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봉의 산촌일기] 구충제와 부모의 마음

김석봉 농부l승인2020.05.12l수정2020.05.1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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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오늘은 절대로 술을 마시면 안 돼요.” 보름이가 정색을 하며 다짐을 받으려 했다. “허어, 오늘은 술을 좀 마셔야할 것 같은데. 이거 낭패네.” “여하튼 안 돼요. 오늘은 참으셔야 돼요.” “내일로 미루면 안 돼? 오늘은 멀리서 ‘페친’이 술 가지고 온다는데.” “어제도 오늘로 미루셨잖아요. 안 돼요. 오늘은 꼭 약을 먹어야 해요,”

거듭되는 성화에 하는 수 없이 고개를 주억거리긴 했지만 억울한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서하가 기생충에 감염되어 온 가족이 구충제를 먹어야 한다는 거였다. 가족이 약을 먹기로 한 날은 어제였다. 골목 평상에 나갔더니 술잔이 돌았고, 몇 잔 마셔 구충제 먹는 것을 오늘로 미룬 상태였다. 보름이의 눈빛을 보나 단호한 목소리를 보나 오늘 술 마시기는 글렀다싶었다.

▲ 김석봉 농부

며칠 전부터 엉덩이가 가렵다며 서하가 고생이었다. 첫날은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일어나자마자 병원으로 내달렸다. 항문 부위가 습해서 진균에 감염되었을 수도 있으니 건조하게 잘 유지하라는 진단을 받고 돌아왔다. 씻기고 말려도 여전히 가려워하며 안절부절이었다.

이번엔 다른 병원을 찾았다. 요충에 감염되었을 수 있다는 진단이었다. 시골에서 흙 만지던 손으로 음식을 먹거나 항문 주위를 만지면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기생충에 감염되었다니 입이 딱 벌어지는 거였다. 요즘이 어떤 세상이라고 사람이 기생충에 감염되나싶었다. 퍼뜩 며칠 전 개울 건너편 밭에 고추를 심던 날이 떠올랐다.

포근한 봄 햇살과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 속에서 고추를 심는데 보름이가 서하를 데리고 나들이를 나왔다. 서하는 밭에 들어서자마자 흙장난이었다. 고추밭은 서하가 놀기에 딱 좋았다. 고추는 물빠짐이 좋은 밭을 선택해야 했고, 닭똥거름과 가축분퇴비도 잔뜩 넣었으며, 밭고랑도 널찍이 장만해서 모래밭처럼 폭신폭신했다.

천방지축 뛰어다니기도 하고 흙을 집어던지며 아내에게 장난을 걸었다. 아내의 옷과 머리카락은 온통 흙투성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깔깔대고 돌아간 서하였다. 필경 고추밭에서 감염되었을 거였다.

“아이고, 똥꼬 아야 한다.” 잘 놀던 서하가 느닷없이 항문이 가렵다며 폴짝폴짝 뛰었다. 그리고는 허리를 굽히며 보름에게 항문을 드러댄다. “우리 서하 똥꼬 가렵구나. 이리 대 봐. 엄마가 호호 해줄게.” 보름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서하 항문에 후후 입김을 불어넣었다.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이 세상에 가장 헌신적인 인간의 모습이 제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의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서하에게 쏟는 아들 내외의 지극정성을 보면서 가끔 ‘참 유별나게도 한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었다. 밥상머리에서 따로 서하 반찬을 챙기며 투정을 부리는 아들놈을 볼 때도 그렇고, 허락 없이 이런저런 음료를 챙겨주다 보름에게 핀잔을 들을 때도 그랬다.

서하가 특히 좋아하는 과일음료를 지난 장날 마트에서 다섯 개나 사왔는데 아직 하나도 제대로 줘보지 못한 상태다. 음료를 많이 마시면 대소변이 잦을 거고, 항문관리에 어려움이 있을 거란 판단에서였다. 어떻거나 서하는 금지옥엽이었다.

이번 어버이날엔 어머니를 찾아가지 못했다. 지난 2월에 찾아뵙고 못 만난 지 벌써 석 달이 다 되었다. 체온이 들쭉날쭉하고 장 기능이 떨어져서 한 달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는 의사의 진단에도 요양병원은 여전히 면회불허였다.

나는 효도라는 것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자식이었다. 언제나 속만 태워드렸다. 젊으나 젊은 시절 공무원 사직하고 광장으로 나돌 때 어머니는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도시생활 청산하고 이 산골로 들어왔을 때도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이 산골에 들어오고 처음 몇 해는 어머니께서 우리 집을 다녀가시곤 했다. 어느 해 가을이었다. 하루 종일 숲을 헤쳐 야생오미자를 따온 날이었다. 어머니는 산그늘이 내릴 때까지 마당을 서성대며 산에 간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무겁게 등짐을 지고 들어서는 나를 바라보던 어머니의 그 형용할 수 없는 눈빛. 세상에서 내몰린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을 다 담은 그 눈빛은 내 기억 속에서 영영 잊히지 않았다.

“이걸 돈 한다고 따왔냐.” 그날 밤 밥상을 물리고 전등 아래 오미자를 가릴 때 어머니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쭈글쭈글해진 손가락 끝마다 발갛게 오미자물이 들어있었다. “그래도 오늘 따온 게 얼만데. 십만 원 어치는 될 걸.”

그냥 흘려들었어도 될 말을 무슨 위안이라도 되리라고 철없는 대꾸를 했다. “다음부턴 가지 마라. 독사도 안 무섭더냐. 산돼지도 안 무섭더냐.” 그 나이를 먹도록 나는 여전히 어머니의 금지옥엽이었을 거였다.

바이러스가 한 풀 꺾이는 모양이다. 휘근이도 조금 활기가 돈다. 지난해 가을 그동안 해오던 환경운동을 접고 다른 일거리를 찾았는데 그게 방과후 학교 강사였다. 두 곳 초등학교와 계약을 맺던 지난 2월은 활기가 넘쳐났었는데 바이러스로 개학이 미뤄지면서 풀이 죽어있었다. 시원찮을 벌이지만 일거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개학을 하긴 한대?” “좀 더 기다려 봐야할 것 같네. 계획대로라면 이달 안에 할 거라던데.” “그래, 그랬으면 좋겠다.” 저 나이를 먹었는데도 여전히 어려보이고, 철없어 보이고, 무슨 일이든 도움을 주고 싶어진다. 밥을 적게 먹어도 눈에 밟히고 헤진 옷자락만 봐도 마음이 쓰인다.

어머니는 요양병원에서 생사를 오가는데 꿈에도 한 번 찾아오지 않는다. 요양병원 가까이 살고 있는 형에게 어머니의 안부를 물어본 지도 꽤 오래 되었다. 자식을 보살피는 일과 어버이를 봉양하는 일이 균형을 이루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서하를 보살피는 아들 내외를 유별나다고 생각할 일인가.

저녁밥상을 물리고 민박손님들 술자리가 벌어졌다. 나는 돌아앉아 구충제를 받아들었다. 축 쳐진 내 어깨 너머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석봉 농부  ksb@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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