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아름다운 길에 산악철도라니?

[사진=최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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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난리통에 딱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며 함께 걸었던 2020년의 초록걸음은, 회남재길을 끝으로 무사히 마무리됐다. 조그만 사고도 없이 함께 걸어준 길동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리산을 지키는 또 하나의 몸짓이란 생각으로 지리산 초록걸음을 걷기 시작한 지도 어느새 10년이 되었다.

2020년의 초록걸음은 처음부터 지리산을 그대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걷는 내내 이름조차 생뚱맞은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로 시끄러운 지리산과 함께 했다. 지리산 형제봉 일대를 대규모 산악 관광단지로 조성하기 위해 반() 환경 3종 세트라 할 수 있는 산악열차-케이블카-모노레일을 건설하겠다는 하동군의 시대착오적 토건 사업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초록걸음 길동무들도 작은 힘이나마 보탰다. 결국엔 정부로부터 원점 재검토라는 결과를 받아냈고, 산악열차의 폭주를 ‘'일시멈춤’'상태로 돌려놓았다. 이에 12월 초록걸음은 산악열차를 놓기로 한 구간인 회남재길을 걸으며 조촐한 자축의 의미를 되새기기로 했다.

 

[사진=최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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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초록걸음은 초등 3학년부터 삼대가 함께 온 가족 참가자까지 20명의 다양한 길동무들이 자차로 출발지인 삼성궁 입구에 모여 시작했다. 하지만 청학동 입구에서부터 ‘'김나현길'이란 새 팻말들이 곳곳에 붙어있어 필자는 내심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모 종편 방송 트롯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어린이가 이곳에서 자랐다고 하동군에서 명명식까지 하면서 청학동 입구에서 회남재까지의 길을 ‘'김다현길'이라 부르기로 했다니... 어린 아이까지 내세워 관광객들을 조금이라도 더 유치하겠다는 발상을 회남재에서 발길을 돌린 남명 선생이 아시면 뭐라 하실까?

 

[사진=최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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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궁 입구에서 회남재까지의 길은 차량이 다니기도 했던 임도였지만 얼마 전부터는 차량 통행을 통제하고 걷는 길로만 이용하고 있다. 이 구간은 가을 단풍철 매우 아름답다. 하지만 필자는 뭐니 뭐니 해도 유려한 곡선의 길이란 점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고 싶다. 걷는 길 중간 중간에 ‘'천천히'라는 팻말엔 알프스 하동이란 문구가 달팽이 그림과 함께 있었는데, 지금의 하동군수는 왜 그리 알프스에 집착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냥 지리산이라고만 해도 그 속에 하동의 가치가 충분히 담겨 있음에도 왜 알프스여야 할까? 그리고 이 아름다운 길에 산악열차를 놓겠다는 발상이라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기후위기에 코로나19라는 이 환란을 목도하면서도 지리산을 망가뜨리고 숲을 훼손하면서 산악열차에 케이블카 그리고 모노레일까지 건설하겠다는 발상을 이제는 하지 말길 간절히 바라면서 회남재길을 걸었다.

 

[사진=최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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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궁을 출발한 지 1시간 30분이 지나고서 도착한 회남재(해발 740m)는 남명 조식 선생이 산천재에 살다가 악양의 풍광을 보기 위해 청학동을 지나 회남재까지 왔다가 다시 덕산으로 되돌아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회남정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멀리 섬진강과 악양 무딤이뜰 부부송까지 조망이 가능한데 이번 걸음엔 미세먼지로 인해 시계가 썩 좋진 않아 못내 아쉽기만 했다. 회남정에서 점심을 먹고는 악양 매계마을이 아닌 묵곡초등학교 방향 임도를 하산길로 택해서 다시 걸음을 시작했다. 회남정에서 묵곡초등학교까지는 4Km 거리인데 계속 내리막으로 된 임도라 조용히 묵언으로 자신을 되돌아보며 걷는 길로는 안성맞춤이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난리통에도 딱 그만큼의 거리 유지하며 함께 걸었던 2020년의 초록걸음은 회남재길을 끝으로 올해의 걸음들을 무사히 마무리했다. 조그만 사고도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걸어준 길동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리산을 지키는 또 하나의 몸짓이란 생각으로 지리산 초록걸음을 걷기 시작한 지도 어느새 10, 새해에도 길동무들과 함께 지리산이 그대로이길 바라면서 그 길을 변함없이 걸을 것이다.

다만, 마스크는 쓰지 않고 걸을 수 있길 빌면서...

 

[사진=최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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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이 당신에게 / 박남준

 

고통스러운 시간들

사람뿐이었을까

호랑이가, 마지막 여우가

잔인한 밀렵꾼의 총탄에 안타까운 숨을 거둘 때도

나무를 오르내리며 재주를 부리던

새끼 반달가슴곰

몇 마리 남지 않았을 때도

품 안에 들어온 생명들 지켜주지 못하는 내가

원망스러웠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

부끄러운 얼굴을 감추려고

구름을 불러 가릴 뿐

쏟아지는 비는 저미는 애간장의 서러운 뒷모습이었어

한밤에도 들렸을 거야

마른하늘에도 벼락을 치며 통곡하던 울음소리

고백할 게 그랬었는데

케이블카를 놓고

모노레일을 깔고

산악열차를 달리게 하겠다니

이제 나를 지리산이라고 부르는 것이 싫어

지리산, 그 이름만으로도 자랑스러웠는데

이 커다란 상징성이 끔찍해

사람들은 왜 나를 가만히 두지 않을까

정말이지 이런 몹쓸 생각도 해봐

내 안에서 자행되는 모든 개발이라는 파괴 앞에

그 탐욕 앞에

이를테면 지리산인 내가 스스로 죽어버리는 것

그리하여 이 나라 모든 산이 강이 바다가

다 같이 목숨을 끊어버린다면

그때쯤이면 사람들이 뉘우칠까 그리워할까

강은 강이 아니고 바다는

물고기들만의 바다가 아니듯이

지리산은 다만 지리산이 아니야

당신이 있으므로 내가 있듯이

아직 지리산이 이렇게나마 숨 쉬고 있다는 것은

당신의 몸 안에

나무처럼 자라나며 샘솟는 희망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겠지

미안해 나로 인해 잔뜩 짐을 진 사람들이여

고마워 나를 지켜주려는 이들이여

온몸으로 거부할게

내 앞에 놓일 모든 절망의 지시대명사인

케이블카와 모노레일과 산악열차를

온몸으로 그리하여

팔색조와 정향나무와 지리터리풀과 반달가슴곰과

당신과 당신의 오늘과

당신으로 하여금 맑고 평화로울

저기 달려오는 나의 푸른 내일과

그 모든 인연들과

온몸으로 온몸으로 온몸으로 물리칠게

 

[사진=최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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