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등 지자체장의 잇따른 성폭력 스캔들 퇴치법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천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갑작스런 실종과 주검의 확인, 그 사이 여비서로부터 고소됐다는 사실이 전해지고 이후 장례식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사회적 논란을 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과 1995년 서울대 신 모 교수의 조교 성희롱 사건 등 성적으로 핍박받는 여성의 편에 서서 집요하게 싸웠던 ‘인권변호사 박원순’이 수십 년 후 정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날 줄이야. 인간의 모순성을 이렇게 극적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 충격도 잠시, 현실은 현실이었다. 인권변호사와 시민단체 조직자, 활동가 그리고 현재는 1천만 시민의 봉사자인 서울시장으로서의 모습이 부각되다 보니 추레한 현실과의 충돌에서 나오는 파열음은 클 수밖에 없었다. ‘성희롱 가해자’로서의 박원순의 모습을 그와 오랜 세월 고락을 같이 해온 사람들은 인정할 수 없었을 게다. 전 여비서로부터 성폭력 혐의로 피소된 다음날 박원순이 사망한 뒤, 민주당은 줄곧 침묵을 지켰다. 여성단체들과 변호인들이 기자회견을 열기까지 나흘이 지나도록 공식 사과나 책임을 인정하는 입장도 나오지 않았다. 파장의 폭과 깊이를 감안한다 해도 공당으로서 올바른 처신으로 볼 수는 없다. 게다가 민주당은 이미 2018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불과 석 달 전인 지난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폭력 사건에 따른 연이은 낙마와 그로 인한 행정 공백 사태에 책임이 있는 정당이다.

▲ 최용익 전 MBC논설위원

이것은 특히 이전에 미래통합당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에서 성폭력 의혹이 터질 때마다 공당으로서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해왔던 것과 대비되는 태도다. 큰 것만 봐도 2014년의 박희태 새누리당 상임고문(전 국회의장)과 2013년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같은 해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 2006년 최연희 새누리당 의원의 기자 성추행 사건 등에 대해서 민주당은 ‘당 차원의 사과’와 ‘책임 있는 대책’을 촉구했었다. 그 때와 대조적으로 민주당은 이번의 경우, 진상을 조사해달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고소인의 외침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그렇기는커녕 지난 10일 오전, 장례식장 조문 자리에서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박 시장의 성폭력 의혹에 대한 당 차원의 대응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이 나오자 “그건 예의가 아니다”라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해찬은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기자에게 “후레자식”이라고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퍼붓고는 한동안 노려보다 자리를 떴다. 176석의 거대 집권여당 대표가 자신의 공적인 위치와 개인적 추모의 마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공인으로서 질문을 던진 기자에게 쌍욕으로 화풀이를 한 것이다. 이해찬은 지난 5월, 민주당 21대 국회의원 당선인 워크숍에서 후배 국회의원들에게 “선공후사, 선당후사하는 자세와 공인의 마인드(퍼블릭 마인드)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평소 자신의 분노를 잘 다스리지 못해 얻은 별명인 ‘버럭‘ 성질을 드러낸 것이다.

사과도 없고 입장표명도 없이 민주당이 표류하던 나흘간, 시민들의 분열과 갈등은 가속화됐다. 서울시 광장에서 지지층을 중심으로 추모 행렬이 이어진 반면, 다른 한편 “성추행 의혹은 수사도 못하게 됐는데 박 시장 장례를 서울특별시 기관장(葬)의 5일장으로 치르는 게 맞냐”고 항의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나흘 만에 무려 57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고소인에 대한 무분별한 신상 털기 등 2차 가해가 횡행했다. 심지어 ‘이순신 장군도 관노와 잠을 잤다’며 박원순을 이순신에, 피해자를 관노에 비유하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박원순의 발인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13일 오후, 성희롱 피해자인 고소인의 피해 사실을 공개하고 경찰과 서울시, 국회 등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미경 소장의 발표는 사태의 핵심을 통렬하게 찔렀다. “이 사건은 고소와 동시에 피고소인에게 수사상황이 전달됐다”며 “서울시장의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증거인멸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을 목도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피고소인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피해자는 온·오프라인에서 2차 피해를 겪는 등 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라고 전 서울시장 박원순과 피해자 사이의 비대칭적인 힘의 우열관계를 꼬집었다.

또 “피해자는 서울시 내부에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시장의 단순 실수로 받아들이라고 했으며, 비서의 업무를 시장의 심기를 보좌하는 역할로 일컫거나 피해를 사소화하는 등의 반응이 이어져 더 이상 피해가 있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피해자는 부서변경을 요청했으나 시장이 이를 승인하지 않는 한 불가능했다”고 고소인의 절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김혜정 부소장을 통해 낭독된 피해자의 심정은 애절했다. “저는 그때 소리질렀어야 하고 울부짖었어야 하고 신고했어야 마땅했다”고 자책했다. 이어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고 약한 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다. 안전한 법정에서 그분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지르고 싶었다. 법치 국가 대한민국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다”고도 했다.

피해자는 또 “용기를 내어 고소장 접수하고 조사 받은 날, 저의 존엄성을 해쳤던 분께서 스스로 내려놓았다. 죽음, 두 글자는 제가 그토록 괴로웠던 순간에도 입에 담지 못한 단어다. ……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지만 저는 사람이다. 살아있는 사람이다. 저와 제 가족의 고통의 일상과 안전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박원순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 황망했던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전개된 상황은 아이러니하나, 해법은 단순하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를 최초로 대리한 변호사가 박원순이다. 그는 특정 가해자 개인을 세울 수 없는 2000년 도쿄의 여성 국제전범 법정에서 대표 검사로 일본군의 위안부 범죄를 기소했고, 제주도지사 성추행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에도 참여했다. 박원순의 정신을 기억한다면, 이번 성추행 사건의 진상 규명과 피해자 보호에 전력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박원순의 지지자들은 지금까지 헌신해왔던 시민운동가로서의 업적이 성추행 문제로 훼손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다. 박원순이 굴하지 않고 맞서 싸웠던 흉포한 압제자들만큼이나, 박원순 또한 자신의 여비서에 대해서는 ‘또 다른 압제자’로 군림했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보다 피해자이자 고소인인 그 여비서가 바로 지금 고통의 한복판에서 처절하게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지 않은가.

안희정과 오거돈에 이어 박원순까지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성추행 사건이 잇달아 일어난 데는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한다. 이들의 범죄는 피해자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지자체장에 의한 범행으로 성폭행 피해가 장기간 지속되었고, 피해 사실을 주변에 알리기 어려웠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지자체장이 해당 지자체에 관한 예산권과 각종 인허가권을 가지고, 전체 공무원의 승진이나 보직에 관하여 인사권을 행사함으로써 ‘자신의 왕국’을 건설했기 때문이다. ‘제왕적 지위’를 누리면서 피해자들에게 오랜 기간 심신상의 피해를 끼치는 동안, 이 ‘제왕’들은 범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죄의식이 점점 더 둔화된 것이다.

차제에 민주당은 환골탈태해야 할 것이다. 미래통합당의 전신, 새누리당도 한때 '성누리당'이라는 멸시를 받을 정도로 수많은 성폭력 스캔들을 낳았다. 최근 들어 잇따른 성폭력 사건으로 괴물집단화하고 있는 민주당은 과거 새누리당처럼, 어쩌면 그보다 더 권력이 커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180석에 가까운,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큰 거대정당이 되지 않았는가. 이 권력은 양날의 칼이다. 민주당이 처음으로 누려보는 거대권력을 제대로 견제,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지 못할 경우 부메랑이 되어 자기 조직을 망가뜨릴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하다.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