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비가 내렸다. 이웃마을 술동무 연락을 받고 면소재지 내장탕집에 나가 제법 술을 마시고 초저녁 집으로 돌아오자 이제 막 저녁밥상을 물린 식구들이 텔레비전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뭐야, 오늘 국가대표 축구하는 날인가?” 아내의 어깨너머로 텔레비전을 기웃거리는 내게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텔레비전 화면 귀퉁이에 윤스테이라는 프로그램 이름이 눈에 들었다.

민박집 이야기야?” “그래요. 구례 쌍산재예요.” 그제서야 보름이가 말을 받았다. “, 좋네. 집이 대궐이네.” “지난번 가봤는데 완전 고택인데다 대숲이 너무 좋더라고요.” 여전히 보름이가 말을 받았다.

퍼뜩 엊그제 보름이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뒷마당에서 장작을 정리하는 내게 다가와 우리 집 대숲에 조그만 오솔길을 만들면 어떻겠느냐 거였다. 아래채 뒷마당에서 대숲 언저리를 따라 카페까지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면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일언지하에 안 된다고 말했다. 급경사인데다 기존 계단길이 나있기도 하고, 불과 스무 발짝 걸을 길을 만들어 무슨 쓰임이 있겠냐며 못을 박았다.

저거 보고 대밭가에 길 만들면 좋겠다고 했던 거구나.” 아름다운 대숲 오솔길에 탄성을 쏟아내는 보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대숲길은 평지에 사오천 평 정도 대밭이 있어야 해. 여기 산골은 원체 비탈져서 길을 낸다고 해도 저런 멋은 안 나올 거야.” 미안하기도 하고 위로라도 하느라 주섬주섬 말을 삼켰다.

텔레비전은 연거푸 웅장하기도 하고 아기자기하기도 한 고택 곳곳을 비춰주고 있었다. 기둥과 지붕은 말할 것도 없고, 마루도 문살도 우리 민박과는 비교할 상대가 아니었다. 아기자기 가꾼 정원을 바라보는 아내는 아예 넋을 놓았다. 저 당당한 위세에 주눅 든 듯 가족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어라. 방은 우리 집과 별반 다르지 않네. .” 명색이 가장이라고 기죽은 가족들의 침묵을 깼다. “왜요. 저 방은 방 안에 화장실이 있거든요.” “아니. 한옥이고 고택인데 어찌 방 안에 화장실이 있대? 짝퉁이네. .”

개량을 한 거지. 화장실을 방 안에 들이는 공사를 한 거라고.” “주방도 봐라. 어찌 저리 넓고 저런 시설을 갖출 수가 있냐. 돈 엄청 들였겠다.” “그래도 하루라도 저런 주방에서 일 해보면 좋겠네.” 주방 씽크대 바꾸고 타일 몇 장 붙인 공사에도 흡족해하고, 얼마 전 민박방 가까이에 화장실 하나 새로 낸 것에도 어깨를 으쓱거린 우리였다.

윤스테이는 마침내 우리 가족들을 기죽이고 주눅 들게 하는 것도 모자라 자존심마저 이리저리 밟고 다녔다. 내로라하는 연예인들이 관리인으로 주방장으로 스텝으로 총출연하다보니 서툰 것도 서툰 게 아니고 잘못하는 것도 잘못하는 게 아니었다.

이거 낭패네. 돈 많은 사람들 저런 식으로 민박사업 시작하지 않겠어?” “그럴 지도 모르죠. 방 하나에 이삼십 만원은 할걸요.” “거 봐라. 요즘 제주도 오성급 호텔도 오만 원이면 하룻밤 잔다더라.” “그러게. 여기저기 저런 민박집이 생기면 우리 집은 어찌 되는 거야?” “돈 되는 거면 물불 안 가리잖아. 돈 가진 사람들은.”

저런 민박사업이 유행처럼 번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지레 겁이 났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많은 돈 들여 집을 손본 일이 쿵하고 가슴을 짓누르는 듯했다.

그래도 여긴 유명한 유원지도 아니고, 여기야 어떻겠어?” “처음부터 좋은 자리 궂은 자리 있나요? 가꾸고 다듬으면 다 좋아지지.” “봄엔 바깥 데크마루 기둥 세우고, 투명한 벽도 치고, 누워서 별도 보게 투명한 지붕도 올리면 좋겠는데.” “그래, 거기서 책도 읽고, 차 마시며 빗소리도 듣고.”

아내와 휘근이와 보름이가 제각각 한마디씩 했다. 황새 따라 가는 뱁새의 모습이 어른거리다가도 돈이 좀 모이면 그래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텔레비전은 거침없이 계속되었다. 음식을 장만하는 장면에 이르자 모두들 침묵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윤스테이율란이라는 음식에 떡갈비를 더했다. 음식을 만드는 내내 황홀한 식자재가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앞에 앉은 아내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는 듯했다. 저녁반찬으로 돼지고기를 볶고, 씨락국 끓이고, 무전과 배추전을 부친 아내의 모습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보름이가 침묵을 깼다.

떡갈비는 왜 떡갈비라 했을까요?” “좀 유명하다싶은 음식은 다 임금님 밥상에서 나왔다고 보면 돼.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상을 줘야할 일이 생기면 부상으로 음식을 내렸거든. 궁궐에서 사대부가로 음식이 전해지면 사대부가 안방마님들이 겉모습을 보고 따라 만들어 먹기도 하고 그랬겠지? 떡갈비라는 음식은 고깃살이 질겨 임금이 먹기가 사나운지라 그걸 잘게 썰어서 굽는데 이게 잘 안 엉기거든. 그래서 거기 쌀가루를 섞어 반죽을 한 거지. 임금님 드시기 편하라고.”

김석봉 농부
김석봉 농부

저기 텔레비전에서 만드는 저 연예인들은 그런 사실을 알까요?” “알겠지. 율란은 전통과잔데 저리 고기를 입히는 것은 첨보네.” “저렇게 차리고 밥값은 대체 얼마를 받는 거야?” 육천 원짜리 우리 집 밥상을 떠올리며 쓴 입맛을 다시는 가족들이었다.

어떡해. 저기는 고급숙박업을 하는 데고, 우리 집은 시골집에서 집밥 한 그릇 먹고 시골방에서 하룻밤 자는 거고. 그게 우리와 저기가 다른 거지. .” 끝까지 보고 있기가 찜찜하고 속상해 한마디 던지고 텔레비전을 빠져나왔다.

마당에 내려서자 비구름 끝자락을 붙잡고 있던 빗방울이 이슬처럼 얼굴을 스쳤다. 오늘 민박손님은 서울에서 온 시누, 올케사이 가족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다섯 명 이상 집합금지라고 각자 아이 한 명씩만 데리고 온 터였다.

불빛이 새어나오는 방에선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그칠 줄 몰랐다. 대밭머리 어둠에 젖은 데크마루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 내리면 비 맞고, 이슬 서리 다 맞아 볼품없이 변색된 데크마루 위에 서보았다. 흘러가는 구름장 사이로 떨어져 내리는 별들이 얼핏설핏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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