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민의 먹고싸는 이야기] 또 다른 한류, K-숙취가설
40대까지는 숙취를 심하게 겪었습니다. 두통 구역 구토가 심했습니다. 그런데 50대가 되어서는 숙취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래서인지 50대가 되어서는 술 마시는 회수가 더 늘어났습니다. 술 취함과 숙취가 다른 것임은 알 것입니다.
숙취의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른다가 오늘날 과학의 현주소입니다. 하지만 몇 가지 가설은 있습니다. 아세트알데히드 가설, 탈수 가설, 저혈당 가설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염증반응가설'입니다. 숙취는 일종의 염증반응이라는 것입니다.
문화계의 한류에 K-pop, K-drama, K-food 등이 있다면 이 염증반응가설은 'K-숙취가설'입니다. 바로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이 가설을 2003년 발표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숙취는 고량주 소주 보드카 같은 증류주보다는 와인 막걸리 같은 발효주가 심하고, 이런 상업화된 술보다는 집에서 발효시킨 술이나 각종 산열매나 약초로 만든 담금주가 더 심하다고 합니다. 조금씩 소량으로 먹는 담금주는 건강과 정서와 풍류에 좋을지 몰라도 과음하게 되면 숙취를 가장 심하게 유발하는 술 중의 하나입니다. 숙취는 단순 알코올 섭취량에 비례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염증반응가설'에 따르면 장점막이 알코올 대사물과 발효 부산물 등에 의해 손상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유해 균체 성분 등 이물질이 체내로 유입되고 우리 몸은 이것을 인식해 면역 체계를 발동시킨다고 합니다. 이때 우리 몸은 병균이 침입했을 때와 같은 염증반응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숙취 상태가 되면 면역세포가 과도하게 증식하고, '사이토카인'이라는 염증 단백질이 증가하는 등 병균에 감염됐을 때와 비슷하게 됩니다. 비상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장 군인과 같은 사이토카인이 휘젓고 다닙니다. 총알과 포탄 같은 '산화물질'과 '독성물질'이 날아다닙니다. 민간인에 해당하는 뇌세포 등 신경세포가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두통과 구역, 구토 그리고 기억력 저하가 뒤따릅니다.
술을 마시지 않은 멀쩡한 사람에게 사이토카인을 주사하면 숙취 증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숙취가 염증반응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숙취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습니다. 숙취는 알코올 중독 예방 기능이 있습니다. 숙취로 고생하고 나면 당분간 술에 만정이 떨어집니다. 숙취를 심하게 겪는 사람일수록 알코올 중독에 빠질 위험이 낮다고 합니다. 반면 숙취가 없는 사람은 술을 더 자주 마신다고 합니다. 알코올 중독 위험이 높아집니다. 술 마시는 속도와 유전적 요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략 20% 정도는 숙취를 경험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반 상식과 달리 나이 들수록 숙취 심각도가 줄어든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기는 합니다. 개인적 경험이지만 50대가 되어서 저는 술을 더 자주 마셨습니다. 알코올 대사 산물, 발효 부산물 등을 해독하는 효소의 유전자 발현이 증가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면 저의 면역체계가 반복되는 음주로 인해 둔감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중독이 되겠지요. 이제 술을 줄이고 자제해야 하겠습니다. 숙취 원인 가설 중의 하나인 '염증반응가설'을 공부하다 되돌아보며 반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