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포악해가는 기후재난.. 통합형 대응 체계 촘촘해져야
“재난 취약계층위한 공영방송과 지자체 보완 대책 마련 필요”
기후위기로 인해 반복되는 국지성 집중호우 등 자연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행정의 총체적 점검과 일원화된 재난 대응 체계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진주기상대에 따르면 지난 7월 16일부터 19일까지 진주 지역에는 평균 360㎜ 이상의 강수량이 기록됐다.
특히 대평면 549㎜, 미천면 543㎜에 달하는 폭우가 쏟아졌고, 일부 시간에는 시간당 50㎜가 넘는 물폭탄이 쏟아져 하천 범람 3건, 농경지 침수 135.6ha, 도로 침수·파손 31건 등 피해가 집계됐다.
“교실도, 가게도, 논밭도 다 잠겼다”
진주시 명석면 일대는 주택과 상가, 초·중학교, 농경지까지 광범위하게 침수됐다.
20일 나불천 일대의 모습은 흙탕물과 뒤섞인 쓰레기 더미들이 하천에 널브러져 있었고, 들판의 농작물은 진흙에 파묻혀 말라가고 있었다.
명석초·중학교는 운동장을 포함해 1층 전체가 물에 잠겨 교실 안 책상과 의자, 컴퓨터 등 모든 비품이 흙탕물에 젖어버렸다.
20일 오전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피해 복구를 위해 진주교육지원청 직원들과 자원봉사단체협의회 회원 80여 명이 나서 손길을 보태며 깔끔하게 정돈 되었다.
박종훈 경남도교육감도 현장을 찾아 “조속한 학사 정상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냉장고, 전기밥솥 둥둥… 식재료 다 버렸다”
상가와 주택 피해도 잇따랐다.
명석삼거리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냉장고와 전기밥솥이 물에 둥둥 떠다녔고, 전기도 끊겨서 식재료를 몽땅 폐기해야 했다”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주민들이 더 분통을 터뜨린 건 ‘양수기 하나 제대로 빌리기 어려웠던’ 행정의 미온적 태도 때문이었다.
한 주민은 19일 오후 5시께 자신의 건물 지하 창고에 물이 차오르자 면사무소에 양수기 대여를 요청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담당자가 없다”, “차후 연락드리겠다”는 형식적인 말만 들었다고 했다.
반면, “지인을 통해 면사무소에 요청하자 쉽게 양수기를 대여받을 수 있었다”며 ‘형평성’ 논란을 지적됐다.
그러나 어렵사리 대여한 양수기가 물을 퍼 올리지 못하는 등 제대로 작동 되지 않아, 그는 늦은 새벽까지 물을 가족들과 함께 퍼내야만 했다.
이 주민은 “119는 위급한 상황속에서도 2시간 만에 양수기를 집으로 갖다줬는데, 바로 옆 면사무소에선 제때 도움을 받지 못했다”며 “같은 명석면 주민인데. 누구에게는 ‘양수기’대여가 절차를 거쳐야 하고, 누구는 전화 한통이면 쉽게 빌릴 수 있는게 더 억울하다”고 말했다.
“차량 5대 침수, 장비 못 써… 수억 원 손해”
지역 중소기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명석면의 한 전기설비업체는 주차돼 있던 차량 5대와 보관 중이던 전선, 장비 등이 물에 잠겨 2~3억 원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업체 관계자는 “직원들이 모두 나와 진흙에 묻은 장비를 일일이 닦고 있다”며 “앞으로가 더 큰일”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삭평마을에서는 90대 여성이 침수된 집에 고립됐다가 인근 요양원장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구조됐다. 90대 여성은 재난 문자 메세지를 인지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마을로 들어오는 도로가 침수되어 119 구급차가 진입하지 못하자, 발만 동동 구르던 자녀들이 인근 요양원장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요양원장이 직접 담장을 허물고 노인을 업어 긴급히 대피시켰다는 미담이 전해졌다.
“나락 다시 말리고, 콩대 다시 세우고…”
농가 피해도 컸다. 고추 건조기가 떠내려가 차량을 들이받아 차량 앞범퍼가 파손됐고, 침수된 차량들은 엔진이 작동하지 않아 시동조차 걸리지 않았다.
한 농부는 작년에 수확한 쌀자루가 젖었다며, 다리 위에 나락을 펼쳐 말리고 있었다.
왕지리 한 농가에서는 쓰러진 콩대를 일으키기 위해 할아버지, 아들, 손자, 며느리까지 3대가 밭으로 뛰어 나와 온 가족이 나서 흙을 복돋우고 콩대를 일으켜 세우는 모습이 포착됐다.
시내에 사는 아들은 “아버지가 콩 한포기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을 알기에 거들고 있다”며 “명석에 이런 물난리는 처음 본다”며 당시의 놀란 심경을 전했다.
삭평 마을의 84세 이길순 할머니는 “봄에 자식들이 새로 해준 도배와 장판인데, 병원에서 막 퇴원해 와보니 다 버리게 생겼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침수 당시 면사무소로 피신했지만, 대피소에 난방이 되지 않아 추위에 떨며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결국 이 할머니는 물이 들이찬 방 안 침대 위에서 간신히 눈을 붙였다고 했다. 방 안까지 차오른 물을 보고는 매우 놀랐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저수지 방류만 제대로 했어도…”
신기마을 강병성 씨는 “신기저수지와 남성저수지가 이미 만수였는데, 사전에 수위 조절만 했어도 하류(명석삼거리 피해)지역의 피해가 줄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물 관리는 농어촌공사 몫인데 실제 방류는 이장이나 주민이 하고 있다. 긴급한 상황에서 판단이 늦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농어촌공사, 품질관리원, 기술센터, 읍면동, 유통공사 등으로 재난 관련 책임이 나뉘어 있어 행정이 혼란스럽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젠 재난을 총괄할 수 있는 실질적 대응 부서를 일원화해야 한다”고 덧붙었다.
최상한 경상국립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제 재난은 일상이 됐다”며 “변화된 재난 양상에 맞춘 과학적 예측과 신속한 정보 공유, 그리고 현장에서 민원을 처리하는 공무원 간 유기적 협조가 가능한 통합형 재난 대응 시스템 재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재난 발생 시 문자로 상황을 알리는 데 그치고 있지만, 고령층이나 장애인 등은 이를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재난 취약계층이 보다 쉽게 상황을 인지할 수 있도록 공영방송과 지자체 차원의 보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