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잎 죄다 땅으로 돌려보낸 홍류동 계곡

11월의 지리산 초록걸음(사진=최세현)
11월의 지리산 초록걸음(사진=최세현)

11월 초록걸음은 가을 단풍 한바탕 휘몰아치고 간 가야산 홍류동 계곡 해인사 소리길을 걷기로 했다. 다행히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버스로 해인사까지 이동할 수가 있었다. 소리길은 해인사 입구에서 대장경 테마파크까지 대략 7Km 거리로, 홍류동 옛길을 복원하고 다듬어서 홍류동 계곡을 따라 완만하게 걸을 수 있도록 조성한 수평 탐방로라 할 수 있다. 이 소리길에는 주요 문화자원인 농산정과 더불어 칠성대, 낙화담 등 가야산 19 명소 중 16개 명소가 있으며, 자연과 역사, 경관을 함께 보고 느끼며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길로서 이름 그대로 계곡의 물소리와 함께 다양한 자연의 소리를 만끽할 수 있는 호젓한 숲길이라는 점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11월의 지리산 초록걸음(사진=최세현)
11월의 지리산 초록걸음(사진=최세현)

이번 초록걸음의 시기가 11월의 하순에 접어드는 즈음인지라, 소리길 초입부터 숲의 식구들은 그 붉었던 단풍 죄다 땅으로 돌려보내고 겨울 채비에 한창이었지만 겨울까지도 아등바등 바싹 마른 잎을 매달고 있는 당단풍나무만이 아직 마음을 비우지 못한 듯했다. 해인사 입구를 지나 길상암까지 대략 2Km 구간은 휠체어나 유모차도 갈 수 있도록 배려가 된 무장애 데크길로 만들어져 있다.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소리길의 중간지점이라 할 수 있는 농산정에 도착한다. 농산정은 이곳에서 은둔하며 수도하던 고운 최치원의 시에서 이름을 따온 정자로 주변 바위에 그의 시가 새겨져 있기도 하다.

 

11월의 지리산 초록걸음(사진=최세현)
11월의 지리산 초록걸음(사진=최세현)

농산정을 지나면 차나 사람 그 누구도 비켜 갈 수 없는 홍류문 즉 해인사 매표소가 있는데, 이곳을 지날 때마다 필자는 불편한 심기를 감출 수가 없다. 해인사를 들리지 않고 소리길만 걸어도 예외 없이 문화재 관람료라는 명목으로 3,0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천은사 앞 도로 통행료도 폐지되었는데 이곳 해인사 입장료도 없앨 수 있도록 해인사와 국립공원공단 그리고 합천군이 머리를 맞대길 바랄 뿐이다.

홍류문에서부터 무릉교까지가 본격적인 홍류동 계곡이라 할 수 있는데, 봄엔 철쭉으로 가을엔 단풍으로 계곡물이 붉게 물든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소리길이 끝나가는 청량골 즈음에서 뒤를 돌아보면 저 멀리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가야산 주 능선을 조망할 수 있는데 그 모습만으로도 가야산의 깊고 영험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11월의 지리산 초록걸음(사진=최세현)
11월의 지리산 초록걸음(사진=최세현)

이번 초록걸음이 가야산 소리길을 걷긴 했지만 필자의 마음은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라는 생뚱맞은 이름으로 위태롭기만 한 지리산에 가 있었다. 그래서 함께 걸었던 길동무들, 아빠를 따라온 초등생 딸과 신나는 공부방아이들까지 우리 모두의 어머니 산 지리산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있는 그대로의 지리산을 위해 마음을 모으기로 약속을 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초록걸음을 기약하면서 이번 초록걸음에 길동무들에게 들려준 시, ‘단풍여자고등학교11월 초록걸음 후기를 맺는다.

 

11월의 지리산 초록걸음(사진=최세현)
11월의 지리산 초록걸음(사진=최세현)

단풍여자고등학교 / 윤동재

 

어느 시도에 있는지 아는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한 여자고등학교 교장 선생님

어느 해 가을 아침 직원 조회 때 마이크를 잡고

오랜만에 한 말씀 하시기를,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교정에 떨어져 있는 단풍을

누구도 쓸지 마시오

나무에 붙어 있는 단풍이든

땅에 떨어진 단풍이든

단풍 한 번 눈여겨보지 않은 학생이

어머니가 되거나

나라의 일꾼이 되거나

세상을 이끌어나가는 지도자가 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하고 등골이 오싹해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단풍들도 전해 들었다는 말일까

그해 가을 우리나라의 단풍들이 모두

그 여자고등학교로 몰려들었습니다

그 바람에 그 여자고등학교는

단풍여자고등학교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단풍여자고등학교라 불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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