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부녀회 첫 나들이의 변

2024-04-25     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마을부녀회의 공식 활동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마을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온갖 뒷일을 챙기며 마을을 지켜왔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길흉사를 집안에서 치를 때 유족의 마음을 위무하는 일이며, 그 많은 조문객의 음식을 대접하는 일, 평토제 지낼 제례음식 준비하는 일 등 부녀회원이 빠지면 되는 일이 없을 정도였다지요. 그런 일을 마치면 상주가 고마움의 표식으로 사례금을 주었고, 그런 돈들이 모여 부녀회 기금의 종잣돈이 되었다 합니다. 지금은 농약 빈병이나 재활용품 분리수거 등으로 약소한 기금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 마을 부녀회의 소망이 하나 있었으니 부녀회원끼리만 가는 나들이입니다. 다른 마을은 부녀회원끼리만의 나들이를 다녀왔다고들 하는데, 유독 우리 마을만은 그런 기회가 없었습니다. 나들이면 나들이지 굳이 부녀회원들끼리만 가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남녀노소가 나들이를 다 같이 가면 역시나 뒷일은 부녀회원의 몫이 됩니다. 차 안에서 참꺼리를 나누는 일이며, 식당가서 숟가락을 놓는 일까지도 부녀회원의 몫이 됩니다. 그런데 부녀회원들끼리만 가면? 모두가 손을 보태는 일은 기본이고, 나이든 여성들도 받아먹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려하고, 하다못해 고마움이라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분위기를 좋게 만들며 협력적 자세로 임합니다. 평생을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또 군림하지 않고 살아온 세월이 몸에 배인 까닭입니다. 이렇게 여성들만의 나들이는, 섬길 사람 없이 마음의 부담을 덜고서 뭔지 모를 편안함이 있으니 그토록 여성들만의 나들이를 꿈꾼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마을부녀회가 여태껏은 왜 나들이를 가지 못했을까요? 물론 누군가가 가지 못하게 발목 잡은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좋은 부녀회원들만의 나들이를 하지 못한 까닭은? 명분과 비용일 것입니다.

여성들끼리만 나선다고 했을 때 뒷말을 감당할 힘을 가지고 있는가? 누군가의 지원 없이 스스로 마련한 경비로 나설 자신이 있는가? 네,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마을의 부녀회원들 힘이 충분히 생겨난 것이지요. 참으로 오래 걸렸습니다. 산골 마을부녀회가 자기 비용을 감당하며 부녀회원들끼리 나들이를 다녀오기까지 세상이 많이 바뀌고 또 바뀌어서 비로소 남의 이목 따위는 안중에 없이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과정에 난국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경로잔치 음식준비는 뒤로하고 제 편할 도리만 취하는 부녀회에 대해서 뒷말이 나왔으며, 그런 말이 나돌자 한 명 두 명 빠지겠다는 회원들이 있어서 나들이가 위태롭기도 했습니다. 그때 중심에 선 부녀회장님이 부녀회의를 다시 열어서는 무기명 투표를 하자며 투표용지를 준비해 왔습니다. 전에 없던 일이지요. 그런 당찬 기세에 투표 대신 이번에 꼭 마을부녀회 나들이를 다녀오자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부녀회원도 때로는 제 편할 도리를 취할 때가 있습니다. 내 밥도 해먹기 힘든 60대 부녀회원들이 새삼스레 마을의 경로잔치를 준비하기가 쉽겠습니까? 그러니 대부분 식당으로 가거나 뷔페음식으로 대체하는 것이지요. 세상의 변화에 발맞추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용기였습니다.

평생 남을 배려하느라 ‘나’를 잃어버리고 살아오기도 했던 수많은 날을 뒤로하고서, 비로소 60대가 되어서야 불편할 때는 불편하다고 말하는 용기를 낸 것입니다. 세상의 변화와 함께 말이지요. 이런 우리 마을 부녀회원들, 멋지지요?
 

* 이 기사는 [한국농정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