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안전보다 효율성· 생산성만 중시하는 사회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다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는 노랫말이 있듯이 세월호 참사는 2014년 4월 16일에만 발생한 것이 아니다. 노동절을 이틀 앞두고 발생한 이천 물류창고 공사 현장 화재에서 38명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이고, 외국인 노동자도 섞여 있다. 이들 중 9명의 신원은 아직까지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 일용직의 불안한 노동으로 채운 위험하고, 값싼 노동, 안전장치가 풀려 사고를 부르는 노동현장이 근본 원인이지만, 경찰과 소방당국은 화재의 최초 원인제공자와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현장 책임자만을 감별해 처벌할 모양이다.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8년에도 똑같은 형태로 화재가 발생해 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고, 같은 해 냉동창고 화재 사고로 40명의 노동자가 현장에서 사망하기도 했다. 당시에도 경찰은 최초 발화지점에서 일한 용접공과 현장 안전 책임자만 가려내 처벌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 서성룡 편집장

우리는 3년 전 노동절 거제 삼성중공업에서 발생한 크레인 사고도 기억한다. 노동절이나 명절을 앞둔 시점에 유난히 대형 인명사고가 잦은 이유는 무얼까? 안 봐도 뻔하다. 긴 연휴를 앞두고 일을 빨리 마무리하느라 연장근무, 야간근무로 노동강도를 무리하게 높였을 것이다. 노임을 두배로 들여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휴일을 지키되, 생산성이 떨어지는 일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말도 안 되는 모순과 이율배반이 노동 현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인명사고의 패턴이다.

일본이 쓰다 버린 20년이 넘은 배를 들여와 표면 페인트칠만 다시 해서 30년까지 쓰도록 법을 완화하고, 배를 운항하는 선원들은 물론 선장까지 값싼 비정규직 인력으로 채우고, 평형수를 뺀 자리에 강정 공사장에 쓰일 철근을 실어 이윤을 극대화 하는 구조.

인명사고는 재수가 없어 일어나는 거고, 일하는 사람들만 조심시키면 되고, 혹시 사고가 나더라도 현장 책임자 한두 명만 감옥에 가면 되니까.

규제를 풀어 노동시간을 늘리고, 배나 생산설비 심지어 원자로도 사용시한을 늘리면서, 유연화돼 너덜너덜해진 노동을 더 유연화 하라고 말하는 국회의원과 정치인, 정부 고위 관료, 장·차관은 절대로 처벌받지 않는다. 위험한 노동으로 실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업주도 처벌된 사례가 없다.

한마디로 비용대비 수익이 크니까. 모두가 종교처럼 떠받드는 ‘생산성’이 좋으니까 계속 그렇게 값싸고 위험한 노동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람 목숨 한두 명 죽어 나가도 법정 근로시간 지키고, 안전설비 마련하고, 휴일 제대로 지키고, 비싼 정규직, 숙련공 쓰는 것 보다 싼데, 누가 돈보다 생명을 택하겠는가. 백날 양심과 도덕에 호소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은 모두들 잘 알면서도, 그것밖에 할 게 없으니 지식인이나 언론인이라는 작자들은 근엄한 표정으로 그럴싸한 훈계질을 해대는 것이다.

세월호는 6년 전에 한 번만 침몰한 게 아니다. 잠시나마 주춤했던 때가 있었지만, 아무도 비정규직을 줄이자고, 불안하고 위험한 일자리를 없애자고, 돈보다는 생명이 먼저라고,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반면 그놈의 ‘생산성’은 매일 같이 언론들이 떠들어 대고 있다. 대통령이 바뀌고 정부가 바뀌고, 국회 의석수 배분이 달라져도 오로지 ‘생산성’이 최고의 관심사다. 코로나가 휩쓸어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경제가 마비되는 와중에도, 이를 ‘기회’삼아 의료에서 ‘공공성’이나 ‘안전’이 아니라 ‘효율성과 생산성’을 찾고 있다.

누구의 아들이고 누구의 가장이었을, 또는 오직 자신의 노동을 싼 값에 팔아 외롭고 힘겹게 세상을 버티며 살아가던 38명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은 지금 이 순간도 세월호는 계속 침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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