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평운동의 선도자 백촌 강상호. 저자 조규태, 출판사 펄북스

“형평운동의 아버지 강상호, 그의 전기가 나온 것 자체가 가슴 벅찬 기쁨이요, 감동이다”

언젠가는 나와야 할, 아니 진작 나왔어야 했던 책이 발간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손에 쥔 책은 「형평운동의 선도자 백촌 강상호」였다. 저자는 오랫동안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이사로 활동해 온 조규태 교수이다. 지역의 역사와 인물에 관해 쓴 책을 지역 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내놓은 뜻이 아름답다.

거대자본이 외면하는 작은 자리를 주목하고 결기 있는 글들의 가치를 지키고 일구는 지역의 출판사는 적자를 감내하고, 저자는 인세 수입 전액을 형평운동기념사업회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더욱이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을 지낸 김장하 선생의 추천사가 있어 이 책의 소중함을 더해 준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쓰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자료의 부족이었다고 밝혔다. 백촌 강상호 선생이나 형평운동에 직접 관여한 분들이 쓴 글이나, 형평사에서 직접 기록해 둔 글을 한 편도 찾지 못했다고 토로하였다. 사실 형평운동 관련 자료는 당시에 발간된 신문 기사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자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기존의 연구 성과와 강상호 선생의 후손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 일제강점기 신문 기사들을 추려내고 정리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자료를 한곳에 모아 읽기 쉬운 문장으로 강상호 전기를 완성했다는 점에 우선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지금까지 강상호의 삶에 대한 기록은 신문 칼럼이나 단행본 속 소주제의 하나로 소개되는 짧은 글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형평운동 이후 강상호 만년의 삶에 대해 다룬 글이나 책은 거의 없었다. 이 책은 강상호가 형평운동을 그만둔 뒤의 삶을 ‘일제강점기 후반, 광복 직후와 한국전쟁 전후, 만년의 삶, 투병과 임종, 그리고 장례’로 나누어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물론 강상호의 자제인 강인수 씨가 쓴《은총의 여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잘 정리된 정식 출판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처음이다.

개인적으로는 자기보다 낮은 사람들을 위해 전 재산을 쏟아 헌신한 강상호의 노년에 축산기업조합원(구 형평사원)들이 재정 지원으로 도움을 준 사실과 선생의 장례식장에서 구 형평사 사원 이복수가 한 추도사는 감동 그 자체였다.

“당신께서는 미국의 흑인노예정책 제도를 반대하고 전 흑인종을 해방해 백인과 동등권을 부여하며 세계 인류사상에 불멸의 금자탑을 세운 저 영웅 고 링컨 대통령과도 못지않습니다.”

-1957년 11월 16일 구 형평사 사원 이복수의 추도사 중에서-

 

“새로운 관점과 해석으로 강상호의 삶을 드러내다.”

▲ 신진균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

저자는 강상호의 아호인 백촌(栢村)에 대한 재미있는 해석을 내놓았다. 원래 백촌은 ‘잣나무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세상이 늘 푸른 기상이 넘치는 넉넉한 마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강 선생이 아호로 삼았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저자는 백촌의 ‘백’은 ‘백정(白丁)’의 ‘백’과 음이 같고, ‘백촌’은 ‘백정과 더불어 사는 마을’이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참으로 재미있으면서도 강상호의 삶을 그대로 드러내는 해석이다.

형평운동이 왜 진주에서 일어났을까? 학계에서는 형평사가 조직된 시대적 상황뿐만 아니라 진주지역의 사회적・문화적 배경에 주목하면서 다양한 요인을 제시한다. 이학찬(백정) 자제의 공립보통학교 입학거부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는 설, 일본의 특수부락민 ‘에타’의 신분 해방 운동인 수평사 운동에 영향을 받았다는 설, 1920년대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노동・농민・여성 운동 등 사회운동이 활성화되었던 것이 큰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설, 일제의 경제적 침탈로 백정의 전통적인 산업기반 붕괴 때문이라는 설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형평운동의 선도자 강상호가 형평운동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서 이른바 이학찬 불만설 이외에는 별다른 설명이 없었다. 즉, 백정 이학찬이 자제의 공립학교 입학 거부를 강상호, 신현수, 천석구 등에게 호소하였고, 그들의 찬동을 얻어 형평사가 창립되었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강상호가 형평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심하게 된 직접적인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아인 박종한의 증언을 토대로 백정 청년이 개를 잡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양반 청년들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전해 듣고 큰 충격을 받은 강상호가 형평운동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그동안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이다. 강상호는 3.1운동으로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가출옥하면서 심한 고문으로 옥사한 권채근 동지의 시신을 달구지로 대구에서 진주까지 운구해 왔고, 진주에 도착하자마자 이 사건을 듣게 된 것이다. 강상호의 성정과 인격으로 보아 이 소식은 나라 잃은 설움과 함께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 증언은 형평운동의 창립이라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것을 주도해간 인물이 역사적 개인으로 등장하게 되는 계기를 보여주는 것이며, 객관적인 승인 여부를 떠나 사료와 사료의 간극을 좁혀주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또한 저자는 스토리텔링 기법을 통해 강상호의 인간적 고뇌를 드러내 보였다. 그동안 형평운동을 선도해간 강상호에 대해 아버지 강재순의 입장이 어떠했는지 알 수 없었다. 평자의 관심과 능력 덕분인지 이 책은 아버지 강재순이 강상호의 형평운동을 반대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해주었다. 명확한 자료가 없지만, 저자는 자신의 추론을 바탕으로 강상호가 아버지의 반대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재구성하였다.

저자는 강상호가 형평운동이 항일운동과 이어질 수 있다며 “의병들이 왜적에 맞서 이긴 것처럼, 이 시대에도 왜적과 맞서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 백정도 일반인들과 같이 교육을 받아 지식수준이 향상되어야 한다”라고 아버지를 설득했을 것으로 추론하였다.

 

“형평운동과 강상호 연구의 선도자 역할을 기대하며”

지역을 터로 삼고 살아온 저자가 자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인물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과 열정으로 지역 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내놓은 이 책은 진주의 빛이다. ‘형평운동의 선도자 백촌 강상호’라는 제목처럼, 이 책은 형평운동과 강상호 연구의 선도자 역할을 할 것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만년은 순탄치 않았다. 상당수의 독립운동가들이 조국의 해방을 위해 목숨 바쳐 일제와 싸웠지만 정작 해방된 조국에서 이중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친일의 굴레가, 해방 이후에는 빨갱이라는 굴레가 그들을 옥죄었다. 그러한 굴레는 후손들에게도 대물림되었다. 형평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강상호도 이를 피해가지 못했다. 백촌의 아들 강인수씨는 ‘애국지사의 유족[아들]의 일언’에서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내 아버지가 국채보상운동, 민족교육, 독립운동, 형평운동을 했기 때문에 양반들부터 받은 증오, 일제로부터 받은 옥고와 탄압, 광복 후 이른바 건국지사로 성공한 친일파 실세들로부터 받은 의도적인 마타도어와 폭력, 그것으로 유족의 천대받은 삶, 무서운 가난, 진학포기, 어깨너머로만 보아야 했던 소외감과 열등의식 등은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역사의 질곡 속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독립운동가로 살았던 강상호에게 이러한 굴레는 어쩌면 필연이요,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해방공간에서 반민특위가 실패하면서 그것은 팩트의 문제가 아니라 이념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이 문제는 한반도의 분단 모순이 온전히 극복되는 통일이 오면 자연스럽게 해소되겠지만, 우리가 지금의 시점에서 특정 인물을 평가하는 기준이나 관점을 세심하게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

어떤 인물의 전기를 쓸 때도 주인공의 삶 전체를 오롯이 드러냄으로써 ‘공’과 ‘과’를 동시에 평가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강상호라는 인물의 삶 전체를 톺아볼 수 있는 유일하면서 최초의 저서이다. 추천사에서 김장하 선생이 ‘형평운동은 오늘날의 평등사회를 이루어가는 신호등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듯이, 이 책은 강상호뿐만 아니라 장지필, 신현수 연구로 후학들을 이끌어주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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