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우리는 언론과 SNS를 통해 ‘대구 폐렴’, ‘대구 코로나’, ‘대구 방문 후’, ‘대구 여행 후’ 등과 같은 표현으로 가뜩이나 힘들어하는 대구시민에게 깊은 상처를 준 적이 있다. 혐오 표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보도자료에서 ‘대구 코로나19’라는 문구로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를 부추겼다. 이러한 편견이 차별을 낳고, 차별은 지역을 따돌리는 정치적 선동을 초래했다.

이제는 모두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자기존중에서 출발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자기존중에서 타인을 향한 인권존중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타인도 소중하게 여긴다는 의미이다. 이럴 때 공동체 의식도 그 효과가 배가 된다.

▲ 박홍서 장애인식개선강사

장애인복지가 다루어야 할 기본이념은 평등과 정상화, 즉 사회통합이다. 장애인 권리는 개인에게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고, 그 권리가 보장될 때 통합은 가시화된다. 완전한 통합은 사회로부터 장애인이 구분되지 않는 상태로, 이는 곧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든 면에서 동등함을 의미한다.

장애인은 더 이상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장애인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다. 신체와 정신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가정과 사회로부터 차별받거나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특별한 대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장애인이 생활하기 불편한 사회구조나 환경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장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태이다. 그렇기에 장애와 장애인의 문제를 한정된 계층의 문제로 생각해서 안 된다. 그동안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왔지만, 이제는 우리 사회가 장애인이 갖는 역할과 가치를 재조명해야 한다. 나아가 국가도 사회 구성원인 장애인이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새로운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세상이 아무리 평등하다 해도, 제도와 법이 공평하다 할지라도, 인간은 정신적·물질적으로 예나 지금이나 그리 평등하지 못하다. 그래서 묻는다. 우리는 정말 존엄하게 잘 사는 걸까? 예를 들어 CCTV만 보더라도 우리가 사생활을 제대로 보호받고 있는지 의문이다. 광역시를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민 한 명이 하루 평균 150회 정도 CCTV에 노출된다고 한다. 이게 존엄한 삶일까.

이런 환경에서 인간의 존엄과 평등은 법과 제도로 완벽하게 보장받지 못한다. 그렇기에 개개인의 자각이야말로 인간 존엄을 보장받는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깨닫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다음에 인용한 인간 존엄에 대한 조항들을 머리에 담고 있어야 한다.

세계인권선언문 제1조는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라고 했으며,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와 11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법 앞에 평등하다”라고 했다. 특히 34조에서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라고 했는데,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국가는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누리도록 할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장애인도 존엄을 가진 존재이기에 당연히 기본적 권리를 주장하고 대우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이동권과 교육권, 접근권, 거주·이전권, 건강권, 투표권, 노동권, 문화향유권 등 기본적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길거리에서 인권운동을 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인권이란 무엇일까. 글자 그대로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 가져야 하는 당연한 권리를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다운 삶’은 어떤 삶일까. 단순히 먹고, 입고, 자면서 목숨만 연명하는 걸까. 아니다. ‘안전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노동할 권리’, ‘문화를 향유할 권리’, ‘평등하게 대우받을 권리’ 등 인간으로서 존엄할 여러 권리가 보장될 때 비로소 ‘인간다운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권에는 4가지 원칙이 따른다. 첫째는 ‘보편성‘이다. 장애여부나 피부색, 사회적 지위, 종교, 성별 등을 따지지 않고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하는 원칙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투쟁이 끊이지 않는 까닭은 ‘특권‘이나 ‘예외‘를 누리는 계층이나 계급이 있기 때문이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둘째는 ‘상호의존성과 불가분성’이다. 사람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관계 속에 존재하고 연결된다. 그렇기에 서로의 권리를 대립하는 것으로 바라보게 되면 내 권리도 보장받을 수 없다. 상호간의 권리는 서로 기대어 있다. 다시 말해 하나를 잃고는 다른 하나도 지킬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를 불가분성이라고 한다.

세 번째는 ‘실정법보다 높은 인권’이다. 법이 인권을 보장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게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다. 국민기초생활을 보장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것이 생계지원이다. 가난한 사람은 질병에 노출되어 치료를 못 받는 일이 생겨도 국민 건강권을 보장하는 국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실정법의 한계이다.

끝으로 ‘저항성과 역사성’이다. 인권을 짓밟는 폭정과 억압에 대항하는 마지막 수단은 무엇일까. ‘반란’이 아닐까. 맹자는 “사람은 바꿀 수 없으나 폭정을 일삼는 정권은 바꿀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처럼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권리를 ‘저항권’이라고 한다. 근대 초, 여성이 선거권을 획득하는 데 2백 년 세월이 필요했으며, 어린이와 청소년의 권리는 20세기 후반에야 국제인권법에 자리 잡았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도 최근에야 이뤄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권리를 인정받는데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이를 ‘역사성’이라고 한다.

나는 인권을 이야기할 때 삶의 절반인 27년을 장애인시설에서 지내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싶어 장애인 인권단체의 도움으로 시설에서 탈피한 송국현 씨를 예로 든다. 그는 시설을 벗어난 것만으로 좋았다고 하는데, 이를 '탈 시설'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시설을 빠져나와 혼자 살아가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편마비에 언어장애가 있는 몸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기 위해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당시 뇌병변 5급에 언어장애 3급인 그는 지원서비스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화재로 그는 목숨을 잃고 말았다. 눈앞에서 화마가 자신을 덮쳤으나 방안에서 문까지 여덟 걸음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결국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는 야만적 제도가 한 사람의 소박한 꿈을 앗아가고 말았다. 국가는 왜 궁지로 내몰린 사람에게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해주지 못한 것일까?

생각해 보니 장애인차별은 장애유형과 상관없이 전 생애에 걸쳐 모든 장애인이 경험하고 있었다. 차별은 길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지역사회에서 항상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장애인도 다른 사람과 똑같은 권리를 갖는 ‘존엄한 존재’임을 확인시키기 위해서 1975년 12월 9일 UN은 장애인권리선언을 채택했다. 대한민국 국회도 이를 근거로 1998년 12월 9일 장애인인권헌장을 발표했다.

내용을 보면 총13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1장은 ‘장애를 이유로 정치·경제·사회·교육 및 문화생활’을, 4장은 ‘자유로운 이동과 시설이용에 필요한 편의제공 및 의사표현과 정보이용에 필요한 통신·수어·통역·자막·점자·음성도서 등 모든 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를 말하고 있다. 5장은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장애유형과 정도에 따라 필요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6장은 ‘능력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고, 그에 따른 정당한 보수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노동조합에 가입할 권리’를, 7장은 ‘문화·예술·체육 및 여가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8장에서 ‘장애인은 가족과 함께 생활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9장은‘장애인은 사회로부터 분리, 학대 및 멸시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며, 누구든지 장애인을 이용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해서는 안 된다’ 고 명시하고 있다. 10장은 ‘장애인은 자신의 인격과 재산의 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법률상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했다.

여성 장애인은 ‘임신과 출산, 육아 및 가사 등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받을 권리’를 가지며, ‘혼자 힘으로 의사결정이 힘든 장애인과 그 가족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요한 지원을 받을 권리’를 가질 수 있고, 장애인의 특수한 욕구는 국가 차원의 지원이 우선되고, 장애인과 가족은 복지증진을 위한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했다.

장애인의 권리와 복지에 대한 시책이 제정될 경우 당사자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그리고 장애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조직체의 자문도 받아야 한다. 모든 교육기관과 언론매체는 장애인을 차별하는 우리 사회의 오해와 편견을 없애는데 앞장서야 하고,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표현도 삼가야 한다. 장애인과 가족 그리고 장애인 단체는 이 선언에 포함된 권리에 대하여 충분한 정보를 얻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류 집단은 자신들이 다른 집단보다 우월하다는 사고가 지배적이어서 차이를 차별로 여기게 된다. 이때 주류 집단에 속하지 못한 소수자는 인권을 침해받게 된다. 장애인 인권문제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인권과 연관된 문헌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세계인권선언과 대한민국 헌법, 그리고 장애인인권헌장이다.

1948년 12월 10일 발표된 세계인권선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억압과 차별에 반대하며,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상세히 다루었지만 강제성이 없다. 대신 이 선언에 강제성을 부여해 지키게 한 것이 1962년에 개정된 헌법이다. 이중 제10조부터 37조까지는 국민의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장애인인권헌장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시민적·정치적·문화적·사회적·경제적 권리가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11조는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복지법 제8조도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정치·경제·사회·문화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정치·경제·사회·문화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장애인을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법률이나 선언만으로 장애인차별을 근절하지 못한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수많은 장애인이 차별받고 있다는 걸 금방 알게 된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발달장애인은 제21대 총선 사전투표가 진행됐던 10일과 11일 양일간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해 참정권을 침해받았다.

이들은 글씨를 알아볼 수 없거거나, 투표과정을 혼자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투표보조를 받기 위해 부모와 함께 기표소에 들어갈 수 있도록 선거사무원에게 요청했다. 그 이유는 2016년 20대 총선부터 5년 동안 선거지침에서 발달장애인도 투표보조를 받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사무지침에서 발달장애인에 대한 투표보조 내용이 삭제됐다. 그 결과 일부 장애인의 투표는 사표가 되고,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했다.

이는 선거관리위원회가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인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와 제24조인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를 위반한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끝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 해설서에 나오는 글귀를 인용하고자 한다. “사람은 태어난 뒤 한동안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며, 걷지 못합니다. 나이가 들면 잘 안 들리고, 잘 보이지 않으며, 잘 걷지 못하게 됩니다. 누구나 장애인으로 태어나 장애인으로 죽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어린이와 노인을 비롯한 모든 사회적 약자를 비롯한 일이자, 나아가 국민 모두의 이익을 위한 첫걸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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