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재 교남문헌연구원 대표연구원, 강연회서 진주시 비거 사업 추진 정면 비판

▲ 김익재 교남문헌연구원 대표연구원(박사)이 20일 저녁 진주문화연구소에서 비거 관련 강연을 하고 있다.

[단디뉴스=김순종 기자] “비거는 실체가 없다는 게 고문헌 해석 결과이다. 비거가 임진년(1592) 진주의 하늘을 날았다는 것은 월남전 때 스키부대에 복무했다는 이야기에 다름 없는 허구다. 비거가 실재했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과 공개적 장소에서 끝장토론을 하고 싶다” 지난 20일 진주역사시민모임이 주최한 행사에서 교남문헌연구원 김익재 대표연구원(박사)은 이같이 말했다.

비거가 임진년 진주의 하늘을 날았다는 것은 무더운 베트남에서 월남전 때 스키부대에 복무했다는 것과 다름없는 허구라는 것. 그는 이날 진주시 시정소식지인 ‘촉석루’에 실린 비거 관련 기사를 일일이 언급하며 반박하고, 비거는 역사적 실체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특히 “비거관련 고문헌 해석본을 비차발전위원회(진주시) 측에 주면서 실체 없는 이야기라 했음에도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923년 권덕규가 펴낸 ‘조선어문경위’ 이전에는 비거가 임진년에 진주의 하늘을 날았다는 기록이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관련 문헌에 비추어 보면 이같은 기록이 남은 것은 “1923년 안창남의 모국방문비행으로 민족적 자존심이 고양됐고, 이에 따라 비거 발명사실을 수록해 한국인의 자존심을 높이려던 의도 때문”이라고 밝혔다. 안창남은 한국 최초의 비행사로, 식민치하의 우리나라 시민들에게 큰 기쁨을 안긴 바 있다.

그는 비거를 입증하는 문헌이라며 진주시가 내세우는 신경준의 ‘여암유고(거제책)’에도 비거가 ‘진주’에서 ‘날았다’는 내용은 없다고 설명했다. 여암유고에는 ‘홍무연간에 왜구가 영남 고을을 포위했는데 어떤 은자가 고을 사또에게 이 수레 만드는 법을 가르쳐 성에 올라 풀어놓으니 단숨에 삼십리를 갔다고 하는데..’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연구원은 “어딜 봐도 진주라는 이야기가 없고, 삼십 리를 갔다는 표현뿐 날았다는 이야기는 없다”고 했다.

 

▲ 진주 시정소식지인 '촉석루'에 실린 비거 사진

또한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는 ‘(비거에 대한) 의혹이 부풀려지는 것을 막고자 한다’고 안내하고 있으며, 이것 역시 진주에서 비거가 날았다는 기록은 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왜란 때 진주성주가 도망간 적이 없는데도 문헌은 성주가 성밖으로 날아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를 보면 비거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진주에서 사용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임진년에 왜적이 미친 듯이 날뛸 때 영남의 고립된 성이...(중략)..평소 아주 특이한 재주가 있으면서 성주와 좋은 사이를 유지하던 어떤 사람이 비거를 만들어 성안으로 날아 들어가 그의 벗을 태우고 30리를 날아간 다음..”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김 연구원의 주장처럼, 성주가 피신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진주라는 명칭은 없다.

그는 비거를 만들었다는 군관 정평구가 실존인물이라는 주장에도 의문를 제기했다. 김제에 남았다는 정평구의 무덤은 자손들이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유추하고 있는 것일 뿐 실제 무덤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정평구전을 보면 정평구는 ‘임진왜란’이 아닌 ‘병자호란’때의 인물로 보이며, 그 내용 또한 놀부전처럼 ‘담배주지 않아 보복하기’, ‘다른 남자 사통 부인 혼내기’, ‘청룡황룡 그려진 집 팔기’등 설화에 가깝다고 했다. 그는 정평규에 대한 기존 연구 또한 설화를 해석하는 데 그치고 있다며‘정평구 설화의 세계와 문화적 의미(허정주)’, ‘정평구 전승의 확대 양상(이은숙)’, ‘정평구전의 유형적 특성과 의미(김명선)’ 등 관련 연구를 소개했다.

이 연구원은 강의 말미에 “강의를 준비하면서 사실 힘이 빠졌다. 내가 왜 이런 말을 굳이 해야 되는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거를 역사적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삼촌이 월남 스키부대 출신이라는 말을 하는 친구를 보는 느낌이다. 이런 강의를 하는 것보다는 비거가 실존했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공개적 장소에서 토론하고 싶다”고 전했다.

 

▲ 조규태 경상대 국어교육학과 명예교수가 비거 관련 강연을 하고 있다.

조규태 경상대 국어교육학과 명예교수도 이날 강단에 올라 비거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진주시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비거테마 공원을 만든다고 하는데 시민으로서 황당하다”며 진주시가 비거의 근거로 삼고 있는 여암유고,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은 ▲비거를 만든 사람이 직접 쓴 기록이 아니고 ▲비거를 만든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 들은 기록도 아니며 ▲전해지는 기록도 왜곡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거 형태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고 ▲동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으며 ▲비거 발달과정도 기록된 바 없다고 꼬집었다.

역사진주시민모임 회원들은 이날 진주시의 비거관련 사업 추진에 지속적으로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한편 진주시는 비거 관련 기록이 고문헌에 남아 있다는 점에 근거해 비거 고증은 이미 이루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주시는 올해 1월 1270억원을 투입해 망경동 일원에 비거테마공원을 조성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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