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교육청에서 공문이 왔다. 제목은 '2021. 함께 만들어가는 민주적 학교문화 조성에 관한 공문'이다. ‘민주적학교 문화는 무엇에서 출발하는지 생각해 본다.

초중등 교육법 제20(교직원의 임무) 항에 교장은 교무를 통할(統轄)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도 · 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한다.” 는 규정이 있다. ‘통할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통할이란 모두 거느려 다스린다는 뜻이다. ‘거느린다는 말은 부양해야 할 손아랫사람을 데리고 있다.’ 혹은 부하나 군대 따위를 통솔하여 이끌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결코 민주적 교육이나 학교 문화와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먼저 '데리고 있다'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력자이거나 거의 할 수 없는, 능력이 미약한 자를 보살피는 수준의 행위를 뜻한다. '통솔하여 이끌다'라는 뜻은 전장(戰場)이나 혼란의 상황에서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의 무리를 방어하기 위해, 그리고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적절한 권력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한 말이다.

다시 한 번 더 이야기하지만 이런 설명이 민주적혹은 미래지향적교육과 어울리는 말인가? 법조문으로만 해석한다면 현재 교장의 위상은, 전장에서 지휘관이나 혹은 어리석은 무리들을 이끄는 우두머리의 모습이다. 교사 전체를 어리석은 자들로 보거나 학교를 전장, 혹은 혼돈의 장으로 인식하는 단어인 것이다.

현재 교장의 '통할'은 군사적인 상황이거나 혹은 사적 조직의 우두머리들에게 보장된 권력과 권위를 법률적 용어로 가다듬었을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법은 지난 19491231일 제정·공포된 이래(제국주의 일본의 법을 그대로 모방) 무려 38회의 재개정을 거쳤으나 학교 민주주의 상황을 개선할 가장 핵심적인 이 조항(20)을 손 본 것은 단 1회에 [2012(법률 제11219, 2012.1.26.) 일부 개정] 그쳤다. 그것도 용어의 수정은 없고, 다만 권한의 법령 위임 개정으로 통할이라는 용어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201991일자로 교장이 된 그날부터 나는, 위 법률조항에서 이야기하는 통할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바꿀 것인가? 법률을 개정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몫이니 나의 범위를 넘어선다. 21세기 대한민국 교육 현장에서 위와 같이 해석되는 통할을 행사하시는 교장 선생님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다시 말하면 교육법 20조에 명시된 교장의 통할은 이미 사문화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법률이 유효한 이상 효력 또한 유효하다. 누군가 이 법률에 근거하여 통할을 빌미로 구시대적인 방식의 학교 경영을 시도하여도 교사들이 저항할 방법은 변변치 않다. 노동조합을 통해서, 혹은 교사 단체를 통해서 간접적인 영향력을 보이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즉 법률은 여전히 통할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준식 지수중학교 교장
김준식 지수중학교 교장

'통할과 학교 민주주의는 대척점에 서 있다. 민주주의는 구성원의 수평적 의사교환을 기본 구조로 전제한다. 비록 통할이라는 용어가 법률에 명시되어 있다 하여도 이미 사문화되어 그 의미나 효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구성원들의 합의를 통해 학교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는 있다. 그런 학교가 이미 많고, 또 확산 추세에 있다. 하지만 문제는 늘 갈등이 발생하였을 때, 그 기준이 무엇인가에 귀결된다. 학교 민주주의를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법률에 여전히 통할이라는 용어가 있는 이상 교장과 구성원들의 갈등 상황은 이 용어에 터 잡아 해석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들이여! 교육에 관심을 가진 국회의원들이여! 제발 통할을 민주적 용어로 순화하여 개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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