쫌 놀아본 김쌤의 연애교실 - 1

지난 2년동안 한번도 나를 찾아오지 않던 녀석들이 3학년이 되고부터는 나를 찾는 일이 잦아진다. 공부나 진학,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 등 다양한 고민들을 들고 오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바로 "연애"이다. 사실, 교내에서 연애 경험이 가장(?) 많기도 하고 또 솔직하게 이야기 나누기도 해서 아이들에게는 더 진솔하게 느껴지는 것도 한 몫 할테다. 그리고 다른 쌤들이 ‘연애고민’이라고 하면 그냥 나한테 보내버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만큼 그 녀석들에게 큰 이슈가 연애가 된다는 뜻이지 않나 싶어서 사춘기야 말로 최고의 연애 타이밍이 아닌가 생각된다.

잘 지내는 줄만 알았던 Y가 날 찾아온 이유는 이랬다.

"걔가 매일같이 꿈에 나와요. 매일매일 꿈에 나오는데, 요즘은 눈만 감으면 L이 나와요. 그러다 눈을 떴는데 걔 얼굴이 앞에 있어서 얼굴을 만지고 다가가려는데 자세히 보니 S(남자)인거에요. 놀라서 화들짝 깼는데, 그러고 눈을 감고도 또 걔가 나오는거에요. 어떡해요 저?"

거의 상사병 수준의 짝사랑인데, 알고보니 처음 입학할때 시작된 짝사랑이 지금껏 이어져 온것이란다. 물론, 그간에 사귄 여자들도 있었지만 그녀들 모두 "Y"와 닮은 사람을 선택했었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었는데, 3학년이 되고나니 점점 더 선명해지고 결국엔 이지경까지 왔단다. 더욱 고민인 것은, 현재 둘은 누구보다 친하고 편한 사이인데, 만약에 고백을 하고 (잘 되던 안되던) 사이가 멀어지는 일이 생길까 그게 제일 두렵다는 것이다. 중학생다운 고민이, 기특하기도 하고 가엾기도 한 녀석과 얘길 나눴다.

니가 할 수 있는 것만 해 임마!!

Y의 주된 고민 중 하나는, 그 아이가 불편해 할 상황에 대한 걱정이 컸다.

'고백을 했다가 혹시라도 걔가 불편해 하면 어쩌지?'

'다른 친구들이 우리 사이를 안좋게 보면 어쩌지?'

'나중에 헤어져서 예전처럼 친구로라도 지내지 못하면 어쩌지?'

그런 걱정들이 앞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저 안타까웠다.

"니가 할 수 있는 것만 해, 임마!"

어차피, 내일의 일은 알 수가 없다. 아니, 1분후의 일도 알 수가 없는게 삶이다. 녀석들보다 15년을 더 살아온 나 조차도 잠시 후 의 내 모습도 알 수가 없는데 뭘 그리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리스크를 최대한 예측해서 피하고 싶은, 안정지향적 성격은 알겠지만 그럼에도 거의 "신"에 가까운 예지력을 지니고 싶어하다니, 욕심도 이런 욕심이 없단 말이다. 어차피 능력밖의 일을 걱정하느라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면, 차라리 그 에너지 아껴서 자신이 가진 것 안에서 매력을 발산하기를 바란다.

한번 더 웃고, 한번 더 움직이고, 조금 더 열심인 모습을 L에게 보이는 것이 훨씬 더 어필 할 수 있다는 것이지. 그리고 지금처럼 꿈에도 나타나고 수시로 멍해질 정도의 "상사병"이라면 자기 자신을 자신답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니 L도 이미 불편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벌써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운 상태인데 뭘 새삼스럽게 "불편할지도 모르는 일"을 걱정한단 말인가. 말도 못하고 끙끙 앓다간 아무것도 못하고 불편해질 수도 있으니, 차라리 시원하게 말이라도 하고 불편한게 더 나은것이라고 본다. 둘 사이에 어떤 결과가 올지 몰라도, 적어도 가슴에 담고 있던 말 못할 감정들을 "말"로 승화시켜 배출시키는 것 자체만으로도 조금은 가벼워 질 테니까.

L에게도 시간을 줘

결국, 자신의 마음을 그렇게 전달한 녀석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다시 나를 찾았다.

"쌤, L이 아무말도 안해요. 어떡해요ㅠ 망했어요ㅠㅠㅠㅠ"

"기다려 임마, L에게는 지금, 시간이 필요해."

Y가 자신의 감정을 바라보고 인정하기까지 어느정도의 시간이 걸렸다시피 L에게도 Y의 마음을 이해하고 바라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때, 충분한 시간동안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고 자꾸 재촉한다면, 그야말로 자신이 얼마나 마음이 좁은 사람인지, 급한 사람인지 보여주는 것이므로 매력도가 뚝뚝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러니,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라. 그러고 Y는 Y대로 잘 지내면 되는것이다. 내 마음속에 있다가, 내 입으로 나오는 순간에야 내 것 일지 몰라도 이미 내 입을 떠나 상대방의 귀로 들어간 이야기는 더 이상 내가 만들어낸 소리와 단어가 아닌 그 사람의 귀로 들어가 머리속에서 전기신호로 변한 그 사람의 무언가이다. 역시, 내 영역 밖의 일인것이다. 그러니 충분히 기다리고, 그 결과를 기다려라. 어차피 떠난 화살이다. 누가 알어, "그래 좋아-"하고 답할지.

중요한 건, 순간이 아니야.

Y에 대한 L의 대답은 아직 없다. 그럼에도 준비를 해야 한다. 영원한 시간을 말이다.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하고, 사귀자고 대답을 하는 순간을 매우 짧다. 길어야 5초. 그보다 더 길수도 있고, 더 짧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찰나의 순간이다. 그때의 순간이 영원처럼 기쁘고 행복하겠지만, 그 역시 잠시일 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만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순간의 즐거움이 매일의 시간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러니 준비해야 한다. 현명하게 연애할 준비를 하고, 함께 나눌 시간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아무 대책을 세우지도 못하고 맞이하는 연애야 말로 끝이 보이는 연애일 뿐이다. 모두가 영원한 사랑을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물론, 영원하지는 않겠지만) 서로의 일부분을, 시간을,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지 상대방이 내 것이다 아니다 등등의 욕심들을 관리할 수 있는 지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야 원하는 바를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만들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잘 되지 않았을때도 생각해야 한다.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상대방이 밉고 싫고 짜증나겠지만, 내 멋대로 상대방을 좋아한 마음처럼, 그 마음 역시 존중받아야 하며,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니 그 사람을 이해하고, 예전처럼 편하게(편하게 지내는 것이 어렵겠지만, 안되는 건 아니다. 단지 어려울 뿐) 지내면 되는것이다. 십대들의 연애도, 이십대, 삼십대의 연애와는 다르지 않다. 다만, 십대들은 조금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고, 그 시간들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엄청난 축복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에게 잘 맞는 스타일의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오래도록 함께 걸어가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시간들을 충분히 갖고, 즐기기를 바란다. 물론, 연애 공부도 하면서. 그래야 더 멋진 어른이 될테니까.

과연 L은 Y의 고백을, 받아 들였을까?

 

* 쫌 놀아본 김쌤 : 대안학교 교사. 영화치료사. 8살 때 첫 연애를 시작. 갈고 닦은 내공을 바탕으로 “길거리 연애 상담가”로 활동중입니다. 다양한 연애상담신청은 astrio83@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성심, 성의껏 답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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