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나 진주이야기 ① 하륜의 묘와 오방재

조선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 이들에게는 조선왕조의 밑그림을 그린 정도전(1342~1398)과 왕권 강화의 디딤돌을 놓은 하륜(1347~1416)이라는 조선 창업의 라이벌이 있었다. 정도전과 하륜은 고려말 이색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하며 성리학을 공부한 선후배로 만인지상의 지위를 누렸지만 최후는 달랐다.

정도전은 신권중심의 오늘날 영국식 입헌군주제의 내각책임제를 꿈꾸었다. 반면, 하륜은 의정부를 폐지하고 육조 직계제를 신설하는 등 왕권 강화에 힘썼다. 지향점이 달랐고 처세가 달랐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하륜은 경륜이 있는 정치가로, 정도전은 나라에 반역한 역적으로 남았다.

지난해 이맘쯤 학교 가지 않는 날이라고 늦잠 자는 아이 세 명을 깨워 아침을 먹였다. 그리고 시큰둥하며 텔레비전 만화를 보려는 아이들을 햄버거 사준다는 미끼로 길을 나섰다. 경남 진주에서 합천으로 가는 4차선 일반국도에서 빠져나와 한적한 시골 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 ‘진양오방산 조선조팔각형고분군(晋陽梧坊山朝鮮朝八角形古墳群)’

고분군 앞에는 오방재라는 재실이 있다. 하륜과 아버지 하윤린, 조부 하시원을 모신 곳이다. 재실 왼쪽에는 5년 전부터 하륜에 관한 전시실을 별도로 마련해놓았다. <진산부원군 하륜의 졸기>를 비롯해 하륜이 쓴 경회루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재실 오른쪽에는 죽은 사람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살았을 때의 일을 기록하여 무덤 앞이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우는 비석인 경남 유형문화재 <진양부원군 신도비>가 있다. 하륜의 아버지 하윤린의 신도비다. 출세한 아들 덕분에 세워진 신도비 앞에서 내 아이들은 별다른 말이 없다. 그저 휴대폰에 저장한 노래를 따라 흥얼거릴 뿐.

사진2. 오방재를 나와 돌담 따라 고즈넉한 산길을 200m 정도 올랐다.

오방재를 나와 돌담 따라 산길을 200m 정도 올랐다. 산길은 고즈넉했다. 아이들은 달랐다. 한 녀석은 저만치 내달리고 또 다른 아이는 두툼하게 깔린 낙엽들이 미끄럽다며 내 손을 잡고 걸었다.

 

사진3. 15m 간격으로 일렬종대로 자리 잡은 무덤 4기가 먼저 반긴다. 맨 위쪽, 하륜의 조부 하시원부터 조부모와 부모의 묘까지.

미끈하게 위로 뻗은 소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15m 간격으로 일렬종대로 자리 잡은 무덤 4기가 먼저 반긴다. 맨 위쪽, 하륜의 조부 하시원부터 조부모와 부모의 묘까지. 직사각형의 무덤 주위에는 돌담을 쌓아두었다. 봉분이 장방형이며 주위를 둘러싼 호석은 길이가 11.4m, 너비가 8.0m, 높이가 1.2m로 판석으로 꾸며져 있다. 봉분은 길이 5.4m, 너비 3.9m, 높이 0.6m이며 둘레를 쌓은 장대석 위에 흙으로 1m 정도의 높이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서 다시 50여m 산길을 더 올라가면 하륜의 묘다. 삼대(三代)의 묘가 한 곳에 자리하고 있어 고려(高麗) 말에서 조선(朝鮮) 초기의 무덤 양식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특히 하륜 묘는 직사각형 모양의 다른 무덤과 달리 석판이 팔각형 모양으로 하고 있다.

“나도 장차 벼슬을 그만둘 날이 이미 가까워졌으니 필마(匹馬)로 시골에 돌아와서 여러 노인과 함께 좋은 시절 좋은 날에 이 다락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시를 읊조려 즐기면서 여생을 마치고자 하나니 고을 노인들은 기다리시오. (진주 촉석루의 변천 과정을 기록한 <촉석루기>)”라고 시를 읊었던 하륜이 1416년(태종 16년) 11월 6일 함경남도 정평에서 왕릉을 둘러보다 병으로 죽어 여기 묻혀 있다. 풍수지리에 밝았다는 하륜도 자신의 죽을 자리를 먼저 세상을 떠난 사위에게 물려주고 여기에 묻혔다.

사진4. 하륜 묘. 직사각형 모양의 다른 무덤과 달리 석판이 팔각형 모양으로 하고 있다.

무덤 앞에는 석등과 석상이 서 있고 주위는 돌로 쌓은 담이 둘러싸고 있다. 하륜은 정도전을 벤치마킹했다. 힘없는 정치 유랑자 정도전이 자신의 머리를 믿고 힘을 구해 함주 막사로 이성계를 찾아갔듯이, 이방원을 찾았다. 왕자 중에 가장 학식이 풍부하고 머리 회전이 빠르며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진 정안군 방원! 두 야심가가 왕자와 대신이 아닌, 주군과 가신으로, 동지로 새로이 만났다. 이방원은 왕이 되고 하륜은 영의정에 올랐다.

하륜은 임금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군주의 의중을 잘 헤아리고 의지를 실천한 까닭에 험한 시대 영화롭게 살았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하륜의 죽음에 태종은 심히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고 3일 동안 조회(朝會)를 멈추고 고기와 생선이 든 반찬을 7일 동안 먹지 않았다고 한다.

“아빠도 이렇게 무덤을 만들어 줄까?”

중학생인 큰아들은 내게 묻는다.

“아니. 화장해서 그냥 산에 뿌려~”

조선 시대 최고의 권력가도 죽음은 피할 수 없었다. 살아생전 비단옷을 입고 맛난 고기 먹으며 주위에서 떠받들어 모셔도 죽으면 그뿐. 넓은 묘를 쓰고 아무리 왕이 슬퍼하고 위로한들 죽으면 부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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