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기업, 생산보다 분배

2007년 “마을기업을 세우자”고 제안했다(*한겨레신문 2007년 9월 28일자). 여기서 말하는 마을기업은, 이후 정부의 정책사업에 갖다 붙인 그 마을기업이 아니었다. 그저 소득이나 늘리고 일자리나 만드는 경제적, 행정적 목적의 기업과는 단지 이름만 같을 뿐이다. ‘비록 자본주의 사회와 체제에 놓여 있지만,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마을공동체를 위해, 더불어 설립하고 경영하는 지속발전가능한 사업단위체’라야 마을기업이라 부를 수 있다.

지난 날, 기업에서 노동하고 기업을 창업하고 경영하다보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경제단위체’인 사전적 의미의 일반기업은 한계와 문제가 있다는 자각과 통찰이 들었다.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자본의 욕망’이라면 몰라도, ‘함께 나눠 먹고사는 사회의 정의’는 자본주의의 첨병, 기업으로는 도저히 실현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일찍이 노무현 전 대통령도 “권력은 이미 시장에 넘어갔다”고 갈파하지 않았던가. 그때 정치를 맹신하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나는 이내 그 말의 진실을 생활 속에서 온몸으로 체감했던 것이다. 오늘날 여전히 한국의 권력은 시장이, 기업이, 자본이 틀어쥐고 있다. 정치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조차 경제권력의 맹주, 시장의 봉건영주, 재벌을 어쩌지 못 하는 듯하다. 정경유착을 넘어 이미 정경동체(同體)라는 ‘적과의 동침’ 수렁에 빠진 것은 아닌지 오해되고 의심되는 징후들도 적지 않다.

 

한국사회 기득권 동맹, ‘삼성공화국’

▲ 정기석 마을연구소 소장

그 시장권력의 정점은 단연 ‘삼성’이 독점하고 있다. 최근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불기소하고 수사를 중단하라는 권고안을 의결했다. 사법부가 무죄로 판결하려는 결론을 미리 설정해놓은 게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회계조작과 불법승계, 노조파괴 공작, 박근혜 국정농단 파트너 등 이재용 부회장을 이해하거나 용서하기에는 죄의 질은 너무도 추악하고 죄의 량은 너무도 막대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재벌, 언론, 법조, 종교, 대학 등이 연대한 이른바 한국사회의 기득권 동맹의 정점에도 역시 삼성이 우뚝하다. 그래서 한국사회는 아예 ‘삼성공화국’이라 불린다. 그러나 삼성과 공화국이라는 단어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공화국(共和國​)이란 말은 본디 ‘더불어 사이좋게 살아가는 나라’를 뜻한다. 하지만 ‘삼성공화국’에서는 돈 많은 사람만, 힘이 센 사람만, 가진 사람만, 그들끼리 사이좋게 살아간다. ‘그들만의 공화국’인 셈이다.

역사적으로 로마공화정 이래 시민이, 민중이 공화국의 주인이 되기는 어려웠다. 오로지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체제를 정당화하려고 ‘공화국(Republic)’이란 말을 오용하고 남용했을 뿐이다. 결국 한국처럼 재벌 같은 경제권력이 정치권력까지 지배하는 파국에 이르렀다. 돈 많은 부자들이 정치를 반영구적으로 독과점하는 야수 자본주의, 천민자본주의가 활개를 치고 있다.

 

스위스의 시장권력은 협동조합

스위스는 시장권력을 협동조합이 장악하고 있다. ‘스위스 역사상 2번째로 중요한 인물’은 그 이름도 생소한 고틀리프 두트바일러(Gottlieb Duttweiler)이다. 바로 스위스 최대 소비자협동조합 ‘미그로(MIGROS)’의 창업자이다. 협동조합을 통해 스위스 국민들에게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을 선사함으로써 협동하며 함께 사는 삶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심어준 공이 크다는 평가다. 1위는 과학자 아인슈타인.

두트바일러는 1925년 취리히에서 ‘미그로’를 창업했다. 커피, 설탕, 파스타, 비누 등 생활소비재류를 트럭에 싣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파는 ‘보따리장사’였다. 도매와 소매의 중간이라는 뜻의 ‘미그로(Migros)’라는 상호대로 중간 유통 마진을 줄여 싸게 물건을 팔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마침내 1941년 개인 사업자인 ‘미그로’를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스위스 국민들에게 개인의 사기업을 공유, 기부한 셈이다.

2016년 현재 매장이 600여 곳, 조합원이 2백만 명, 직원은 10만 명, 연간 매출액은 30조 원이 넘으며 스위스 최고, 최대의 기업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조합원이 선출한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해 공동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조합원 중심의 민주적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10스위스프랑(약 12,000원)을 내면 지역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가입, 지역협동조합의 의사 결정 과정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지역사회에 기여한다는 기업철학과 경영원칙으로 연간 1억 스위스프랑(약 1,200억원) 이상을 ‘미그로 클럽 스쿨’등 교육∙문화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술, 담배, 성인잡지는 팔지 않는다.

 

▲ 스위스 국민들에게 ‘함께 먹고 사는’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을 선물한 ‘ Migros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사진=정기석]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스웨덴 재벌

사회민주주의의 나라, 사회복지의 천국, 스웨덴도 ‘재벌공화국’이다.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이 스웨덴 최대기업으로서 5대째 스웨덴 경제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점유하고 산하 기업의 시가총액이 스웨덴 증시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다. 그런데 발렌베리 재벌은 한국의 재벌과 다르게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는 물론 존경까지 받고 있다고 한다.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무’ 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 발렌베리 그룹은 지난 160여 년 동안 ‘이윤 추구’와 ‘사회적 책무’를 동시에 충실히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발렌베리 그룹의 역사는 1856년에 시작된다. 창업주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가 스웨덴 최초의 민간은행 스톡홀름·스킬다 은행을 창업한 것이다. 19세기 후반 스웨덴 경제의 부흥기를 타고 큰돈을 모아 기업 인수합병에 나섰고 오늘날 에릭슨, 사브, ABB, 일렉트로룩스 등 각 분야 세계 최고수준의 기업을 거느리는 초우량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후계구도를 정하는 것부터 한국의 재벌과는 차원과 품격이 달랐다. 첫 번째 후계자는 혼외 자식이었다. 21명의 자식들이 있었음에도 크누트 아가손 발렌베리를 자신의 유지를 받들 적임자로 낙점했다. 2대 오너 크누트 역시 3대 후계자로 자신의 아들이 아닌 조카인 야콥 발렌베리와 마커스 발렌베리 주니어를 선택했다. 역시 판단기준은 발렌베리 그룹을 존경받는 기업을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오늘날 5대 째 변함없이 고수하고 있는 발렌베리 그룹의 경쟁력이나 진정성은 수익성이나 시장지배력이 아니라, 바로 사회적 책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원천이다.

산하 기업들의 시가총액이 스웨덴 증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지만 이들 가문은 불과 몇 백억 원대의 주식과 재산을 소유하고 있을 뿐이다. 회사의 수익이 모두 재단으로 들어가는 공익지향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기업으로 창출, 축적한 부를 재단을 통한 기부와 자선활동에 거의 사용하고 있다. 15개에 달하는 공익재단에서 그룹의 지주회사인 인베스트로의 지분을 과점하고 있다.

그룹 산하 기업들은 철저한 독립경영 원칙을 지키고 있다. 산하 기업들의 소유권은 그룹에 있지만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맡아 하고 있다. 스웨덴 대표 은행 SEB, 엔지니어링 업체 ABB, 제약업체 아스트로제네카, 통신업체 에릭슨, 가전업체 일렉트로룩스 등 세계 굴지의 기업들은 어김없이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된다. 거기에 이사회는 사외이사 위주로 구성하고 있다. 심지어 최고경영자도 이사회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이처럼 스웨덴 발렌베리 그룹은 재벌 오너가 독단, 전횡, 축재를 저지를 수 없는 소유와 지배시스템이다. 그리고 분식회계 등 불법경영의 유혹과 위험이 원천적으로 발생할 수 없는 구조다. 자본이 권력을 탈취하거나 남용할 수 없도록 제도화, 법제화되어 있다. 혹, 한국의 ‘삼성재벌’은 스위스의 미그로처럼 ‘삼성협동조합’이나, 스웨덴의 발렌베리처럼 ‘삼성공익재단’으로 환골탈태할 생각은 없는가? 한국 국민들에게 ‘삼성공화국’을 돌려줄 생각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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