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법조, 신성 말고 인격

한국의 법조계는 난공불락의 철옹성이다. 사실상 법치의 사각지대, 국가 안의 치외법권 지대다. 그런 ‘그들만의 법조공화국’에서 기강과 질서를 틀어쥔 권력의 정점은 단연 ‘법관’이다. ‘분쟁 또는 이해의 대립을 법률적으로 해결·조정하는 판단을 내리는 권한을 가진 자’라는 막강한 권세를 누린다.

법관은 고위직 공무원으로서 특별한 혜택을 향유하는 고귀한 신분이다. 그 직권행사에 있어서 누구로부터도 지휘나 명령을 받지 않는다. 오직 양심을 좇아 헌법과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한다. 탄핵이나 형벌에 의하지 않고는 파면되지 않는다. 사법권의 독립을 수호하려면 법관의 신분이 그만큼 보장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마치 전지전능, 완전무결해야 하는 신이나 황제, 왕처럼 무소불위의 권능이 주어진 듯하다.

헌법 제65조는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행정각부의 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감사원장, 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발의하고,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새 국회에서는 집권여당 단독으로도 사법농단 법관 탄핵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집권여당의 사법개혁 의지와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정기석 마을연구소 소장

평소 법관 면책특권 남용의 부당성과 폐해를 비판해온 배금자 변호사는 “인혁당 사건 때 오판으로 사람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경우에도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진 국가배상은 있었지만 법관들은 개인배상 책임을 진 적이 없다”면서 “이는 판사의 사법적 권한 행사와 관련해 민사상 면책특권을 인정하는 영미법 판례를 따른 것으로 ‘왕은 잘못을 하지 않는다’는 구시대 보통법(common law)의 전통을 사법부의 독립과 사법권한을 행사하는 판사를 보호하는 장치로 차용한 것”이라고 개탄한다.

또 “한국 법조에서는 시대착오적으로 구시대 유물인 왕과 국가, 교황이 누리던 무오류성의 특권을 법관이 누리고 있는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불법적이고 터무니없는 판결을 한 판사들에 대해 배상책임이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혹, 한국의 법관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왕이나 독재자’인가?

 

한국 검찰은 ‘그들만의 검찰공화국 국민’

‘헬조선’으로 불리는 오늘날 한국은 ‘검찰공화국’으로도 불린다. 한낱 한줌에 불과한 검찰집단이 권력을 오남용하는 상황을 국민들이 조롱하는 말이다. 검찰이 기소권과 수사권을 독점해온 기형적이고 파행적인 법조의 구조악 때문이다. 형 집행권까지 검찰이라는 한 기관에서 모두 움켜쥐고 있다. 이런 검찰권력 과잉 국가는 전 세계에서 한국 말고는 없다.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사, 형집행은 교정기관에서 분담하는 게 민주적이고 합리적이며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기소독점주의가 만병의 원인일 것이다. 수사전문가가 아닌 검사가 수사단계에서부터 경찰관리를 지휘감독하는 것부터 잘못이다. 경찰에서 피의자를 검찰에 송치하면 오로지 검사의 재량으로 기소여부를 혼자 판단한다. 이 과정에서 돈과 힘이 있는 피의자는 유능한 변호사가 아니면 검사와 친한 변호사를 선임한다. 잘 하면 불기소 처분을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에 기소를 할지 안 할지가 검사의 손과 그날 기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수사권 독점도 뿌리 깊은 구조적 병폐였다. 수사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사의 형편과 판단에 따라, 구속해야 마땅한 피의자가 불구속되고, 체포영장으로 확보한 범인을 풀어줘야 하는 경우가 다발한다. 민생과 치안이 오로지 검찰에 볼모로 저당 잡혀 있는 꼴이었다. 다행히 최근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이 발효됐으나 검찰은 여전히 반대하며 저항하고 있다. 주요 선진국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적절하게 분산해 권한의 집중을 막아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되는 것을 막는 것은 ‘글로벌 스탠다드’이다.

 

▲ <사진> 독일 프랑크푸르트 뢰머광장의 ‘정의의 여신(Justitia)’

로스쿨과 공수처는 ‘사시오패스’의 백신인가?

이 같은 법조의 문제, 법조인의 문제는 곧 ‘고시족’을 양산하는 사법고시제도에 바로 닿아있었다. 그래서 로스쿨제도가 사시제도의 대안으로 마련된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나게 하고, 흙수저들의 신분상승을 돕는다는 신묘한 효력의 ‘사시 열풍’은 국력의 낭비요인과 폐단이 적지 않았다. 사시에 목을 매단 대학의 법학부는 법학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신림동의 고시학원과 다를 바 없었다. 그저 암기력과 지구력과 출세욕과 권력욕이 상대적으로 우월한 이기적인 학생들이 사시를 목표로 법대에 전 생애를 걸었다.

결국 법학과나 법과대학에서는 인간과 진리와 세상의 속성과 이치를 배워보거나 깨달은 적이 없는 ‘암기왕과 수험 기계’들만 집단적 사육, 획일적으로 양산되었다. 사법시험이라는 인생로또에 당첨된 그들은 인간의 생명과 자유를 좌우하는 법관과, 기소를 독점하는 검찰로 속속 변신했다. 그리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잘못을 해도 책임을 지지 않는 왕이나 신처럼 행세하기 시작했다. 무식해서 부끄러움도 없이 용감할 수 있었고,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조차 모르는 무례하고 위험한 일부 개인들, 일명 ‘사시오패스(사법시험+소시오패스)’들이 마치 국가인양, 정부인양 세상을 명령하고 심판하기 시작했다..

조국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대중적으로 가장 잘 먹히고 가장 많이 유포돼 있는 비판은 로스쿨은 ‘음서제’이기에 (사법시험을 폐지하면) ‘계층상승의 사다리’가 사라진다고 하는데, 이는 실제 사실과 전혀 무관한 공격”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특히 “로스쿨은 ‘법률귀족’들에 의하여 구박과 설움을 겪어야 했던 ‘고졸 법률가’ 노무현 대통령이 결단한 사법개혁의 일환”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로스쿨제도는 고시제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법조의 문제, 법조인의 한계를 예방하고 치유하는 백신과 치료제가 될 수 있는가? 그렇다고 단언하기에 한국 법조의 적폐는 너무 깊고 크고 검다. 7월 출범예정인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일말의 기대는 걸어본다. 잘못 하면 그저 법대로 처벌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러나 그다지도 점잖은 사후약방문 정도로 과연 한국의 사법개혁이 가능할까? 한국의 특수계급, 법조를 바라보는 국민의 걱정과 우려는 여전히 상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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