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의인터뷰]듣는 것으로 마음을 얻는 수정이용원
어르신들 중 국민학교까지만 나오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졸업하시자마자 이발을 시작하셨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17살 때부터 이발을 시작했지. 방직공장에서 2년 정도 일하다가 쉬고 있을 때, 이발소를 운영하던 부자가 나를 찾아왔어. 어디서 내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길에서 나를 발견하고는 “내일부터 이발소로 나오라”고 하더라고. 그렇게 이발 일을 시작하게 됐어. 그리고 군대에 가서도 이발을 계속했지.
사람들이 찾아와 권할 정도면 동네에서 평판이 좋으셨나 봐요. 너무 잘생기셔서 그런 건가요? (하하) 이발업을 50년 가까이 하셨는데, 힘들거나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신 적 없으세요?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처음엔 양복 기술을 배우고 싶었거든. 그 당시엔 양복 기술이 돈을 더 많이 벌었으니까.
하지만 양복 기술을 배우려면 2~3년 동안 돈을 못 벌고 기술부터 배워야 했지. 반면, 이발소에선 봉급이라도 받을 수 있었어.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발 기술을 선택하게 됐고, 군대 다녀온 이후로도 계속 이어가게 됐지.
요즘은 옷을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 수 있지만, 이발은 사람 손으로 직접 해야 하잖아. 그래서 이 기술은 여전히 필요하고, 나는 지금도 이발 일을 이어갈 수 있는 것 같아.
그 시절엔 한 끼를 위해 돈을 받지 않고도 일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사장님께서는 언제부터 가게를 직접 운영하셨나요?
내 가게를 시작한 건 1980년 8월이야. 처음에는 시골 변두리에서 26살 때 이발소를 열었어. 거기서 약 10년 정도 하다가 서른대여섯 살 무렵에 시내로 나왔지.
주차장 근처에서 가게를 얻어 운영했는데, 당시 여자는 면도를 했거든. 여자 면도사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애를 좀 먹었지. 다행히 구해왔고, 그렇게 가게를 계속 이어갔어.
지금 이 자리에서는 1980년 8월에 문을 열었고, 벌써 44년째야. 처음부터 이곳에서 쭉 세를 주며 지내고 있어.
이발소는 오래 서 있는 직업이라 힘드셨을 것 같아요. 다리는 괜찮으세요?
오래 서 있는 게 크게 힘들진 않았어. 80살까지는 괜찮았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다리가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어.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지.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업인데,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손님들이 꾸준히 찾아올 수 있었을까요? 비결이 있을까요?
손님 이야기를 잘 듣는 게 가장 중요하지. 이발은 결국 손님이 원하는 대로 머리를 자르는 거잖아. 그래서 손님의 요구를 잘 들어야 해. 나는 손님의 손이 되어주는 사람이니까. 자기 위주로 하면 절대 안 되고, 손님 취향을 반영해야 하지. 손님 말을 귀담아듣는 게 핵심이야.
사장님의 이발 실력도 대단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 특히 남자 손님들은 아는 척하면 거리를 둔다고들 하잖아요. (하하)
그래서 나는 손님이 눈을 뜨고 있으면 이야기를 하고, 눈을 감으면 말을 하지 않아.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거지. 그리고 무엇보다 손님 말을 경청하는 게 중요해. 손님들은 나를 먹여 살려주는 보배 같은 존재니까.
이발소는 머리를 자르는 곳이면서도 이야기가 오가는 공간이라고 생각돼요. 사장님이 말씀을 잘하셔서 단골 손님이 많으신 게 아닐까요?
좋은 이야기를 하려고 하기보다는, 나도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기억에 남아. 그러다 비슷한 상황이 오면 그 이야기가 떠오르더라고. 그래서 손님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곤 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복합적으로 있다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풀리는 게 신기하더라고. 하나의 이야기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 여러 이야기가 결합돼야 풍성한 대화가 되는 것 같아. 그런 이야기를 손님들에게 전하면 좋아하시더라고.
수정이용원 사장님과의 대화에서 가장 강렬하게 느낀 것은 경청의 힘이었다. 그는 단순히 손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억하고 다시 이야기로 풀어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손님의 이야기를 “보배”라고 표현한 그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또한, 그는 단순히 생계를 위해 이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삶의 만족을 느끼며 이 일을 이어갔다. 50년 넘게 한 직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그의 긍정적인 태도와 손님을 위한 마음 덕분이 아닐까 싶다.
이발소라는 공간은 단순히 머리를 자르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가는 공간의 역사와 같았다. 각자의 이야기들이 엮여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 이야기가 사람들을 이끌었다. 결국, 수정이용원은 단순한 이발소가 아니라 지역의 작은 커뮤니티 공간처럼 느껴졌다.
이 글을 정리하며 나 역시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이야기들을 다시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와 경청, 그리고 연결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