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담아 만든 기타가 좋은 기타”.. 취미로 시작해 수제 기타 전문가 되기까지

▲ 금산 크리스 기타에서 박민병 대표. 등 뒤로는 그가 만든 기타들

[단디뉴스=김순종 기자] 천편일률적으로 찍어내는 기타가 아닌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인 수제 기타를 제작하는 사람이 진주에 있다. 70~80년대 불었던 기타 붐이 지금은 한풀 꺾였지만, 그럼에도 특색 있는 기타를 만드는 데 보람을 느낀다는 사람, 그는 진주시 금산면에 위치한 ‘크리스 기타’의 박민병 대표다.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그는 중학교부터 즐겨 치던 기타를 대학시절 취미삼아 만들기 시작해 이제는 업으로 삼고 있다. 진주에서 기타 공방을 연 것은 10년 전 쯤, 기타를 제작하기 전에는 미대생이었다. 이후에는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면서 해외를 떠돌기도 했다. 지금은 이들 경험들을 기타를 만드는 일에 모두 녹여낸다.

기타 장인의 문하에 들어간 적은 없지만, 순수한 기타 제작에의 관심으로 그는 세계 100대 클래식 기타 제작자로 꼽히는 김희홍 씨에게 많은 제작기술을 배웠다. 대학시절 온라인으로 문답을 이어가다 한 때는 그의 기타제작소 근처에 방을 구해 제작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지금도 김 씨는 그의 소중한 은사이다.

기타를 만들면서 유명 뮤지션에게 기타를 전할 기회도 몇 번 찾아왔다. 대학시절 만든 기타를 보고 김태원(부활)의 후배로부터 연락이 와 2009년쯤 그에게 기타를 제작해 준 적이 있으며, 오랜시간 팬이었던 서태지에게 기타를 선물해 주기도 했다. 김태원은 이 기타로 방송을 하기도, 서태지는 전국투어에 기타를 사용하기도 했다.

하나의 기타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적어도 세달 이상이다. 천편일률적으로 찍어내는 공장형 대량생산 기타들과 달리 기타 하나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상업적 마음보다는 1대를 만들어도 진심을 담아 만들면 좋은 소리가 난다는 것”이 박 대표의 입장. 그는 “수제 기타는 보다 디테일하게 만들어져 조화로운 소리가 난다”고 전했다.

깁슨, 팬더, 마틴 등 외국 브랜드의 대량생산 기타 수요가 높은 요즘, 다소 느리더라도 진심을 담아 ‘하얀 캔버스’ 같은,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아 어느 연주자이든 그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기타를 만들고 싶다는 박민병 크리스 기타 대표를 22일 그의 공방에서 만나 얘기를 나눴다. 인터뷰에는 김성대 대중음악평론가가 함께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크리스 기타 박민병 대표가 그의 공방에서 기타 만드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 기타를 제작한 것은 얼마나 됐나?

“기타공방은 진주에서만 계속했다. 2010년 말 준비를 시작해 2011년 초 본격적으로 공방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구 진주교육지원청 뒤편(상대동)에 문을 열었다가 3년 전쯤 이곳 금산으로 이사했다”

 

- 기타를 제작하게 된 계기는?

“대학시절이던 2004년 쯤 기타제작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미대를 다녔는데 전공이 조소였다. 작품활동을 하면서 음악의 조형성을 표현하는 게 주된 작업이었는데, 음악의 조형성을 드러내는 게 악기다. 하다보니 악기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 취미로 악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 대학을 다니며 독학을 한 건가?

“그렇다. 2005년 클래식 기타 제작에 도전했다. 중학교부터 클래식 기타를 쳤지만, 클래식 기타는 독학으로 만들기 힘들었다. 제작가 누리집 등에 질문을 남기면서 혼자 기타를 만들었다. 대부분 기타 제작 노하우를 가르쳐주지 않는데 한 분이 열린 마음으로 가르쳐줬다. 온라인으로만 배우기 힘들어 짐을 싸들고 그 분이 계시던 경기도 이천에 잠시 머물며 기타 제작을 배웠다. 알마기타 김희홍 선생님이다. 세계 100대 클래식 기타 제작자로 불리는 분이다.”

 

- 문하생으로 배운 건 아닌가?

“문하생으로 배웠다고 하기는 힘들다. 제작 이론, 기법들을 배웠지만 문하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배운 것 아니기 때문이다. 2010년 진주에 내려와 기타 공방을 연 뒤에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전화를 하거나 찾아가 여쭤보고는 한다. 지금도 연락과 질문은 계속하고 있다. 목표는 선생님을 넘어서는 거다. 선생님도 그걸 바라시는 것 같다(웃음)”

 

- 기타 제작만 해온 건 아니지 않나?

“본래 가톨릭 신자다. 2007년쯤 해외 유학을 했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철학도 공부했다. 주로 인도와 파키스탄에 있었고, 이탈리아 로마, 스페인 마드리드에도 있었다. 사실 그 전부터 신부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선교를 하면서 공부했던 거다. 그 중에 몸이 좋지 않고, 머물던 파키스탄 등에 분쟁이 일어나 2010년 9월쯤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진주에서 기타 공방을 열었다”

 

- 국내에 돌아 와 기타 공방을 열게 된 계기는?

“신학 공부를 해외에서 하면서도 기타를 만들려고 재료를 모으고는 했다. 국내에 들어와 기타 제작을 직업으로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김희홍 선생님에게 조언을 구해 공방을 차렸다. 경제적으로 힘들 때도 있었지만 꾸준히 해왔다. 좋은 소리가 나는 기타를 만들려고 여러 기법을 사용해봤고, 처음에는 작업하다 마음에 안 들어 부숴 버린 기타도 많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자리 잡혔다고 본다. 김희홍 선생님도 좋은 평가를 해주신다. 작년에는 KBS, MBC방송에 나가기도 했다.”

 

▲ 자신이 만든 기타를 직접 연주하고 있는 크리스 기타 박민병 대표

- 부활의 김태원 씨에게 기타를 만들어준 적이 있다고?

“2009년 쯤 해외에서 공부하다가 방학을 맞아 한국에 들어온 적이 있다. 유학 가기 전 만들었던 기타를 유학 전에 처분했는데, 그 당시 기타를 봤던 건지 김태원 씨 후배라는 분이 연락이 왔다. 김태원 씨 기타를 만들어달라고 해 만들어 준 적이 있다. 그렇게 고가로 만들어준 건 아니다(웃음).”

 

- 서태지 씨에게도 기타를 만들어줬다고?

“서태지 씨는 개인적인 팬이다. 2004년쯤 기타재료를 모으다가 진짜 좋은 재료를 발견했는데, 이걸로 서태지 씨 기타를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다. 2014년 서태지 씨 컴백 전에 왠지 그가 곧 컴백할 것 같아 그를 위한 기타를 만들었고, 실제 컴백했다. 서태지 씨가 전국투어 콘서트를 진행할 때 이걸 전해줬다. 앙코르(재청) 콘서트 때 이걸 직접 메고 나와 ‘테이크3’ 등을 제 기타로 불렀다. 당시 저는 입원해 있었는데, 콘서트 때 저를 찾았다고 하더라. 며칠 뒤 공연 때 찾아가니 ‘친구 당신이 만든 기타 소리 들어볼래’라고 하며 공연을 하더라. 기뻤다.”

 

- 기타를 하나 만드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드나?

“일렉트릭 기타는 두 달에서 세 달 정도, 어쿠스틱 기타나 클래식 기타는 4달 정도”

 

- 좋은 소리를 만드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면?

“기타를 1대 만들든지 10대 만들든지 진심으로 만들어야 한다. 상업적으로 팔기 위해 빨리 만들고 빨리 판다고 생각하면 그 마음이 악기에도 반영된다. 악기의 질이 떨어진다. 진심을 담아 성실히 만드는 게 좋은 소리가 나는 악기를 만드는 방법이다. 세세한 제작방법은 물론 비밀이다(웃음).”

 

- 미대에서 조소를 전공했고, 신학이나 철학 공부도 했다. 이것이 기타 제작에 미친 영향은?

“기타를 만든다는 게 단순한 공식 같은 게 아니다. 내가 이런 소리의 기타를 왜 만드는가. 어떠한 소리를 추구하는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소리를 만드는 지 방법론적인 것을 궁금해 하지만 어떤 소리를 추구하고, 만드느냐가 더 중요하다. 특히 어쿠스틱 기타, 클래식 기타는 조합이 잘 맞아야 조화로운 소리가 난다. 철학 공부 등을 한 것이 도움이 많이 된다.”

 

- 수제 기타만의 장점이라면?

“공장에서 찍어내는 기타와 많은 차이가 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건 대량으로 만들다보니 세밀하지 못하다. 각 부위의 목재가 특히 그렇다. 어느 정도 소리가 나온다고 인증된 방식 그대로 대량을 찍어내는 것 아닌가. 그런데 목재마다, 또 목재의 두께나 상태마다 조금씩 결이 다르다. 이걸 제대로 조절해야 좋은 소리가 난다. 수제 기타는 그걸 조절할 수 있다. 작업할 때도 소리가 어떤 식으로 울리고 퍼지는지 여러 번 확인을 하니까”

 

- 추구하는 기타톤은?

“화려하지 않지만 단정하고, 어딘가에 치우치지 않은 그런 악기다. 화가는 하얀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린다. 캔버스가 하얀 색이라야 그 위에 그려지는 색깔들이 빛을 발한다. 빨간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면 다른 색깔들이 빛을 발하지 못한다. 악기도 마찬가지다. 하얀 도화지 같은 악기라야 연주자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 특정 음악에만 맞는 악기가 아닌 모든 음악에 맞는 악기, 연주가의 표현을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악기를 만들고자 한다.”

 

- 상호명이 ‘크리스’다.

“제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크리스찬에서 ‘찬’을 떼어버리고 만든 게 크리스다. 어쿠스틱, 일렉트릭 기타는 상호가 크리스로 나가지만, 클래식 기타는 ‘기따라 아쿠스티나’라는 상호로 나간다. 우리말로는 그냥 ‘아구스티노 기타’라는 뜻인데, 아구스티노는 제 세례명이다.”

 

- 내 악기를 쳐줬으면 하는 사람이 있나?

“브라질 출신의 파브리시오 마토스. 몇 년 전 김희홍 선생님과 이런 이야기가 오갔는데, 언젠가 제가 만든 기타소리도 듣고 싶다고 하니, 김희홍 선생님도 허락을 해주셨다. 기회가 닿는다면 그 친구가 제가 만든 기타를 연주해줬으면 한다.“

 

- 깁슨이나 펜더 등 외국산 기타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내의 많은 분들이 외국산 악기를 선호한다. 뮤지션들이 이들 악기를 많이 쓰고 인지도도 있으니 그렇다. 하지만 대량 생산된 악기는 한계도 분명하다. 천편일률적으로 찍어내기 때문이다. 소규모 공방에서 만든 기타 소리를 들어보면 많은 차이가 난다. 국내 뿐 아니라 외국도 그렇다. 다소 가격은 비싸지만 소리는 그만큼 좋다. 제작 과정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 브랜드 악기가 많이 죽었다. 국내 제품을 많이 써야 국내 음악도 성장을 할 텐데 다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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