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대 문 모씨는 얼마 전 양조장에 들러 증류주 한 항아리를 샀다. 적지 않은 양에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지만 일 년에 한 번 약간의 보관료를 내면 기한에 상관없이 양조장에 보관을 해주고 언제든 내 술을 보러 와도 된다는 말에 마음이 끌렸다. 양조장에서는 보관뿐만 아니라 구매자가 필요할 때 원하는 만큼 병입(술을 병에 넣음)과 라벨링을 직접 해서 내 술을 만들어 준다는 데 더 특별함을 느꼈다.

딸아이의 결혼 때는 결혼을 축하하며 딸과 사위의 이름을 라벨에 적어 축하를 건네고 아들이 성년이 되는 날에 부자가 마주 앉아 마실 술병을 기대하며 마음이 몽글하게 부풀어 올랐다. 주류샵이나 마트에서 흔하게 살 수 있는 평범한 술이 아니라 제조 과정에 구매자가 직접 참여해 양조체험을 하고, 원할 경우 술의 종류를 골라 항아리 째 구매해 두고두고 보관해 준다는 양조장의 시스템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 백승대 450 대표

또 다른 사십대의 임 모씨는 이번 주말에 딸 둘과 아내까지 네 식구가 양조장으로 캠핑을 간다. 지난번 항아리 째 사놓고 숙성 중인 내 항아리의 술맛이 어떻게 변했을지도 궁금하고 바비큐용 음식만 간단히 가져가면 양조장에 캠핑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어 캠핑장보다 훨씬 저렴하게 숙박을 할 수 있다. 양조장이 공기 좋고 물 좋은 산속에 있기에 따로 펜션이나 캠핑장을 찾지 않아도 양조장에서 다 해결이 된다.

양조장 옆 계곡에선 아이들과 고둥이나 물고기를 잡고 양조장에 딸린 텃밭에는 각종 나물과 쌈채소들이 자라고 있어 직접 따서 바로 먹을 수도 있다. 양조장 둘레로는 온갖 유실수들이 열매를 맺고 있어 계절의 변화에 따라 과일을 따 먹으며 아이들에게 나무 이름을 설명해 주는 것도 양조장을 찾는 즐거움 중의 하나다. 식사준비를 마치고 양조장 보관창고에 들러 내 술 항아리가 잘 있는지 확인을 하고 바비큐에 곁들일 술을 한 주전자 따라 나온다.

호기심에 양조장에 회원 등록을 하고 술을 항아리 째 구매했는데 그 이후로 매년 양조장을 우리 가족의 별장처럼 계절마다 저렴하게 이용하고 있다. 휴가철엔 부모님과 친구들을 데려와 내 술을 맛보여 주며 은근한 자랑도 한다. ‘나 양조장 회원인 사람이야’ 라고.

무슨 소설 같은 얘기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맞다. 모두 내 머리 속에 있는 얘기고 수년 내에 내가 만들 양조장의 모습이다. 양조장이 단순히 제조, 판매에만 몰두해서는 시장진입이나 안착이 아주 힘들다. 양조체험과 더불어 외국처럼 오크나 배럴, 캐스크 단위로 원액을 판매해야 충성도 높은 미래의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술을 항아리 째 대량 판매하고 원액을 고객이 원할 때 언제든 병입할 수 있게 하고 연 단위의 보관료를 받아 회원들(구매자)의 소속감을 높인다.

양조장은 일년 내내 방문과 체험이 가능하고 캠핑과 숙박이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어 고객의 재방문을 유도해야 한다. 점잔 떨고 겉멋 든 양조장이 아니라 언제든 편하게 찾아가 내 술도 꺼내 마시고 숲속에서 쉬다 올 수 있는 복합적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 양조장에 이런 유료회원이 수백 명이라고 상상해 보면 연간 방문자수와 그 부가가치에 대해 대충 이해가 될 것이다.

이십 년을 바텐더로 살며 만사 무기력한 알코올 중독자인 내가 생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유일한 목표가 오십이 되기 전에 위와 같은 양조장을 운영하며 술 창고지기로 ‘자연인 코스프레’하며 사는 것이다. 체험장이나 체험마을, 팜파티를 하는 농어민들이 고민해야할 지점이 내 양조장 계획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융합과 복합, 융복합을 입에 달고 살지만 단순하고 오래된 운영체계, 공무원 도움받기, 남 따라하기로는 융복합과 멀티의 개념을 알 수가 없다.

이런 걸 칼럼에 막 써도 되냐고? 어차피 세상에 유일한 내 것은 없고 내가 먼저 안 하면 나보다 추진력 있는 놈이 먼저 하게 되어 있는 게 세상 이치 아닌가. 누구라도 내 머릿속 공상에 도움을 얻었다면 그걸로 됐다.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