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진주향토시민학교 김민창 교장 “다시 태어나도 야학교사 길 걸을 것”

▲ 김민창 진주향토시민학교 교장.

[단디뉴스=이은상 기자] 진주시 성북동에 있는 진주향토시민학교. 이곳은 1986년 개교 이래 가정형편이 어려워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의 배움터로 자리잡고 있다. 학교라고 부르기에는 작은 교실 규모이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펼치려 이곳에 모인 학생들의 열정은 누구보다 뜨겁다.

<단디뉴스>는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김민창 진주향토시민학교 교장(51)을 만났다. 김 교장은 23년째 야학 교사로서의 삶을 이어가며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그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학업을 중단했던 이들이 뒤늦게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의 목표를 이뤄가는 모습을 지켜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김 교장은 “배움에 목마른 이들에게 등불을 켜주고 싶어 야학교사의 길을 걷게 됐다”고 말했다. 어두운 터널을 걷고 있는 것 같은 상황에 놓인 제자들의 눈빛을 보면 자신의 역할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는 것. 그는 “다시 인생을 살더라도 야학교사의 길을 걷겠다”고 했다. 김 교장은 이곳의 유일한 교사로 모든 과목을 혼자 가르친다.

경상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김 교장은 대학교 1학년이었던 1988년, 친한 선배의 권유로 야학 홍보 전단지를 붙이며 야학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1995년 대학 졸업 후 두 차례 입사시험의 고배를 마신 뒤 폐교위기에 놓인 야학에 잠시 힘을 실어달라는 지인의 권유로 야학 교사를 시작했다.

진주향토시민학교는 만학도, 새터민 등을 대상으로 중·고등학교 검정고시 과정을 교육하고 있다. 경남도교육청에 등록된 평생교육시설이지만, 지방재정법 개정으로 학력 미인가 시설에 보조금 지원이 중단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생들의 후원금, 지역사회 기부금으로 운영되며, 개교 이래 지금껏 3번이나 이사를 해야 할 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 성북동에 있는 진주향토시민학교.

수강생은 현재 28명이다. 오전·오후반으로 나뉘어 중등·고등 검정고시반과 한글반 수업이 진행된다. 코로나19 여파로 두 달간은 현장 수업을 못했다. 김 교장은 두 달간 학습자료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전송하며 수업을 진행했다. 지난주부터는 마스크를 쓴 채 현장수업을 다시 시작했다.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 간 학생은 1200여 명에 달한다. 772명이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대학을 진학해 졸업한 학생은 126명이다. 김 교장은 “대부분의 만학도분들은 인터넷을 활용하기도 어려워 현장에서 공부할 수밖에 없다”며 “서부경남에 야학이 3곳밖에 없어 많은 분들이 사천, 고성, 합천 등에서도 버스를 타고 이곳에 온다”고 말했다.

그는 공부에 지친 학생들에게 “꿈이 있는 한 포기는 없다”고 강조한다. 30대 가정주부부터 60대 만학도까지 뒤늦은 배움에 여념이 없다. 김 교장은 최고령 학생이었던 70대 여제자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체력적 한계를 극복하고, 딸이 교통사고로 쓰러진 상황에서도 묵묵히 공부해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대학과 대학원까지 졸업할 만큼 집념이 대단했다”는 것.

김 교장은 아내의 응원이 야학교사의 길을 걷는데 큰 힘이 됐다고 했다. 그는 “어려운 학교 재정 탓에 교실에서 커튼을 치고 몇 년간 살기도 했지만, 항상 저의 신념을 이해해주고 인생의 버팀목이 되어준 아내에게 고맙다”고 했다. 김 교장은 지인의 소개로 일본인인 아내와 펜팔을 주고받다 사랑을 키워 1995년 결혼했다.

김 교장은 “스승의 날이라고 해서 스승을 기념하기보다, 교사들이 자신을 거쳐 갔던 제자들을 마음속에 한 번 더 떠올려보는게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학교사가 저의 천직이라는 일념으로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배움에 목마른 이들에게 등불을 켜주기 위해 앞으로 10년은 더 야학교사로 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