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민족반역 행위 알 수 있게 알려야” 진주시 “안전문제로 설치 안 돼”

▲ 촉석루 아래 절벽에 새겨진 이지용(이은용)의 이름

[단디뉴스=김순종 기자] 촉석루 아래 벽면에 을사오적 이지용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안내판 설치 문제로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지회장 강호광)와 진주시가 대립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을사오적 이지용의 이름이 벽면에 새겨진 것 또한 우리의 아픈 역사”라며 안내판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시는 안전문제로 안내판 설치는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14일 오전 10시께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 회원들과 진주성관리사업소 관계자는 촉석루 아래 의암바위 가는 길에서 만나 이곳에 을사오적 이지용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알리는 안내판 설치 문제를 두고 협의했다. 이곳 벽면에는 을사오적 이지용의 개명 전 이름인 이은용과 개명 후 이름인 이지용이 한문체로 새겨져 있다.

개명 전 이름인 이은용은 이지용(이은용)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직접 새긴 것으로, 개명 후 이름인 이지용은 진주시민 일부가 이지용을 위해 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지용의 본명은 이은용이지만, 이은이 영친왕이 되자 이름이 겹친다는 이유로 (이지용으로) 개명했다고 전해진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그간 이지용의 이름이 이곳에 새겨져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한 안내판 설치를 주장해왔지만, 큰 진척이 없었다. 이에 14일 현장에서 진주시 관계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겠다며 약속을 잡았지만, 합의는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진주시가 안내판 설치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강호광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장이 진주시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호광 민족문제연구소 지회장은 “이름이 새겨진 절벽 쪽에 안내판을 설치하는 게 위험하고, 진주의 얼굴이라 할 촉석루 아래 안내판을 크게 세우는 것에 거부감을 표하는 것도 일부 이해는 간다”면서도 “이미 (위험을 알리는) 몇몇 안내판이 설치돼 있고, 절벽 쪽이 아니더라도 다른 쪽에 안내판을 설치하면 되지 않겠냐”고 했다.

진주시 관계자는 안전문제로 안내판 설치는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지용의 이름이) 절벽에 새겨져 있기 때문에 절벽 근처이든 아니면 다른 곳이든 안내판 설치는 불가하다. 사람들이 안내판을 보고 이지용의 이름이 새겨진 벽면을 보려다가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등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진주시는 각자의 입장을 전한 뒤에도 이 문제를 두고 갑론을박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거듭 이지용의 이름이 이곳에 새겨진 역사를 사람들이 기억하게 하려면 작게나마 안내판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진주시는 어느 곳에 어떤 방식으로 안내판을 세우더라도, 사람들이 이지용의 이름을 보려다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를 거부했다.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가운데 한 명은 “친일파가 이곳에 이름을 새겼든 어쨌든 이걸 알리지 말라는 것 아니냐”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안내판 설치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민족문제연구소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진주시가 아닌 경남도와 협의하거나 시민들의 이름으로 안내판을 세울 방법 등을 강구해보겠다는 것이다. 

한편 이지용은 1904년 외부대신 서리로 한일의정서에 조인했다. 1905년 내부대신 때는 을사늑약에 찬성해 을사오적 가운데 한명으로 이름이 올랐다. 국권피탈 후에는 일본으로부터 백작 칭호를 받고 중추원 고문이 됐다. 1910년에는 일진회의 한일합방(한국강제합병) 성명서에 찬성했으며, 1911년 일왕으로부터 은사공채 10만원을 받기도 했다.

 

 

▲ 이지용(이은용)의 이름이 새겨진 절벽 주위에 '위험'을 알리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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