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보]진주시, 성평등 강연 하루 전 취소…“혐오에 굴복한 행정” 비판 여론 전국 확산
여성단체 "성평등 '혐오'하는 진주시는 각성하라" 종교계, "혐오와 차별 중단 촉구” “성평등 강연 지켜내자” 전국서 후원 이어져
진주시가 진주여성민우회가 준비한 ‘2025 모두를 위한 성평등’ 강연을 불과 하루 앞두고 일방적으로 취소하면서 지역 안팎에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이번 강연은 질병, 퀴어, 환경, 언론, 대중문화, 노동, 과학, 남성 등 다양한 주제를 성평등의 관점에서 토론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하지만 시청 민원 게시판에 “퀴어·페미니즘 강연을 반대한다”는 글이 올라오자, 시는 민우회측에 “내용을 협의하지 않으면 교부금을 철회한다”는 공문을 긴급 발송했다.
이 과정에서 진주기독교단체 일부 회원들은 27일 오전 진주시장과 면담을 진행했고, 관련 대학 학장과 부총장은 만나는 등 “모두를 위한 성평등” 교육이 '우리 아이들에게 동성애를 조장하며, 가정을 해체시킨다"며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문서를 전달하며 '강의 취소'를 호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진주시는 지난달 28일 부시장을 비롯해 양성평등위원 8명이 긴급회의를 열고 “사업이 공익에 저해되고 지원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교부금 취소를 결정했다.
이에 대해 여성단체들은 “차별과 혐오를 제지해야 할 행정이 오히려 악성 민원에 편승한 꼴”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극우 개신교 집단은 경남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지 못하도록 방해했으며, 이미 제정된 조례조차 폐지하는 데 앞장섰다”고 지적하며 “일상 곳곳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에 제대로 대응도 못하면서, 진주시가 양성평등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누군가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민원을 적극 수용하는 진주시가 과연 형평운동의 정신을 계승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날선 비판을 덧붙였다.
이번 발언은 진주시의 성평등 정책과 관련한 시민사회와 종교계 간 갈등이 단순한 행정 논쟁을 넘어, 사회 전반의 인권과 평등 문제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강연은 멈추지 않았다…경상국립대 앞 '성평등 반대' 집회도 열려
진주시의 지원이 끊겼지만 강연은 그대로 이어졌다. 진주여성민우회는 지난달 29일과 30일, 조한진희 강사의 ‘질병과 함께 하는 페미니즘’, 한채윤 강사의 ‘퀴어와 함께 하는 페미니즘’을 차질 없이 진행했다.
동시에 강연 장소인 경상국립대 정문 앞에는 진주기독교총연합회 신자 20~30명이 몰려와 “사회적 합의가 없는 성평등 강연을 왜 경상국립대에서 하느냐”는 문구가 적힌 펼침막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오는 3일 진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상국립대와 진주여성민우회는 비합의 성평등특강을 철회 할 것"을 요구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종교계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 기독교 신자는 최근 논란과 관련해 “원수도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지적하며 "지역에서 인권과 페미니즘에 대한 강의를 들을 수 있어 반가웠는데, 이런 논란이 일어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채창완 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신부 또한 비판적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성경 구절을 왜곡해 소수자를 공격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 탄압”이라며, “부동산 투기와 거짓말을 금지한 구약의 가르침조차 지키지 않으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구절만 선택적으로 꺼내드는 것이 과연 종교인으로서 할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선택적 적용과 편향은 신앙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며,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행위”라고 강하게 반문했다.
채 신부는 이어 “종교인은 단순히 교리를 옳고 그름으로만 해석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정의와 인간의 존엄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자리”라며,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춰 성경을 취사선택하는 태도는 결국 신앙을 정치적·사회적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과 여성단체, “결정 즉각 철회하라”
이번 사태는 지역을 넘어 전국적인 이슈로 번졌다. 정혜경 진보당 국회의원은 1일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거스른 행위”라며 진주시에 결정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경남여성단체연합도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양성평등주간을 맞아 악성 민원에 굴복한 것은 기금의 취지를 훼손한 것”이라며 성평등 정책 추진 체계의 회복과 강화를 촉구했다.
앞서 진주여성민우회를 비롯해 경남여성회, 김해여성의전화, 창원여성살림공동체 등 경남 지역 12개 단체와 전국 68개 여성단체는 공동성명을 내고 “보조금 취소 결정을 철회하라”며 조규일 시장의 책임 있는 태도를 요구한 바 있다.
“성평등 강연 지켜내자” 전국서 후원 이어져
시의 일방적 결정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전국에서 “성평등 강연을 지켜내자”는 응원과 후원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170여 명이 후원에 참여했으며, 일부 강사들은 강사비를 받지 않고 재능기부를 선언했다. 또 SNS를 통해 관련 소식이 확산되면서 전국적인 연대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