수들의 성공과 의지에 찬사를 보내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들을 내보이고 소비시키는 행태는 과연 얼마나 바뀌었는가. 이것이 중요하다. 지금 미디어들은 모처럼 만난 이 굉장한 상품들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많이 팔아먹기 위해 혈안이 된 것으로 보인다.

엠비씨 라디오, 뉴스룸, 뉴스쇼, 에스비에스 라디오. 엄청난 과밀이고 집중이다. 이런 관심의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이라도 지역, 혹은 미디어 바깥에서 열심히 음악, 예술에 자신을 온전히 쏟아 붓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었다면 우리 대중문화는 훨씬 더 풍성하게 발달하지 않았을까?

이들 승자독식 중심의 미디어는 기실 그런 무명가수들을 양산한 시스템이란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거대기획사들의 횡포 또한 문화의 다양성, 지역이나 미디어 바깥의 예술가들이 기지개를 펴지 못하게 만든 공범자들이다.

이번 싱어게인 프로그램은 그런 관행, 독식의 구조를 타파하고 음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으려 시도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하지만 그렇게 쏠린 관심을 좀 더 발전적으로 이끌지 않아 아쉽다. 당장 돈 되는, 새롭게 기득권에 진입한 몇몇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쏟아 부으며 기존과 같은 행태로 연예인을 소비한다는 점에서 조금이라도 발전했다는 징표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아직도 자신이 노래할 무대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은 많다. 게다가 소위 재야에는 더 많은 인재들이 아직도 생존이라는 문제에 부딪쳐 자신의 이름을 지운 채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작은 관심, 미디어의 작은 조명 하나라도 이제 그쪽을 향해 비춰야 하지 않을까? 변화의 교훈에 비해 너무 식상하게 흘러가는 싱어게인, 그 이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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