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도시 진주’를 다시 생각한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신수열 역, 사월의책 2018)를 지은 이반 일리치(오스트리아 출신 신학자·철학자. 1926-2002)는 시, 도서관, 자전거가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전거를 자동차의 폐해, 즉 생태·환경오염과 속도 지상주의, 그리고 운전자의 공격성을 극복하고 사람의 건강을 회복하는 아름다운 이동수단이라고 보았다. 그렇다. 자전거는 참 ‘아름다운 이동수단’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진주를 자전거도시라고 부르고 있으니, 진주는 이 아름다운 이동수단과 꽤 친숙한 도시라는 뜻이리라. 자전거도시란 많은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는 도시를 두고 하는 말일 터이다. 많은 시민들이 자전거를 탄다는 말은 자전거와 생활이 밀착돼 있다는 말과도 통해야 한다. 많은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과연 얼마나 그런가?

▲ 이영균 녹색당원

남강을 따라 양쪽에 제법 긴 자전거도로가 있다. 진양호 아래서 집현 덕오마을까지, 종합경기장에서부터 희망교까지 달릴 수 있는 자전거전용도로가 있다. 쉬엄쉬엄 달리면 두세 시간은 넉넉히 보낼 수 있다. 하루 운동량으로 그리 모자람이 없는 거리이다. 경전선 폐선로에도 자전거도로가 있으니 그 거리 또한 상당하다.

진주시 누리집에서 확인한 자전거도로는 남강순환 코스 17.6Km, 용호정원 코스 19Km, 강주연못 코스 22Km, 청곡사 코스 18Km, 진양호 코스 41.4Km로 모두 118Km나 된다. 게다가 시민 자전거 안전교육장 운영, 자전거 무료보험 가입, 무료대여소 운영 등은 자전거도시라는 이름에 걸맞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런데 시내로 들어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보도블럭 색깔을 달리하여 자전거도로라고 만들어 놓았지만 끊어져 있는 데도 많고 일관성도 찾기 어렵다. 어떤 구간에는 자전거도로와 차도를 구분하는 낮은 차단벽을 두어 자전거의 안전을 확보하고 있는 곳도 있지만 그 거리는 그리 길지 않다.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달리다 보면 수시로 턱을 만나게 된다. 불편도 하지만 안전하지 않은 게 더 큰 문제다. 횡단보도 옆으로 자전거도로를 표시해놓은 데보다 그런 표시가 없는 데가 더 많다. 이래서 생활 속 자전거 타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이처럼 현재 진주에는 여가를 위한 자전거도로에 비해 생활 속 자전거도로가 턱없이 모자란다. 자전거도시라는 이름을 반만 채우고 있는 모양새다. 여가를 위한 자전거도로가 길어진다고 해서 자전거도시가 되는 건 아니다. 명실상부한 자전거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생활 속 자전거도로가 우선돼야 하고, 지금보다 더 확충돼야 한다. 그럼에도 희망교에서 진양호까지 자전거도로를 놓겠다면서 110억 원이나 되는 예산을 잡아놓은 모양이다.

생활 속 자전거도로가 더 필요한 이유는 한둘이 아니다. 2015년에 진주시에서 ‘자전거이용 활성화를 위한 도로 다이어트 시민공청회’를 개최한 바 있다. 거기서 나온 ‘도로 다이어트’라는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시민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생활 속 자전거로 갈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하는 듯해 기대가 컸다.

2016년 2차 공청회에서 시장은 “산업화 이후 자동차 위주의 교통체계를 사람위주의 교통체계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구조의 개선과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시민의 복리증진과 건강한 생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란다”는 인사말을 했다고 지역신문에 나와 있다.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었고,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사람 위주의 교통체계’를 도입함으로써 ‘복리증진과 건강한 생활’을 이루려면 시민들의 참여가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 다음이 안 보인다. 유야무야되고 만 것이 아닌가 싶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밖으로는 도로 다이어트를 이야기하면서 안에서는 강변 자전거 전용도로에 마음을 더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없지 않다.)

본보기로 삼을 만한, 명실상부한 자전거도시를 책에서 만났다. 2007년 국제사이클연맹에서 자전거도시 1호로 선정한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이다. <마지막 비상구-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대전환>(제정임 엮음, 오월의봄 2019)에는 ‘자전거를 타는 ‘날씬이’와 ‘튼튼이’의 나라’(박진홍)라는 글(364-373쪽)이 있는데, 코펜하겐의 자전거를 소개하고 있다.

자전거가 대중 교통수단에서 자동차에 밀리게 된 것은 1950년대 후반부터였다. 그런데 1970년대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다시 자전거를 타게 된다. 거기에는 단순히 이동하는 문제만 고려한 게 아니었다. ‘에너지 안보’의 필요성이 크게 작용했다. 전력은 재생에너지(풍력, 태양광 등)로 대체하고 자동차 줄이기 운동을 전개한다. ‘차 없는 일요일’ 제도를 만들고, 시민들은 ‘자동차 없는 도시를 만들자’면서 거리 시위를 한다. 1982년에는 시민들이 시청광장에서 자동차를 부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시민들의 이러한 움직임에 정부와 지자체는 제도와 행정으로 친자전거 정책을 펼친다. 자동차 보유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키고 자전거에 대한 획기적인 지원책으로 화답했다. 그 결과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코펜하겐 중심부 자전거와 자동차 통행량을 조사한 결과가 그것이다. 하루 평균 통행량이 1970년에는 자전거 10만 대, 자동차 34만 대였는데 2016년 자전거 26만 대인 반면 자동차는 25만 대로 나타났다.

이렇게 된 것은 자전거 신호등, 자전거고속도로, 멈췄을 때 한 발을 올리고 기다릴 수 있는 발판 등으로 자전거 타기로 인한 불편을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사진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모양을 갖춘 자전거도 많다. 출근, 통학, 운송수단으로 자전거가 차지하는 비중은 41%, 버스나 기차 등 대중교통이 27%, 자가용 26%, 도보 6%이다. 명실상부한 자전거도시 코펜하겐이다.

진주라고 하면 교육, 역사, 문화예술뿐만이 아니라 ‘자전거’를 연상하게 하는 자전거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전거는 친환경 교통수단이다.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차지하는 공간이 자동차와 비교가 안 된다. 무엇보다도 건강한 교통수단이다. 자동차가 소모하는 화석연료, 그로 인한 한경오염으로 멍든 지구와 거기에 살고 있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자동차를 멀리 하고 자전거를 가까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제도와 여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등하교에 이용하는 자전거, 직장인들이 출퇴근에 이용하는 자전거, 시장을 보러 가거나 소소한 용무를 볼 때 타는 자전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진주 시내 중심부는 경사가 급한 도로가 없는, 자전거 타기에 딱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생활 속에서 자전거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까닭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대한민국이다. ‘에너지 안보’는 ‘식량 안보’와 함께 생존과 직결된 것이다. 언제까지 지금처럼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수입해서 쓰는 에너지를 절약하는 길은 자전거에 있다. 생태계를 훼손하는, 여가를 위한 자전거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일상과 함께하는, 명실상부한 자전거도시 진주가 되기를 바란다.

자전거를 타고 교육, 역사, 문화예술의 현장을 누빌 수 있는 도시로 만들면 ‘자전거관광도시 진주’라고 불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자전거 교통분담률을 상당한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그 시작은 생활 속 자전거도로를 확충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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