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다. 이른 아침 맞은편 산언저리에서 한 움큼 산밤을 줍고 밭을 둘러본다. 지난여름 긴 장마에 습해를 입은 우엉은 대부분 죽었다. 우엉 옆 이랑에 심은 토란은 내 키만큼이나 자라 무성한 잎을 자랑한다. 애지중지 돌본 생강은 그럭저럭 반타작은 될 것 같다. 올해는 생강을 다섯 이랑이나 심었다.

보름이(며느리) 카페에 생강이 많이 필요해서였다. 생강으로 차만 만드는 줄 알았는데 라떼라는 것도 만들다보니 생강이 많이 든다고 했다. 지난해는 생강을 많이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었다. 생강 값이 비쌌고, 친환경으로 농사지은 생강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는 생강농사 잘 지어 가족들 앞에 가오()를 잡아볼 요량으로 정성을 더했다. 생강밭 이랑을 오가며 실한 포기를 세어보니 대략 일흔 포기 정도는 씨알이 굵을 것 같다. 김장에 쓰고 보름이 카페에 쓰기에 충분할 것이다.

추석이다. 마을은 고요하다. ‘불효자는 옵니다라는 말에 어버이를 찾아 고향에 다니러 오는 아들딸들 발길이 끊겼다. 바이러스는 명절 가족상봉마저 짓밟아 놓았다. 나도 부산 큰집에 가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명절차례는 지내지 않기로 했고, 어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은 여전히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한다. 그러니 나 또한 특별히 가야할 이유가 없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바이러스 조심하라는 마을방송이 울리고 명절이라고 가족까지 오가지 못하게 하기에 민박도 연휴 이틀은 예약을 받지 않기로 했다. 집안도 한가하다. 뒷집 두부박샌댁이 자기는 안 딴다며 밭에 호두를 털어가라 해서 장대와 자루를 챙겨 밭으로 갔다. 풀숲 한가운데 커다란 호두나무 두 그루가 주렁주렁 호두를 매달고 있었다. 호두는 익을 대로 익어 가지만 흔들어도 추룩추룩 떨어졌다. 반 자루를 땄다. 두부박샌댁께 조금 나눠줘도 십 킬로그램은 족히 남을 듯하다. 풀숲 도깨비가시에 찔려 온 몸이 따끔거린다. 몸을 씻고, 손톱발톱을 깎고, 면도를 했다.

아들딸들이 오지 않으니 추석인데도 평상에 이웃이 모였다. 보름이가 순대볶음을 한 양푼이나 만들어 평상에 내주었다. 돼지고기도 굽고 순대볶음도 많아 추석치레가 걸다. 따라온 서하는 마당에서 공차기를 하며 놀고, 꽃분이와 고미(강아지)도 따라와 던져주는 고기를 날름날름 받아먹는다. 멀찍이 웅크리고 앉은 고양이에게도 고기를 던져주었다. 추석이라 다들 마음이 넉넉해진 듯하다.

마당에 서너 마리 개를 키워 종종 개장수에게 팔아버리는 유 씨가 또 핀잔을 듣는다. 지난 봄 갑자기 지아비를 잃은 교회 앞 성샌댁이 위로를 받는다. 젊은 시절 석재공장에서 사고를 당해 지팡이에 의존하는 창원이 형이 건강 조심하라는 당부를 듣는다. 평상에 모이는 이웃들 수발 드느라 고생한다며 평상 주인 영남아지매께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나도 밭일 좀 줄이라는 말을 들었다. 어느새 하루해가 뉘였거린다.

김석봉 농부
김석봉 농부

추석이다. 문득 고향생각이 났다. 얼마 전 휘근이와 선산 별초를 하고 고향마을을 한 바퀴 휘돌아 나왔었다. 다리목 왕버들도 다 죽어버렸고, 정미소는 헐려 텃밭으로 변해있었다. 내가 태어나 살던 집 골목을 지날 때는 부러 고개를 돌려버렸다. 앞 들 방죽을 지나면서 방죽 봇또랑에서 미꾸라지를 잡던 기억이 떠올랐다. 휘근이 어렸을 때 추석이면 찾아와 소쿠리 챙겨 미꾸라지를 잡곤 했었다. 솎음무 씨래기에 방아잎 넣어 추어탕 끓여주던 어머니도 생각났다.

옛 동무들도 생각났다. 국민학교 졸업장을 받아들자마자 부산 신발공장으로, 마산 자유수출단지로, 대구 옷공장으로 뿔뿔이 흩어져간 동무들이 생각났다. 중학교 다니느라 고향에 남은 나는 추석이면 다리목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커다란 드렁크 가방을 들고 버스에서 내리던 동무의 얼굴은 다들 뽀얬다. 저녁이면 동무네 아랫방에 모여 당감동 기차표 동양고무 공장이 크다느니 말표 태화고무 공장 굴뚝이 더 높다느니 하며 티격태격하기도 했고, 자유수출단지를 자랑하며 어깨를 으쓱거리기도 했다.

대구로 식모살이 떠난 가시내는 명절에도 오지 못했다. 떠날 때는 다들 발갛게 익은 감이 주렁주렁 영근 감나무 가지와 잘 익은 밤송이가 주렁주렁 달린 밤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다리목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렇게 고향을 가지고 떠나간 동무들이었다. 다들 환갑 진갑 다 지난 나이로 어느 도시에서 살고 있을지.

추석이다. 저녁놀이 깔리는 배추밭을 휘 둘러보고 덤벙이 간식으로 상추잎을 한 움큼 따 들었다. 가족들이 모여 낙지호롱을 만들고 있었다. 돼지갈비도 굽고 있었다. 뒷마당 덤벙이와 새데기는 상추잎을 너무나 좋아한다. 올해 여름은 기나긴 장마로 우리조차 먹을 상추가 없었다. 장마 끝나자마자 상추를 심었는데 벌써 무성하게 자라 밭이랑이 상추잎으로 차고 넘친다. 상추잎을 던져주자 덤벙이와 새데기가 덤벙대며 반가이 달려나온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좋다.

기름진 음식 앞에 가족이 모여 앉았다. 농사를 줄이자, 민박을 줄이자며 앞으로 살아갈 일을 꾸미는데 괜히 역정이 났다. 별로 가진 것 없는 가장의 알량한 자존심이 사라지면 좋으련만 왜 이런 순간마다 꼰대가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버릇이겠지. 이런 순간이 지나갈 때마다 보름이 보기도 미안하고 아내에게도 미안하고 휘근이 보기도 낯이 안 선다. 술을 마신 탓이 아니다.

올해는 전을 안 굽겠다던 아내가 꼬지를 챙긴다. 꼬지전은 휘근이가 무척 좋아하는 전이다. 생선전꺼리와 육전꺼리에 밑간을 한다. 추억을 이어주려는 아내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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