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실과 비움의 가을길을 걷다

[사진=최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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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초록걸음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코스나 교통편 결정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월 들어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낮춰지면서 이번 초록걸음은 전세버스를 이용해 단체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발열 체크와 마스크 착용을 필수 조건으로 하고서.

이번 코스는 지리산 둘레길 22개 구간이 아닌 지리산 자락길을 택했다. 2012년에 개통된 지리산 자락길은 함양군 마천면 주변을 연결한 총연장 19.7Km의 원점회귀 산길로 금계마을에서 출발, 도마마을과 군자마을을 지나 고담사와 고불사를 거쳐 다시 금계마을로 돌아오게 된다. 이번에는 아이들도 함께 걷는 까닭에 실덕마을에서 마천면 소재지까지 약 9Km를 걸었다.

 

[사진=최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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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지인 실덕마을에서부터 전형적인 가을 하늘의 뭉게구름과 들녘의 황금물결이 만들어 내는 절묘한 색채감을 보면서 오늘의 자락길을 예감할 수 있었다. 길동무들도 9살 은수부터 70세 되신 시니어 숲해설가까지 가을 단풍 빛깔만큼이나 다양했다. 실덕마을을 출발한 지 30분만에 도착한 고불사는 행정구역상으로 마천면 강청리에 속하는 백무동 계곡 끝자락 절벽 위에 자리한 암자 같은 작은 절이다. 고불사 좁은 마당에서 백무동 상류 쪽을 바라보면 계곡 틈새로 천왕봉이 살짝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고불사에서 가파른 돌계단을 내려오면 백무동계곡을 만날 수 있는데, 이곳에 길동무들은 점심 자리를 잡았고 계곡 물소리를 반찬 삼아 초록걸음스러운 도시락을 먹었다.

 

[사진=최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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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디맑은 물과 단풍 든 백무동 계곡을 건너 강청마을 지나고 가채마을로 가는 길은 숲속 오솔길 그 느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길로 간간이 피어있는 구절초들이 무더기로 핀 것보다 더 운치 있어 보였다. 그 길에서 요즘 한창인 트롯 열기를 이끌고 있는 임영웅의 목소리로 고연우 원곡의 발라드곡 암연을 길동무들에게 들려주었다. 트롯에 대한 호불호가 있긴 하지만 이 가을, 숲에서 듣는 애절한 노래 한 곡은 길동무들의 감성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했다.

가채마을을 지나는 산길에서는 엄천강 건너 지리제일조망이라는 금대산 금대암을 아스라이 바라보며 걷는 재미도 쏠쏠했다. 오르락내리락 창암산 산허리 숲길을 지난 후에 창암교를 통해 엄천강을 건너 마천면 소재지에 다다르면서 가을 단풍에 흠뻑 물들었던 10월의 초록걸음을 정희성 시인의 가을의 시로 마무리했다.

[사진=최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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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시 / 정희성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을은 얼마나 황홀한가

황홀 속에 맞는 가을은

잔고가 빈 통장처럼

또한 얼마나 쓸쓸한가

평생 달려왔지만 우리는

아직 도착하지 못하였네

가여운 내 사람아

이 황홀과 쓸쓸함 속에

그대와 나는 얼마나 오래

세상에 머물 수 있을까

 

[사진=최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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