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 스미는 한국의 마터호른 웅석봉길

지리산 초록걸음에 함께한 사람들[사진=최세현]
지리산 초록걸음에 함께한 사람들[사진=최세현]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여전하지만, 우린 딱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며 지리산 둘레길을 변함없이 걷기로 했다. 지난 814, 지역민들의 자발적 모금으로 세워진 산청 평화의 소녀상이 있는 산청군 청소년수련관으로 모였다. 수철마을에서 성심원까지 둘레길 6구간 중간지점쯤 되는 곳이다. 이번 초록걸음은 산청읍 조산공원을 출발, 지성마을과 내리저수지 그리고 지곡사와 웅석봉 선녀탕을 지나 바람재를 넘고 내리한밭을 거쳐 원점회귀하는 코스를 택했다.

최연소 참가자인 6살짜리 하경이부터 20여 명의 길동무들과 함께 9월 셋째 토요일, 가을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웅석봉 자락으로 스며들었다. 눈 덮인 겨울 웅석봉을 볼 때마다 필자는 사진으로만 접한 알프스산맥의 마터호른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길동무들에 언제나 한국의 마터호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빨치산들이 능선 위 떠오른 달을 보며 고향을 그리워했다는 달뜨기 능선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단골 메뉴이지만...

내리저수지 주변 자연발생유원지에서 점심을 먹고서는 디저트로 박형진 시인의 사랑이라는 시와 평화의 소녀상을 떠올리며 이선희 목소리로 한네의 이별을 길동무들에게 들려드렸다. ‘시와 음악이 있는초록걸음의 전통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 갈 것이란 다짐과 함께...

 

지리산 초록걸음에 함께한 사람들[사진=최세현]
지리산 초록걸음에 함께한 사람들[사진=최세현]

사랑 / 박형진

풀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모든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그도 온전히 한 마리 풀여치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 속

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

풀은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어서

비로소 나는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지리산 초록걸음에 함께한 사람들[사진=최세현]
지리산 초록걸음에 함께한 사람들[사진=최세현]

내리저수지에서 지곡사 지나 선녀탕 가는 길가에 가로수처럼 심어진 고로쇠나무는 봄철마다 수액 채취로 마을 주민들의 짭짤한 수입원이 되기도 하지만, 임도를 따라 1Km 이상 이어지는 그 고로쇠 나뭇길은 10월 말쯤이면 불타는 단풍으로 둘레꾼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임도가 끝나고 만나는 바람재는 성심원과 내리한밭으로 가는 갈림길이면서 경호강 강바람이 넘나드는 야트막한 고개이다. 지금은 도로가 넓혀지고 또 아스팔트 포장까지 되어버려 예전의 그 운치 있는 바람재는 더 이상 아니어서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바람재에서 내리한밭으로 방향을 잡아 경호강을 거슬러 강변길을 걸었는데, 지난 여름 긴 장마와 태풍으로 불어났던 강물의 상흔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렇게 기후위기의 위협은 둘레길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 길 위에서 우리 길동무들은 있는 그대로의 지리산을 지켜내자는 다짐이라도 할 수밖에...

산청 청소년수련관 앞 평화의 소녀상[사진=최세현]
산청 청소년수련관 앞 평화의 소녀상[사진=최세현]

경호강을 가로지르는 내리교를 건너 도착한 산청 청소년수련관 앞에서 9월 초록걸음을 마무리하면서 길동무들과 함께 산청 평화의 소녀상을 참배했다. 보수적 정서에 시민단체 활동이 열악한 산청지역에서, 10여 개월에 걸친 주민들의 자발적 모금 활동으로 지난 8월에 제막식을 한 산청 평화의 소녀상은 지역 시민운동의 작은 기적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아무튼 이로서 지리산 둘레길 6구간은 평화의 둘레길이 되었다. 이 길을 지나는 둘레꾼들은 꼭 이 평화의 소녀상에 들러 이 땅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또 머리 숙여 참배하시길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다. 생명과 평화 그리고 어머니의 산 지리산의 마음으로...

 

지리산 초록걸음에 함께한 사람들[사진=최세현]
지리산 초록걸음에 함께한 사람들[사진=최세현]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